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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낙찰제도 개선해 엔지니어링 경쟁력 키워야”
이재열 한국엔지니어링협회 정책연구실장 “시공사 위주 성장, 엔지니어링은 뒷전…실비 반영해 대가 지급해야”
2019-12-23 06:00:00 2019-12-23 06:00:00
[뉴스토마토 김응열 기자] 건설현장의 기본은 도면이다. 설계도가 없으면 건물을 올리거나 땅을 팔 수 없다. 엔지니어링은 이 도면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산업이다. 공사 현장에서 시공을 제외한 모든 과정을 통칭하기도 한다. 건설산업의 밑바탕인 만큼 무게감이 남다르다. 하지만 국내 엔지니어링업계를 둘러싼 환경은 녹록하지 않다. 이재열 한국엔지니어링협회 정책연구실장은 국내 설계 용역 낙찰 제도가 업계의 경쟁력 향상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실장은 엔지니어링산업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일 먼저 시작했다. 관련 업계에서 이 같은 연구자료를 내놓는 곳은 사실상 엔지니어링협회가 유일하다. 이 실장은 국내 대형 엔지니어링사에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업계 발전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엔지니어링의 개념이 어렵고 낯선 게 사실이다
 
엔지니어링의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건설사업을 보면 사업기획과 타당성 조사 등 사업개발, 기본설계와 EPC(상세설계, 조달, 시공) 등 건설, 이후 시운전, 운영관리 등의 활동이 필요하다. 넓게 보면 이 중 시공을 제외하고 기술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활동을 엔지니어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건설현장에서 엔지니어링의 중요성은 시공보다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시공사 위주로 산업이 성장했고 국내 정책도 시공사 중심으로 이뤄진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엔지니어링 발전이 뒤처져 있다.
 
우리 엔지니어링업계의 국제 경쟁력은 어느 수준인가
 
낮은 편이다. 최근 5년간 세계 엔지니어링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1%대 수준이다. 미국 건설전문지 ENR의 225대 해외엔지니어링 기업에 이름을 올린 국내 기업의 평균 매출 금액은 1억달러(약 1100억원)로 글로벌 12대 기업의 평균 매출과 비교할 때 4%에 불과하다. 시공 중심의 해외건설 사업모델도 중국 등 후발국에게 밀리는 상황이다. 고부가가치 산업인 엔지니어링에서 기술력이 오르지 않으면 건설강국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경쟁력이 밀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제도가 뒷받침해주지 않는 영향이 크다. 일단 엔지니어링 업체가 국내 공공사업에서 제값을 받기 어렵다. 엔지니어링 사업비 지급에 공사비요율방식과 실비정액가산방식 등 두 가지가 있다. 실비정액가산방식은 설계 작업에 투입한 비용만큼 대가를 받는 방식이다. 공사비요율방식은 공사비 중 특정 비율을 설계비로 책정하는 방식이다. 실비정액가산방식보다 이 편이 20~30% 정도 저렴하다. 근데 낙찰가격도 예정가격의 60~70% 수준이다. 이미 낮은 금액에서 설계요율로 설계비를 고정해버리니 설계 용역 비용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실비정액가산방식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업 대가가 낮으니 설계 용역 수준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정해진 비용 안에서 설계를 완수해야 하니 창의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국내 엔지니어링 경쟁력이 향상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외국은 어떤가
 
미국 등 선진국은 엔지니어링이 건설 프로젝트 전체를 이끌어가도록 엔지니어링 중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공공발주사업에서 엔지니어링 낙찰자를 선정할 때는 기술력만으로 낙찰자를 결정하는 QBS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또 실비투입 원가에 5~6% 정도의 수수료를 더해 사업비를 지급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프로젝트의 목적이 예산 절감이 아니라 시설물의 생애주기 동안 비용을 최소화하고 안전을 강화하는 등 최고의 시설을 만드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런 모습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한다.
 
업계 내부적인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해외 M&A는 엔지니어링 역량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다. GS건설은 스페인의 수처리업체 이니마를, 삼성물산은 영국의 LNG설계사 웨소를 인수했다. 이 같은 M&A로 역량과 실적을 확보한다면 세계에서 발주하는 엔지니어링 사업도 수주할 수 있다. 아울러 진출국을 다변화할 필요도 있다. 지금 우리 기업은 중동, 아시아 편중이 심하다. 이 때문에 이들 지역 상황에 따라 산업 변동도 커진다. 진출 시장을 넓히고 특히 미국과 같은 선진국 시장 진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엔지니어링 선진국인 미국에 진입했다는 건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입증 받았다는 의미다.
 
산업 발전을 위한 연구를 하면서 느끼는 보람은 없나
 
연구를 진행하면서 힘든 점이 많지만 보람도 크다. 우리 연구실이 출범하기 전까지는 엔지니어링 업계에서 제대로 된 연구가 사실상 없었다. 관련 학회나 포럼에서 우리가 발간한 자료를 자주 참고하고 있는 듯 한데, 내용이 좋다며 격려하고 고마워하는 분들이 많아 뿌듯하다. 
 
이재열 한국엔지니어링협회 정책연구실장. 사진/뉴스토마토
 
이재열 한국엔지니어링협회 정책연구실장이 국내 엔지니어링업계가 주로 진출한 중동 지역을 지도에서 가리키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한국엔지니어링협회. 사진/뉴스토마토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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