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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유정현 "정치 다시는 못할 것 같다"
입력 : 2014-03-13 오후 4:12:45
◇유정현 (사진제공=tvN)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90년대 유정현을 몰랐던 사람은 많지 않다. 1993년 SBS에 입사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맡았다. 특히 '한밤의 TV 연예'를 오래 했고, 예능 프로그램도 적지 않게 출연했다. 지금 전현무 같은 느낌이었다. 초콜릿 광고까지 찍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지난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돌연 정치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서울 중랑갑에 전략공천을 받았다.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에 엄청난 표가 몰렸고, 유정현도 승리했다. 국회의원으로서 발걸음을 뗐다.
 
4년이 지난 뒤 19대 총선에서는 공천을 받지 못했고, 결국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22.9%라는 적지 않은 득표를 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지난해 방송으로 복귀했다.
 
정치인의 길을 걷다가 실패하고, 다시 방송을 하기로 결정했다. 사람들의 눈초리가 좋지 만은 않았다. 그런데 tvN '더지니어스2'를 통해 다시 인기를 얻고 공중파(KBS2 '대변인들')에도 입성했다.
 
방송인에서 정치인, 다시 방송인으로 돌아온 독특한 포지션의 소유자 유정현과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 '더지니어스2' 현장에서 은지원에게 "고모(박근혜 대통령)한테 말 좀 잘해줘"라는 얘기를 농담삼아 자주했다고 들었어요. 왜 그런말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100% 농담이에요. 콘셉트였지. 정치를 했던 사람이 어린 친구한테 비굴하게 보이고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콘셉트. PD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나봐. 엄청 웃겼는데. 다 편집했더라고.
 
툭하면 '국정원에 내가 심어준 사람이 한 둘이겠어?'라면서 뻥도 쳤지. 다 농담이었어요.
 
-정치를 다시 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어떤 기사를 보니 '정치권이 나를 받아줄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했더군요. 할 생각이 없다는 말도 하긴 했는데, 그 속마음이 정말 궁금해요. 만약 기회가 생긴다면 정치권으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세요.
 
▲(고민)기회가 생기지가 않을 것 같아요. 공식적으로 정치 안하겠다고 한 사람을 다시 뽑겠어요? 다시 할 것 같지 않아요.
 
한 가지 빚이 있어요. 저와 같이 탈당한 분들. 그 분들이 지역에서 오래동안 사신 터줏대감들이에요. 당원으로 활동을 같이 했고. 새누리당 당원이라는 것만으로도 프라이드가 있었는데, 저만 보고 같이 탈당했죠. 그 분들에게 죄송하죠.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이 참 죄송한 직업인 것 같아. '중랑구 하늘을 쳐다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다니는데 진짜 그래요. 서민들 볼 때마다 죄송해요. 일자리가 없는 젊은 친구들,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프신 분들, 다 죄송스러운 마음만 있어요.
 
모르지. 뭐에 이끌릴지 모르죠. 입문할 때는 정치가 어떤 건지 몰랐어서 쉽게 입문했는데, 이제는 알잖아요. 못 갈 것 같아요. 국회의원 친구들도 많이 있는데, 밤에도 만나고 점심에도 만나는데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국회의원은 내가 갈 길이 아닌 것 같아요. 2년 후에는 출마할 확률이 0%고 6년, 10년 후에는 모르겠네.
 
-집은 아직도 중랑구에 있나요.
 
▲전세가 끝나서 이사했어요. 하하.
 
- 왜 국회의원을 했을까가 궁금하네요. 방송인으로서 굳이 잘 활약하고 있는데 왜 갔을까 싶었어요. 게다가 프리랜서여서 돈도 많이 벌었을 것 같고, 이유가 딱 떠오르지 않아요.
 
▲사람들에게 꿈을 쫓는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이런 말하면 건방져 보일거야. 당시에는 꿈이 없었어요. 꿈을 이룬 것 같았어요. 몇 년이나 했다고 선배들 앞에서 그런 말 하면 안 되지만. 근데 그 때는 그랬어요.
 
연말에 연기대상 시상식 MC로도 서고, 광고도 많이 찍었어요. 아나운서 출신으로는 정말 과분한 사랑을 받았죠. 그런 거를 깊게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 땐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또 집안에 나랏일을 하신 분들이 많아요. 남자로 태어나서 나라를 위해 일을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죠. 방송에 대한 매너리즘, 집안 상황, 개인적인 욕심 이런게 복합적으로 작용했어요.
 
-그러면 그 전에 프리랜서는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꽤 일찍 SBS를 나왔는데.
 
