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지난 2012년도부터 2013년까지 한국영화는 부흥기라 할 정도로 흥행을 누렸다. 2년 연속 관객 1억명 시대를 열었다. 올해 역시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았다.
1월~5월 누적 관객수는 8062만명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8095만명보다 33만명 감소한 수치다. 세월호 참사 등이 있었던 것을 미뤄보면 낙차가 크다고는 할 수 없다. 여전히 관객들은 영화관을 많이 찾고 있다.
지난해 한국영화는 콘텐츠 면면을 따져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뒤쳐지지 않다는 것을 입증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만 놓고 봤을 때 한국영화는 다소 부진하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500만 이상 영화가 4편(<7번방의 선물>, <베를린>, <은밀하게 위대하게>, <감시자들>)이나 된 것에 반해 올해는 <수상한 그녀> 단 한 작품이다. 기대를 모았던 <역린>과 <표적>등은 400만에도 미치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비록 <끝까지 간다>가 선전했지만 대박이라고는 할 수 없다.
반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 지난해 <아이언맨3>만이 홀로 국내 박스오피스 10위권에 진입한 것과 달리 올해 상반기에는 총 6편(<겨울왕국>,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져>, <엣지 오브 투모로우>, <논스톱>)이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상반기 극장가는 외화가 분전한 반면, 한국영화는 기대에 못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겨울왕국>·<수상한 그녀> 포스터 (사진제공=소니 픽쳐스 릴리징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CJ엔터테인먼트)
◇<겨울왕국>·<수상한 그녀>의 투톱체제
지난해 <7번방의 선물>이 광풍을 불러일으켰다면 올해는 미국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겨울왕국>은 1029만명을 동원해 올해 천만 관객을 넘긴 유일한 영화다.
강력한 마법을 가진 공주 엘사와 언니를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안나의 이야기를 담은 <겨울왕국>은 탄탄한 스토리 위에 독립적인 여성상을 부각시켰고,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OST까지 겹쳐지면서 하나의 문화현상을 만들었다.
국내 여가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렛잇고'(Let It Go) 커버 영상을 만들었고, 각종 패러디가 SNS를 장악했다. 여행상품과 아이들의 장난감 등 원소스 멀티유즈 효과가 일어났다.
<겨울왕국>과 함께 지난 1월과 2월 극장가를 독식한 영화가 <수상한 그녀>다. 어느날 갑자기 70세 할머니가 20세 처녀가 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주인공 심은경의 연기와 나문희, 박인환, 성동일, 이진욱 등 핵심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시너지 효과를 이루면서 865만 관객을 동원했다. 올해 500만 관객을 넘긴 유일한 한국영화다.
<겨울왕국>이 다양한 문화현상을 일으켰다면, <수상한 그녀>는 톡톡 튀는 기발한 소재와 배우 심은경에 관심이 쏠렸다. 예상을 뒤엎는 소재와 유머 속에서 세대간의 갈등이라는 주제의식이 엿보여 호평을 받았다.
특히 심은경은 이를 발판으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전도연, 문정희 등 연기파 배우들을 제치고 영화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두 영화는 올해 상반기 최대 흥행작이다. 3위는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로 현재까지 428만 관객을 동원 중인데, 이는 <겨울왕국>과 600만, <수상한 그녀>와 400만 이상 차이가 난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올해 외화가 강세라는 의견이 많은데, 사실 정말 잘된 외화는 <겨울왕국> 뿐이다. 나머지 영화들은 사실 지난해 흥행 기준이었던 500만을 넘지 못하고 있다"며 "올해 관객들이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다고 봤을 때 관객들이 한 영화에 집중하지 않고 영화의 폭을 넓힌 것으로 해석된다"고 평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CJ엔터테인먼트)
◇외화의 강세라기 보다는 한국영화의 부진
23일 현재 두 영화를 제외한 박스오피스는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428만),<어메이징 스파이더맨2>(416만),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져>(396만), <엣지 오브 투모로우>(392만), <역린>(384만), <표적>(284만), <끝까지 간다>(269만), <논스톱>(208만) 순이다.
지난해 10위를 기록한 <더테러라이브>가 558만 관객을 동원한 것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초라한 수치다. 특히 <엑스맨>과 <스파이더맨>, <캡틴 아메리카> 등의 히어로물은 국내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작품들인 것을 미뤄볼 때 올해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뤄냈다고 보기 힘들다.
외계 종족과의 전쟁 안에서 타임루프라는 소재를 적절히 접목시킨 <엣지오브투모로우>만이 영화의 힘만으로 흥행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까지 큰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500만을 넘기기는 쉽지 않아보인다.
