아낌없이 주려는 선배와 뭐든지 받으려는 후배…조선 ‘핵심기술’ 계승된다
현대중공업 ‘핵심기술 전수제도’ 시행 5년만에 170개 기술 전수
입력 : 2019-05-08 00:00:00 수정 : 2019-05-08 00:00:00
[뉴스토마토 최유라 기자] “여기서는 더 집중해야 해!”
 
“다시 한 번 해보겠습니다!”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집중하라는 조성제 대조립1부 기장의 주문에 홍성제 기사도 기합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한다. 두 사람은 2019년도 현대중공업 핵심기술 중 하나인 ‘일렉트로 가스 아크용접(EGW)’의 전수자와 계승자에 선정된 주인공이다. 한정된 시간 동안 하나라도 더 전수하고 싶은 대선배와, 어떻게 해서든 최선을 다해 익히려는 후배간의 눈에는 절실함 그 이상의 감정으로 묶여 있었다.
 
조선산업의 최고 전성기를 이끌며 기술 한국을 실현했던 베이비부머 세대 선배들이 대거 은퇴하면서 조선소 현장에는 그들이 수십년 동안 갈고닦았던 기술들이 제대로 후배들에게 전수되지 못한 채 단절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용접은 선박을 건조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기술이자 핵심 기술로, 현대중공업을 세계 1위 조선사로 우뚝서는데는 이러한 기술을 익히기 위해 혼을 바쳐 그 불꽃의 맥을 이어오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성제 현대중공업 대조립1부 기장(왼쪽)이 홍성제 기사에게 2019년도 회사 ‘핵심기술 전수제도’ 중 하나로 선정된 ‘일렉트로 가스 아크용접(EGW)’ 기술을 전수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은 회사 품질 경쟁력의 근간이자, 후대에 오롯이 전해야 할 소중한 유산인 핵심 기술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생산현장의 고숙련자가 보유한 기술을 체계적으로 유지·계승함으로써 회사의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2012년부터 ‘핵심기술 전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제도 도입 이듬해인 2013년 7월 조선사업부에서 처음 전수-계승 활동을 시작한 후 2014년부터 모든 사업부로 확대되었으며, 약 170개를 선정해 전수시키고 있고, 지난해에는 213개의 핵심기술을 새롭게 선정했다. 올해는 현대일렉트릭과 현대건설기계를 포함해 그룹 전체에서 총 91개 핵심기술에 대한 전수가 추진 중이다.
 
올해로 입사 33년차를 맞는 조 기장은 이론과 실무 경험을 두루 갖춘 자동용접 전문가이자, EGW 분야 사내 최고수로 손꼽힌다. EGW는 이산화탄소를 보호가스로 사용해 수직 용접하는 고능률 자동용접으로, 조 기장도 입사 당시 선배들로부터 EGW를 배웠다고 한다.
 
현대중공업은 1980년대 초반부터 주로 컨테이너선과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등을 건조할 때 이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선수와 선미처럼 판이 두꺼운 곳을 작업할 때 생산성과 능률, 품질 등 모든 면에서 여전히 수동 작업을 압도한다.
 
하지만 다른 기술에 비해 익히기가 어렵고, 준비과정이 복잡해 기술의 일부분만 작업에 활용되고 있다. 또, 힘든 작업을 기피하는 분위기로 인해 배우려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조 기장이 계승자를 고민할 때 그의 눈에 들어온 사람이 바로 홍 기사였다.
 
조 기장은 “홍 기사는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깨우칠 만큼 똑똑하고, 셋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후배”라며, “회사의 미래를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반드시 들어야 하는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홍 기사도 조 기장을 ‘롤모델’로 삼았다. 직무에 대한 애정은 물론, 풍부한 지식과 경험으로 늘 후배들을 이끌어주는 조 기장을 닮고 싶었다고 한다. 홍 기사는 “평소 존경하는 선배에게서 회사의 핵심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영광스러웠다”며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스트레스가 될 때도 있었다”고 계승자 선정 당시의 소감을 전했다.
 
2019년도 현대중공업 ‘핵심기술 전수제도’ 중 하나로 선정된 ‘일렉트로 가스 아크용접(EGW)’ 기술 전수자인 조성제 대조립1부 기장(왼쪽)과 계승자인 홍성제 기사가 회사 울산 조선소 골리앗 크레인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
 
회사측에 따르면, 기술의 특성 및 난이도에 따라 차이가 있어 한 개의 핵심기술을 완전히 전수하기 위해서는 짧게는 4개월에서 최장 7년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 전문가들은 “핵심기술의 완전한 전수야말로 우리의 정체성과 미래 성장동력을 함께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핵심기술 전수제도는 현장 기술인력들의 요청에 따라 진행됐다. 현대중공업은 일찍이 기술의 축적 및 후진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꾸준하게 전수와 계승을 이어오고 있으나, 전수시간의 부족 등으로 인해 체계적인 기술전수가 어렵다는 의견이 현장을 중심으로 제기되어 왔다. 또 갑작스러운 직무의 변동과 생산체계 변화, 전수자와 계승자의 퇴사 등도 효과적인 기술전수를 어렵게 했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핵심기술 선정→전수기법 교육 및 전수활동→전수평가→인증 및 포상’으로 추진되는 제도의 큰 틀은 유지하되, 각 단계별로 미흡한 사항들을 보완하고 각종 지원을 확대하는 등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 개선에 팔을 걷어붙였다. 먼저 올해부터 핵심기술 선정의 필수 요건을 ‘얼마나 급한지’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로 바꿨다. 당장의 전수에 급급하기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다 체계적이고 완전한 전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이다.
 
또 전수활동에 참여하는 전수자와 계승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했다. 전수 스킬을 높이기 위해 전수기법 교육시간을 기존 4시간에서 8시간으로 강화했으며, 월 업무시간 중 최대 8시간까지 전수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전수교육 명령을 통해 보장했다. 전수활동에 필요한 경비도 실적에 따라 최대 월 16만원까지 지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전수자와 계승자가 기술 전수에 더욱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전수인증 완료자 전원에게 사업대표 표창과 상금을 지급하는 등 포상 규모도 대폭 확대했다.
 
홍 기사는 “전수 과정 동안 선배님의 기술을 완전히 습득하는 것이 당장의 목표라면, 최종 목표는 챔피언에 오른 선배들의 뒤를 이어 ‘기술의 현대’라는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는 것”이라며 “10년, 20년 후에는 아끼는 후배들에게 나의 모든 경험과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유라 기자 cyoora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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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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