▲사실 아나운서가 됐을 때 '능력이 없으면 다른 걸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는데, 재밌더라고 방송이. 정말 일 많이 했죠. 그러다가 프리랜서 선언하기 1년 전에 과로로 쓰러졌어요. 육체적으로 못 버티는 수준이 된 거죠. 그래서 6개월만 방송 쉬고 '제작본부로 파견해달라'고 요청했어요.
 
그 때 숙직이 있었는데 주중에는 방송하고 주말에는 숙직하고 이러니까 몸이 못 견디는거야. 그래서 간부들이 한 결정이 '회사를 관둬라'였어요. 대신에 KBS나 MBC 출연은 안 하는 걸로 하고 SBS와 전속계약 하는 걸로 했어요. 4년 동안.
 
파격적인 대우죠. 모든 PD들이 '관둬라'고 했어요. 대신에 '너는 무조건 쓴다'고 해줬어요. 출연료는 적당히 많이 받고 계약금을 많이 받았죠. 축복받으면서 일했어요. 외부행사도 마음껏 하고. 광고도 찍고 드라마도 하고 예능도 찍었죠. 조오련씨랑 독도 횡단도 같이 하고.
 
그렇게 너무 축복을 받다보니까, 그 고마움을 몰랐었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정치를 하게 된 거죠.
 
-국회의원과 유정현 궁합이 잘 맞았나요. 방송은 재밌고 즐겁게 한 것 같은데, 국회의원으로서의 4년은 어땠나요.
 
▲이게 구조적으로 원치 않는 일에 휩쓸일 일이 너무 많아요. 내 성격이 대차기보다는 순리에 순응하는 면이 강한데, 아 이건 힘들더라고.
 
예를 들어 4대강이면, 야당에서 반대가 심했어. 그러면 이렇게 야당이 반대가 심하니 2대강만 하자고 제안했어요. 많은 의원들이 공감했다고.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냐. 강을 낀 여러 도시에서 '우리 강은 꼭 해야 된다'고 말해요. 돈을 쏟아부어주겠다는데 누가 마다해. 그런 게 힘들더라고.
 
종편도 마찬가지 논리에요. 2개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4개가 됐지. 4개가 오버였다는 건 여당 의원들도 다 알아요. 그러면 종편을 안 준 두 신문사는 적이 되는데 어떡해요. 그런 경우가 너무 많았어요. 
 
정치인이 하는 일 중 가장 큰일이 우선순위를 정하는 건데 그것도 어렵지만 내부적인 사정을 맞추려고 하면 더 힘들어요.
 
-19대 총선 때는 공천을 받지 못했어요. 어떤 과정이 있었던 건가요.
 
▲그래도 내가 23%를 받았어요. 저처럼 득표율이 좋았던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그 때 아마 내가 새누리당 후보로 나갔으면 됐을 거 같아요. 당내에서 후보를 정할 때 내가 37%였고, 다른 후보들이 5%, 3%, 3%였어. 그러면 2~3등 경선해서 나랑 또 경선하는 시스템으로 가는게 상식적인 건데, 4등을 후보로 냈어.
 
그 때 환멸을 많이 느꼈죠. 나름대로 내 재임기간 동안에 구청장을 당선시켰고, 구의원이 한 명 더 나왔는데. 그런 인정은 없고, 칼자루를 쥔 사람에 의해 공천이 당락된다는 상황이 힘들었죠.
 
그래서 무소속으로 나간 거예요. 아마 안 나갔으면 후회했을거야. 미련이 남아서 아직도 국회를 서성였을지도 몰라요. 당에 대한 중요성도 그 때 알았고.
 
-국회의원이 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지 얼마 안 됐을 때였는데, MBC '명랑 히어로'와 전화통화를 했어요. 그때 질문이 '왜 국회의원이 됐냐'였는데, 첫 번째 답이 '이명박 대통령이 좋아서, 돕고 싶어서'라는 말을 했어요. 개인적으로는 그게 굉장히 불편했던 대답이에요. 국회의원이 개인적인 감정으로서 나가는 자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격 자체가 솔직해서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아요. 포장을 한다거나 그런 성격이 못돼고 실제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좋게 생각해요. 지금도. 개인적으로 한 나라나 민족을 봤을 때 지도자가 서민들의 삶의 패턴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획기적인 능력을 펼칠 대통령이라고 생각했어요. 기업인 대통령으로서 역량이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있었죠. 물론 실망도 있어요.
 
공과를 따지기에는 조금 빠른 부분이 있고, 그 당시 여당의원으로서는 아무래도 공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게 사실이죠. 기억은 안 나는데 그런 희망을 나름대로 표출한 것 같아요.
 
- 비록 한 번 밖에 안해봤지만, 정치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은 크게 실망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일 년에 한 두 번 정도는 당 내에 큰 선거가 있어요. 당 대표 선거나 원내 대표 선거 같은. 누군가에는 죽일 놈이 될 수밖에 없는 게 정치라고 생각해요.
 
