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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중국영화 속 '공평‘과 한국의 '공정'
2019-09-06 07:00:00 2019-09-06 07:00:00
서명수 슈퍼차이나 대표
중국영화의 발전이 놀랍다. 한국에서의 흥행성적은 초라하지만 '대국굴기'를 넘어 '우주굴기'를 영화화한 <유랑지구(流浪地球)>는 2019년 중국에서 무려 44억5000만위안을 벌어들였다. 유랑지구는 목성과의 충돌이라는 대재앙을 맞게 된 지구의 운명을 중국이 주도해서 맞선다는 스토리다. 상상을 뛰어넘는, 할리우드를 능가하는 재난 블록버스터로 주목을 받았다. 흥행성적으로는 2017년 중국판 람보영화로 불린 <전랑(戰狼) 2>의 56억8000만위안에 이은 역대 2위였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영화는 최고의 선전선동 매체로 활용되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진핑 시대에도 중국영화는 중화주의를 고취하고 대국굴기를 과시하는 최고의 수단으로 작동하는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중국영화가 늘 체제를 선전하는 역할만 해온 건 아니다. 중국영화 역사가 5세대를 거쳐오면서 중국영화는 문화대혁명이라는 마오쩌둥 시대의 아픈 상처를 기억하고 개혁개방의 영광과 아픔을 표현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문혁의 상처를 잘 드러낸 영화 <부용진(芙蓉鎭)>의 주연배우 장원이 2010년 연출한 <총알이 날아가게 내버려두라(讓子彈飛)>도 그런 부류 영화다. 이 작품은 지금 다시 상영되더라도 당대 중국은 물론 우리사회를 적나라하게 풍자할 것이다. 

영화는 중화민국 건국 8년인 1920년의 혼란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는 중국은 각 지역에서 토호들과 마적떼가 할거해 서로 경쟁하던 때였다. 마오쩌둥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유명한 말을 한 것도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비슷한 1927년이었다. 영화 줄거리는 장마즈라는 두목이 이끄는 마적떼가 거위성이라는 작은 마을에 부임하던 현장을 볼모로 잡고, 마을주민을 착취하던 토호세력과 한판 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장마즈는 토호의 돈을 빼앗아 주민들에게 나눠주면서 "내가 이곳에 온 건 세 가지 목적 때문"이라면서 "첫째도 공평(公平), 둘째도 공평, 셋째도 공평"이라고 일장 연설한다. 그러면서 "더는 토호를 두려워하거나 무릎을 꿇을 필요가 없다"며 주민들에게 봉기하라고 부추긴다. 토호에게 빼앗은 돈을 나눠줘도 두려움에 떨며 주저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장마즈는 총을 나눠주고 분노를 부추겨 토호세력을 물리치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데 성공한다.

영화 속 대사인 '공평'은 마오쩌둥이 즐겨 부르짖던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화두로 떠오른 문재인정부의 국정철학 '평등과 공정, 정의', 이 세 가지를 모두 합쳐 놓은 것과 같은 의미다. 영화에서 토호를 무너뜨린 마적떼와 마을 사람들은 곧바로 거위성을 떠나 상하이로 뿔뿔이 떠난다. 이는 개혁개방 이후 '돈을 벌기 위해 세상에 뛰어든다'는 뜻의 샤하이(下海)를 비유했다. 중국 현대사의 흐름을 패러디한 듯한 거위성은 그 후 공평한 세상이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 인민들은 <총알이 날아가게 내버려두라>는 영화 제목을 본떠 '讓油價飛 讓物價飛 讓房價飛'라고 토로한다. "기름값이 오르게 내버려두라, 물가가 오르게 내버려두라, 집값이 오르도록 내버려두라"는 뜻이다. 중국에서 이처럼 '기회가 평등하지 않고 과정이 공정하지 않고 결과가 정의롭지 않다'는 인식이 퍼진 건 후진타오 전 주석에 이어 법치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집권한 시진핑 주석에 와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한국에선 문재인정부도 위기를 맞았다. 이 정부는 '총 대신 촛불'로 박근혜정부를 무너뜨리고 탄생했으나 법무부 장관에 지명된 '조국 후보자 사태'가 터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모든 국민이 바라는 세상은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이다. 법과 상식은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규범이다. 중국에서 법 위에 공산당이 있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법과 더불어 상식과 국민 정서가 있다.

중국을 이끄는 사실상의 최고 권력집단인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7명)이 되려면 수십년 동안 혹독한 당내 경쟁과 검증을 거치게 된다. 물론 우리와 같은 공개적인 청문회는 없다. 그러나 중국에서였다면 조 후보자가 지금껏 제기된 각종 의혹을 해명하고 검증을 통과해서 정치국에 진입할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해본다. 독재체제를 무너뜨리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구가하게 된 지 30여년이 지난 우리사회가 사실상 공산당이 독재하는 중국보다 더 낫다는 우월감 따위는 더는 가지지 않는 것이 좋겠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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