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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진범’, 감각이 통제되는 ‘밀실살인사건’
‘죽은 사람’만 존재하는 살인 사건, 용의자는 혐의 부인
한정된 공간-인물들의 의견 충돌, 추리소설 작법 ‘효과’
2019-07-03 12:01:20 2019-07-03 13:06:3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사실상의 완벽한 밀실 살인사건이다. 죽은 사람은 있다. 그런데 죽인 사람이 없다. 의심이 되는 사람은 있다. 정황상 증거도 명확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다. 죽은 사람의 남편도 그 용의자의 주장을 믿고 싶은 눈치이다. 용의자의 아내도 필사적으로 믿고 있다. 그럼 도대체 죽인 사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영화 진범이 담고 있는 얘기이다. 영(송새벽)은 아내 유정을 죽인 범인을 찾아야 한다. 현재 경찰에 붙잡혀 있는 사람은 유정의 대학 선배인 준성이다. 준성은 유정과 영훈을 소개시켜 준 사람이기도 하다. 경찰에선 준성과 유정이 불륜 사이이고 두 사람의 다툼 과정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이를 뒷받침할 증거도 있다. 죽은 유정의 입가에서 피와 엉겨 붙은 머리카락이 발견됐다. 바로 준성의 머리카락이다. 하지만 준성은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다. 영훈 역시 믿고 싶지 않다. 준성의 아내 다연은 더욱더 믿고 싶지 않다. 영훈 부부와 다연의 부부는 평소에도 왕래를 하며 친하게 지낸 사이다. 도대체 이들 부부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 일까.
 
 
 
진범은 제목 그대로 한 사건의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단순하게는 추격 범죄 스릴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독특한 형식 그리고 콘셉트가 진범을 상당히 기묘한 장르로 이끌어 가 버렸다. 한정된 공간, 각기 다른 네 사람의 주장, 여기에 관객들의 오감을 흐트러트리는 현재와 과거의 교차 편집’, 진범이 누군지를 가리키는 단서 하지만 그 단서가 역발상의 효과를 이끌어 온단 점, 마지막으로 예상 밖의 인물 등장 등이다. ‘연극적요소를 물씬 끌고 들어온 클래식 추리소설실사 버전이라면 진범결과물에 대한 흡사한 이미지가 된다.
 
영화 '진범' 스틸. 사진/리틀빅픽처스
 
진범은 두 가지의 명확한 셀링 포인트를 두고 출발한다. 앞서 언급한 밀실살인사건그리고 시간의 퍼즐이다. 먼저 영화가 시작하면서 죽은 여인이 스크린 가득 등장한다. 결과가 등장하고 과정을 역으로 추적하는 방식이다.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에 남편 영훈은 망연자실 낙담한다. 폐인처럼 생활하던 그를 자극한 것은 용의자 준성의 아내 다연이다. 영훈 역시 준성이 용의자일리 없다고 확신하고 경찰에 호소했다. 하지만 명확한 증거에 준성은 구속된 상태이다. 법정에서 피해자 남편인 영훈의 호소와 증언이 준성의 무죄를 이끌어 낼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다연은 영훈에게 호소한다. 하지만 영훈은 망설인다. 준성이 아닌 것을 알지만 망설인다. 국내 형사법의 맹점으로 불리는 일사부재리의 원칙때문이다. 영훈도 믿고 또 스스로도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는 준성이 만약 진짜 범인이라면? 무죄 선고 이후 준성을 다시 같은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영훈은 망설인다. 아내는 죽었지만 범인이 없다. 그 범인이 준성이 아닌 것을 알지만 준성이라도 붙잡혀 있으니 그나마 사랑하는 아내의 억울함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영화 '진범' 스틸. 사진/리틀빅픽처스
 
하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서 진범의 실마리를 등장했다.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고 또 다연의 호소로 법정 증언을 준비하던 영훈이다. 그저 마음에서 죽은 아내를 떠나 보내려던 영훈은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해 사건의 실마리를 잡게 된다. 여기에 자신이 감춘 죽은 아내의 휴대폰 속 문자 메시지까지 더해진다. 휴대폰 문자 메시지는 준성과 유정이 나눈 대화. 경찰이 이를 근거로 두 사람의 불륜을 의심했다. 하지만 영훈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다. 무언가 빈틈이 있음을 직감한다. 영훈은 사건을 재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언가 잘못됐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하면서 풀려가던 사건의 실마리는 다른 방향으로 급전환 된다. 상민이란 인물이다. 그는 유정이 죽고 영훈이 집으로 돌아온 그 시각 집 밖에서 서성였다. 영훈은 그를 붙잡아 추궁한다. 영훈은 상민이 범인이라고 확신한다. 물증은 없다. 하지만 심증은 확실하다. 이제 자백만 받아내면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상민이 충격적인 내용을 털어 놓는다. 그의 말에 영훈과 다연은 서로를 의심하게 된다. 본인들도 그리고 관객들도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이다. ‘혹시란 의심을 하면서 이들 네 사람의 관계와 사건의 비밀을 하나 둘 풀어 나가던 인물들 그리고 관객들. 이제는 의심이 아니라 혼란이다. 도대체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일까.
 
영화 '진범' 스틸. 사진/리틀빅픽처스
 
진범은 확실하다. 영화 마지막 장면까지 진짜 범인이 누군지 알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관객은 물론 극중 인물들 누구도 몰라야 한다. ‘진범에는 수 많은 단서가 러닝타임 내내 등장한다. ‘사진’ ‘CCTV’ ‘휴대폰’ ‘문자 메시지등등. 하나의 단서가 드러날 때마다 진범은 그 단서에 대한 내용을 정방향 혹은 역방향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시간을 앞으로 끌고 가면서 혼란을 유도한다. 단서가 드러날 때마다 이런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질문한다. 이렇게 모여든 전체의 덩어리는 이미 조각조각이 난 깨진 거울처럼 느껴진다. ‘진범이 말하는 내용 그대로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다. 하지만 조각조각 난 내 모습이다. ‘진범도 마찬가지다. 눈으로 보이는 것이 진실이다. 하지만 그 진실이 점차 조각조각 깨지고 있는 셈이다.
 
영화 '진범' 스틸. 사진/리틀빅픽처스
 
러닝타임 절반 이상이 영훈의 집안에서만 벌어진다. 네 사람의 주장이 교차하고 부딪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돌음이 변수로 등장한다. 스토리 중심에 자리한 내용이 살인 사건이다. 때문에 감정적으로 상당히 어둡고 깊은 지점을 드러낸다. 잔재미란 측면에선 전반적으로 양념이 전혀 안된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강하다. 반면 의심과 혼란두 가지 코드에 집중하고 네 사람의 주장을 검증하는 과정으로 러닝타임을 즐긴다면 클래식 고전 추리소설에 등장한 밀실살인사건의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반전은 존재한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충격적 반전이다.
 
영화 ‘진범’, 오감을 완벽하게 틀어 막아 버리는 감각통제 스릴러이다. 절대 눈에 보이는 그것이 진실은 아니다. 개봉은 오는 10.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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