만약 내가 누굴 밀어줬어요. 그러면 그 분도 감사하게 생각하죠. 근데 그게 밥 한 번 사주고 그 정도지 뭐 다른게 많지 않아. 반대로 떨어진 사람에게 있어서 나는 나쁜 놈이 돼요. 원치 않는 적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성격자체가 조금 두루뭉술한 편이라서 적을 만들고 살지 않는데, 그런 부분에서 괴로웠어요. '형님 못 도와드립니다'라고 딱 말을 해야되는데, 멀리서 찾아온 사람이 도와달라고 하는데 그 말을 어떻게 해. 노력하겠다고 하는데 참.
 
만약 세 사람이 경쟁을 하는데 절대선도 없고 절대악도 없어요. 경력도 비슷하고 일도 다 잘해. 그러면 뭐가 가장 중요하겠어요. 친분이야. 누가 나랑 더 친하냐, 누가 나에게 자리를 주냐. 이런 고민을 하는 거지. 그 판단도 너무 애매하고. 나도 수 없이 그런 고민을 했고.
 
최종적으로 결정을 투표 직전에 내리는 경우가 많아요. 홍준표 대표를 뽑을 때만 앞장섰어요. 그 때 빼고는 다 결정을 쉽게 못했지. 홍준표 대표 때 앞장섰던게 유탄이 컸죠. 도왔던 사람 대부분이 공천을 못 받았어. 홍준표 대표도 낙선했고.
 
- 공천을 못 받았던 과정에 그런 이유도 있었던 거군요.
 
▲그런 셈이죠. 뭐 지금은 뭐 지난 일인데. 허허.
 
그런걸 다 아는데 어떻게 다시 정치를 해. 애들 봐서라도 못해요. 
 
-개인적으로 국회의원으로서 노력한 게 있다면 뭐가 있나요. 개인적인 노력을 말한다면.
 
▲4년 6개월 간을 술집에 안 갔어요. 술을 잘 못하지만 술자리는 즐겨요. 친한 친구들하고 술자리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안했어요. 철두철미하게. 그런 컨트롤은 잘 했어요.
 
근데 그러면 뭐해. 여배우랑 스캔들나고 그러는데.
 
-(사실 여배우와 스캔들 질문은 안 하려고 했다. 인터뷰이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먼저 꺼냈다. 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먼저 말을 꺼내셨네요. 안 물어보려고 했는데. 정말 스캔들일 뿐인가요. 왜 그런 스캔들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나요.
 
▲나는 100% 정치적인 음모라고 생각해요. 그게 2010년 6.2 지방선거 투표 23일 전에 발생한 거예요. 그 전에도 얘기가 있었다고 했는데, 온라인에 퍼진 건 그 때야.
 
그 때 내가 구의원을 공천했는데, '공천한 놈들 뻔하다'라는 말을 끄집어내려고 한 거겠죠. 선거운동 3일 전인데 타이밍이 얼마나 절묘해.
 
결국에 공식 수사의뢰했어. 범인도 잡았어요. 세 명 잡았어. 그 중 한 명은 야당 관계자였어요. 단 한 번이라도, 1대 다수라도 같이 자리를 해서 본 적이 있으면 수사 의뢰를 못했겠죠. 근데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 때 세 사람이 벌금을 700만원, 500만원, 500만원씩 받았어요. 세게 받은거지. 그렇게까지 수사의뢰를 한 건 집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요. 정치하면서 포기하는 부분도 많지만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부분이 가정이에요.
 
언젠가는 그 여배우를 만났으면 좋겠어요. '너는 왜 입을 꾹 다무냐'고 뭐라하고 싶어. 사실 현역 의원이랑 배우랑 스캔들이 나면 배우는 피해자예요. 의원은 가해자고. 거기 소속사 대표 진짜 만나보고 싶어. 얘기 좀 하게. 얼마나 힘들었는데.
 
-국회를 뒤로하고 방송국으로 돌아왔는데, 이제 나이가 47세입니다. 아직은 창창한 나이라고 생각하는데, 목표가 있을까요.
 
▲일단은 바뀐 방송시스템에 적응하는 게 우선이에요. 정글화가 됐더라고. 서로 서로 물어뜯어. 무서워 죽겠어 아주.
 
그 다음에는 연말 시상식 MC로 다시 서는 거예요. SBS에서 아직도 내가 MC섰던 것을 보여준대요. 연예인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내가 잘하는 건 연예정보프로그램이고 생방송 MC에요. 다시 그 무대에 서고 싶어요. 시상식은 이 나이에도 극복할 수 있는 영역 같아요.
 
함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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