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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은 확실한 '미션'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엄상홍 SK이노 부장, 일회성·시혜적 사회공헌보다 지속 가능성 강조
1호 스타 사회적기업 '전주빵카페', 매출 30억·취약계층 일자리 창출
2019-05-28 07:00:00 2019-05-28 07:00:00
[뉴스토마토 이아경 기자] "1억원으로 노인들에게 빵을 나눠드리면 1년도 못 가서 돈과 빵이 바닥이 나겠지만, 같은 1억원으로 사회적 기업을 키워내니 40명의 취약계층이 4대 보험 혜택을 받는 정규직으로 자립하게 됐다.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엄상홍 SK이노베이션 사회공헌팀 부장은 유수의 다른 대기업과 학계, 공기업에서도 러브콜이 잇따를 정도로 사회적 기업 '인큐베이터'로 정평이 나 있다. 단순 봉사나 기부 형태가 아닌 지속가능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회사의 철학을 거의 완벽하게 실천하고 있다. 
 
엄상홍 SK이노베이션 사회공헌팀 부장. 사진/뉴스토마토
 
주요 업무는 어떤 것인가.
SK이노베이션 홍보실 사회공헌팀에서 사회적 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을 본격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다. 이전에는 직접 사회적 기업을 설립했지만 대기업이 하니 잘 안맞는 부분이 있었다. 효율적인 방식을 고민하다 공모형태로 전환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12개의 사회적 기업을 설립·육성했다. SK이노베이션은 한 기업당 1억원 정도만 투입했지만 총 300명의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했다. 
 
스타 사회적 기업을 만들게 된 계기는.
사회적 기업은 주로 영세하고, 장애인과 노인 등 취약계층을 고용하다보니 저효율-생산성 저하 등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비즈니스 모델 차제도 적은 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떡집, 카페, 세탁, 택배 등 단순하거나 손쉬운 것들이었다. 당연히 성장에 한계가 있었고, 결국 영세한 사회적 기업을 많이 배출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근본적 질문에 봉착했다. 그래서 2017년부터는 하나라도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사례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전주빵카페와 모어댄이 대표적 예다. 
 
스타 사회적기업, 어떻게 육성하나.
초장기에는 SK이노베이션이 초기 자본금 성격으로 1억~1억5000만원을 지원한다. 이후 여러 방면에서 SK가 보유한 네트워크·유통채널·인력 등 인프라를 공유한다. 가장 중요한 단계는 홍보·마케팅이다. 이슈화하기 위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스토리를 입힌 다음 SNS로 사회적 기업을 알리는데 주력한다. SK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이나 TV프로그램을 통한 홍보도 지원한다. 외부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준다. 모어댄은 신용보증금에서 작년에 20억원을 지원받았고, 전주빵카페는 SK그룹의 행복나눔재단 네트워크를 활용해 투자 설명회도 진행했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단계가 오면 그동안의 지원을 회수하고, 또 다른 사회적 기업을 키우는 사이클이다. 
 
전주빵카페와 모어댄은 올해 연 매출 각각 30억원, 4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고용도 많이 늘었다. 전주빵카페의 경우 할머니 4분이 시작했지만 지금은 직원이 총 40명 정도다. 어르신들의 월 평균 급여는 220만원, 4대보험도 적용된다. 성분을 검사하기 위해 석박사 젊은이들이 참여한 부설 연구소도 생겼다.
 
전주비빔빵 전주역점 직원(왼쪽)이 오픈식 당일, 고객에게 전주비빔빵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SK이노베이션
 
사회적 기업 육성사업 시작 배경은.
기업이 돈을 벌어서 환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들어간 재원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일회성 차원의 봉사나 시혜적인 것들을 벗어나 혁신적이고 생산적인, SK이노베이션이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사회적기업의 궁극적 역할은 사회문제를 풀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또 기업의 형태를 띄고 있어 기업(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 잘하고 있는 것을 도와주면 파이를 키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전주빵카페처럼 1억으로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지원했더니 취약계층이 정규직으로 자립할 수 있고,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사례처럼 말이다. 사회적 가치 창출을 통해 SK이노베이션의 기업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사회적 기업 육성 노하우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사회적 기업이 가지고 있는 확실한 미션이 있어야 성공 가능성도 높아진다. 예컨대 환경 문제 등 해결하고 싶은 사회적 문제가 선명해야 거기서부터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진다. 문제가 뚜렷할수록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지고, 이를 토대로 소통을 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과 사회적기업이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관계가 아닌 '파트너'라는 점도 기업을 키워내는 차별점이다.
 
반대로 비즈니스 모델 자체의 한계가 있으면 사회적 기업으로 키워내기 어렵다. 떡집이나 카페 등 일반적으로 창업해도 어려운 아이템이 많다. 가장 쉽게 창업할 수 있기 때문인데, 시작은 쉽더라도 유지하고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중점 육성 중인 사회적 기업은.
3차 스타 사회적 기업은 우시산이다. 우시산은 울산 장생포에 사라져가는 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바다에 버려지는 폐플라스틱을 이용해 에코백이나 옷, 고래인형 등을 만들어 판매한다. 이를 위해 우시산은 울산 지역 10여곳의 수거업체와 제휴해 대형 선박들이 배출한 폐플라스틱을 수거하고, 재생 솜과 원단을 변환하는 프로세스를 구축했다. 또 실버 바리스타 등 취약계층의 고용도 돕는다. 수익금의 일부는 또 바다보호를 위해 사용한다. 
 
우시산에서 선보이는 고래인형. 사진/SK이노베이션
 
우시산은 아직 초기 단계로 시제품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오는 31일 바다의 날을 맞아 울산 장생포에서 열리는 행사에서 공식적으로 관련 상품들을 내놓을 예정이다. 4번째 스타 사회적 기업도 찾을 계획으로 환경이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 환경분야의 사회적기업 공모도 재추진할 것이다.
 
사회적기업 육성을 통한 최종 목표는.
우리나라는 사회적기업의 역사가 짧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모델도 없다. 영국이나 스웨덴은 GDP의 10%가 사회적기업에서 나온다. 스타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를 대표할만한 성공 모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혼자 만의 힘으로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주변의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많은 분들이 이 사업을 알고 그 가치에 동참하고 이용하고 구매해주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적기업 운영을 위한 노하우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많이 공유하고 싶다. 
 
이아경 기자 akl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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