외화가 자신의 길을 간다고 본다면, 한국영화는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진 셈이다. 올해 기대작으로 불렸던 작품들이 기대했던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현빈의 복귀작과 초호화 멀티캐스팅, <다모>와 <베토벤 바이러스>를 연출한 이재규 감독의 입봉작에 5월 황금연휴에 맞춰 개봉해 관심을 모은 <역린>은 당초 천만 영화로 꼽혔으나 400만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내놨다.
조선시대 정조1년 '정유역변'을 소재로 만든 이 영화는 비주얼에서는 합격점을 받았지만, 몰입을 저해하는 지루한 스토리 전개와 다양한 배우들이 조화되지 않은 이야기로 평단의 뭇매를 맞았다. 아울러 세월호 참사로 인해 극장가가 얼어붙은 것도 흥행 실패의 영향으로 꼽힌다.
<7번방의 선물>로 천만 배우로 우뚝선 류승룡의 복귀작 <표적> 역시 반전이 있는 스토리와 속도감 있는 전개는 돋보였지만, 과도한 설정과 알맹이 없는 주제로 인해 큰 실적은 남기지 못했다.
장동건과 김민희, <아저씨>의 이정범 감독이 호흡을 맞춘 <우는 남자>(59만)와 차승원과 장진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인 <하이힐>(33만)은 이름값에 못미치는 성적을 거뒀다. 또 하지원 주연의 <조선미녀삼총사>(48만), 정재영과 한지민 주연의 <플랜맨>(63만), 이종석과 박보영 주연의 <피끓는 청춘>(163만) 등 스타마케팅에도 불구하고 초라한 성적을 남긴 작품이 적지 않았다.
올해 현재까지 개봉된 국내 상업영화 중 평단의 가장 큰 호평을 받은 <끝까지 간다>가 블록버스터 사이에서 살아남아 270만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점이 기대이상의 성과로 유일하게 꼽힌다.
◇하반기를 장악할 블록버스터 (사진제공=쇼박스미디어플렉스, CJ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하반기를 주목해야"
지난해 박스오피스 10위권에 상반기에 개봉한 영화가 3편(<7번방의 선물>, <은밀하게 위대하게>, <베를린>이나 이름을 올렸고, 500만 관객을 넘긴 <감시자들>은 11위에 랭크됐다. 각 배급사에서 공을 들인 영화들이 상반기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한국 블록버스터라 불릴만한 영화가 많지 않다. <역린>, <표적>, <우는 남자> 정도가 100억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된 작품들이다. 위 영화들이 기대만큼 못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실패한 영화가 많다고 볼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영화관계자들은 "2014년도 한국영화는 하반기를 더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각 배급사의 야심작들이 7월부터 줄줄이 개봉한다. 쇼박스미디어플렉스는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가 재회한 <군도:민란의 시대>를 7월 23일 개봉할 예정이다. CJ엔터테인먼트의 야심작인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과 최민식, 류승룡이 호흡한 <명량>은 한 주 뒤인 30일 개봉 예정이다.
또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손예진과 김남길이 주연하고 <댄싱퀸>의 이석훈 감독이 만난 <해적:바다로 간 산적>을 오는 8월 6일, 지난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인 NEW는 봉준호 감독이 제작하고 <살인의 추억>의 각본을 맡은 심성보 감독이 연출을 맡은 김윤석, 박유천 주연의 <해무>를 8월 13일 개봉할 예정이다.
국내 최대 배급사라 불리는 4곳이 한 주 간격으로 야심작을 쏟아낸다. 지난해 <설국열차>와 <더테러라이브>에 이어 <숨바꼭질>, <감기>가 2주 사이에 개봉해 약 2360만 관객을 동원한 이력이 있어 4개 영화 모두 원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한 관계자는 "지난해 7~8월 사이에 개봉된 네 개 영화가 모두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남겼다. 올해는 그 작품의 면면이 지난해보다 뛰어나다는 소문이 자자하다"며 "상반기에 한국영화가 부진하다는 의견이 많은데 8월이 지나봐야 한국영화의 흥행과 부진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에도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 전도연과 김고은, 이병헌 주연의 <협녀:칼의 기억>, 유하 감독과 이민호 주연의 <강남 블루스>, 정우성 주연의 <마담 뺑덕>, <써니> 강형철 감독의 <타짜2> 등 굵직한 영화들이 하반기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영화 뿐 아니라 <트랜스포머:사라진 시대>, <혹성탈출:반격의 서막>, <드래곤 길들이기2>, <주온:끝과 시작> 등 내로라 하는 블록버스터들이 하반기 개봉을 앞두고 있어 하반기를 더욱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