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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무신불립(無信不立)
2019-10-14 07:00:00 2019-10-14 07:00:00
서명수 슈퍼차이나 대표
무엇이 문제일까. 검찰일까, 조국일까. 그것도 아니면 썩어빠진 우리 사회가 '도덕불감증' 같은 중병에 걸린 것일까. 두 달째 이어진 '조국 사태'는 그 이전과 이후를 확연하게 가르고 있다는 점에서 자정기능 없이 달려온 우리사회의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정치권력의 주류 기득권이 된 586 운동권 문제 △교수들의 사회참여와 앙가주망 간의 괴리 △진영의 문제 △판·검사 출신 등 법조계와 대학교수라는 거대한 두 카르텔의 담합 등 그동안 제대로 드러나지 않던 우리사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선 오히려 긍정적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국회 등 여야 정치권은 물론 온 국민이 조국 문제에 몰입, 편가름 대결로 분열이 심화됐다. 고용과 노동시장 및 경기 위축 등 민생은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역사인식을 둘러싼 한일 양국의 경제보복 등 관계 악화와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강대국과의 외교적 불협화음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기이한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총체적 국가위기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지만 조국 사태가 모든 이슈를 뒤덮고 있다.

이참에 우리사회를 이끌어 온 프레임을 개혁하지 않고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 아래 정치보복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사회 주도세력을 교체해야 한다. 우리 정치권력의 주류는 지금껏 '법조 카르텔'과 '교수집단'이라는 양대 세력이었다. 20대 국회에선 586 운동권 세력이 다른 한축을 차지하면서 삼분하는 양상이 됐다. 20대 국회 당선자의 6분의 1, 그러니까 48명의 판·검사와 변호사 등 법조인이었다. 사정기관인 경찰 고위간부 출신까지 합치면 이른바 법조 카르텔은 54명에 이른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사법시험을 통과한 변호사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추미애 전 대표와 송영길·박범계·진영 의원, 야당에선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홍준표 전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 등이 법조인이다. 검사나 판사 출신의 정계진출은 다른 직업군에 비해 더 수월했기 때문에 법조 카르텔과 정치의 유착이 심화됐을 것이다. 특히 정치적 현안에 개입한 판·검사 출신들이 다음 총선에 공천을 받아 출마하는 걸 보면 정치권에 의한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은 요원한 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엔 판·검사 출신보다 문 대통령의 주요 지지그룹인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부상했지만, 그들 역시 법조 카르텔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마 온갖 의혹에도 불구하고 '조국 법무부 장관 카드'가 폐기되지 않고 채택된 건 여권의 차기 대권구도와 긴밀하게 연결됐기 때문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기존 정치권에 물든 인물이 아닌 새로운 세력교체를 통한 후계구도를 구상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문 대통령이 조국 장관 임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무시하고 조국 사태를 장기적으로 끌고 가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조국 장관 역시 우리사회를 이끌어 온 법조·교수 카르텔의 핵심 당사자다. 더구나 조국 장관은 사시를 거치지 않았을 뿐 법학 교수로서 살아오며 '폴리페서'로서의 폭넓은 경륜까지 갖췄다.

교수들의 정치 참여에 대해선 양론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대학에 있어야 할 교수들이 선거 때마다 각 정당의 싱크탱크나 유력 후보자 지지선언에 앞장서는 건 사회개혁과 사회변혁이 아니라 폴리페서의 전형이다. 앙가주망은 '권력에 저항하는 지식인의 사회참여'이지 교수직을 버리고 장관이 돼서 정권에 참여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앙가주망의 역사에 대한 모독이자 견강부회(牽强附會)다.

2017년 7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뒤를 이을 차세대 중국 지도자그룹에서 선두로 꼽히던 쑨정차이(孫政才) 충칭시 서기가 실각했다. 쑨 전 서기는 공산당 기율위원회 조사 결과 280억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시 주석 취임 이후 중국에선 '부패와의 전쟁'이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전개되고 있다. 지난해 부패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성·부급(차관급) 이상 당과 정부의 고위직 간부는 무려 18명이다. '권력과 부패는 양립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오늘의 중국을 이끌었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통치의 기본으로 삼는 것이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인민의 신뢰를 잃으면 설 땅이 없다. 다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의 평범한 진리를 꺼내든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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