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사진제공=킹콩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SBS 예능 <런닝맨>만 보면 이광수는 유쾌하고 즐거운 인물이다. 가볍고 뺀질거리고, 선배들도 어려워하는 김종국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도망간다. 하지만 이광수를 직접 만나면 당황하게 된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기 때문이다. 이광수와 신나게 수다를 떨 생각으로 인터뷰 현장을 찾아다가 실망한 기자들도 적지 않다.
본인도 정말 잘안다. "<런닝맨> 생각하셨다가 실제로 만나고 실망하신 분들이 많아요.(웃음)"
그렇다고 이광수가 <런닝맨>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냐고 물으면 답은 '아니'다. <런닝맨>에서의 활발하고 쾌활한 모습도, 실제 진지한 모습도 모두 이광수다. 사람에게는 다 여러가지 모습이 있는데, 그 폭이 좀 더 클 뿐이다. 모호하고 아이러니한 것이 이광수의 매력이다.
그런 이광수가 또 한 번 아이러니한 매력을 선보인다. 영화 <좋은 친구들>에서는 진지하다 못해 우울하고, 마음씨는 누구보다도 고운 캐릭터 민수를 연기한다. '연기는 아직 그리 잘하는 건 아니지 않냐'는 일부의 시선을 완전히 돌려놓는 뛰어난 연기를 펼친다.
개봉 전에 앞서서 시사를 한 기자들 사이에서 이광수의 연기력은 호평 일색이다. "물음표에서 느낌표가 됐댜"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감정의 과잉이 있을 법한 장면에서 정확히 절제를 하고, 다소 튀는 행동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답답할 정도로 착한 민수에서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죄책감을 느끼며 고통받는 민수의 두 가지 모습을 완벽히 전달한다.
지난 2일 서울 삼청동 소재의 커피숍에서 이광수를 만났다. 첫 만남이었다. 기자가 낯설었는지 답답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한 마디 한 마디를 꺼내는 이광수였다. "저는 지금 이렇게 행동하는 게 정말 편해요"라는 이광수. 그의 매력을 들여다봤다.
◇이광수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시나리오에서 받은 복합적인 감정이 좋았다"
<좋은친구들>에서 이광수는 지성, 주지훈과 함께 한 축을 맡았다. 지성과 주지훈은 이미 다양한 작품에서 좋은 연기력을 펼쳤던 이력이 있기 때문에 이광수의 무게감이 처질 수 밖에 없었다.
막상 뚜껑을 열면 지성과 주지훈에 못지 않은 이광수를 발견할 수 있다. 유리병에 발바닥이 찢어져도 아픈 기색을 하지 않고 연기를 이어갈 정도로 열정도 보인다. "이광수가 이 정도였어?"라는 생각이 든다.
대화 내내 겸손한 화법을 구사하는 이광수는 이번 작품에서의 연기 만큼은 만족스럽다는 기색을 비췄다.
이광수는 "영화를 두 번 봤다. 촬영하면서 모니터도 하고 반성을 할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전반적으로 만족한다"며 "내가 시나리오에서 읽었던 그 느낌을 어느정도 표현한 것 같다. 다른 길로 나가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좋은 친구들> 이도윤 감독에 따르면 이광수는 민수 역할을 하고자 하는 열정이 대단했다고 한다. 이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의지를 강하게 표현했다고 한다.
"시나리오 보고 정말 하고 싶었어요. 정이 많이 갔어요. 또 착한 민수에서 사건을 겪고 복합적인 심정을 느끼는데 그걸 꼭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고민이 많았다. 한 신 한 신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 감독과 대화도 많이 나눴다. 술을 물처럼 마시는 민수는 알콜 중독자다. 그의 생활적인 면까지 따라하려고 노력했다. 술을 마시고 연기한 장면이 적지 않다. 한 번에 소주 3병을 들이키고 촬영에 임한적도 있다.
이광수는 "민수가 알콜 중독자인데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이라 민수가 술을 먹는 신에는 늘 술을 먹고 촬영했다. 술에 쩔어있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실제로 술을 마셨다"고 설명했다.
이번 역할을 통해 주조연급으로 성장할 거라고 말해줬다. 그정도로 임팩트가 있다. 지금보다도 더 비중도 크고 분량도 많은 역할이 늘어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짧게 "감사합니다"라면서 고개를 숙였다. 칭찬에 어쩔 줄 몰라하는 듯 보였다.
"사실 이번에 뭘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니었거든요. 최대한 있는 그대로 그냥 했어요.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은 있는데, 돋보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본 것 같아요. 그럼 작품에 방해가 될까봐요."
◇이광수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런닝맨>은 가족..나는 연기자"
작품에 대한 얘기를 꾸준히 나누면서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지하게 한 마디 한 마디 꺼내는 이광수의 모습이 너무도 심각하다고 해야할까. 유머러스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어 나름 센 질문을 던졌다.
"이광수는 예능인이냐 배우냐."
사실 정체성이 모호한 구석이 있다. 적지 않은 작품에 출연했고, 이름을 알린 것도 연기자였다. 하지만 연기자로서 큰 인정은 받지 못했었다. <불의 여신 정이> 때부터야 이광수의 재발견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그전에는 <런닝맨>에서 웃기고 당하고 뒤에서 사기치는 '기린 광수', '배신 광수' 이미지가 더 강했다.
"연기를 계속 할 거면 이쯤에서 <런닝맨>을 그만하는 것도 좋지 않겠냐"고 덧붙여 물어봤다. 어떤 질문에든 한 텀 정도 시간을 두고 대답했던 이광수는 이번 질문 만큼은 기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말을 이었다.
"저는 연기자로 시작해서 지금도 연기를 하고 있어요. 제 정체성은 연기자입니다. 물론 다수의 분들이 저를 예능인으로 보고 있기도 하죠. 처음에는 정말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오랜 고민 끝에 내린 판단이 '고민을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예요. 연기를 위해서 <런닝맨>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런닝맨> 가족의 일원으로 폐지될 때까지 최선을 다 할 거고요. 그렇다고 연기자인 저를 예능인으로 생각하는 분들에게 일일이 '나는 배우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거잖아요. 그저 작품에 대해서 몰입하고 잘하는 게 저를 위해서 발전하는 길인 거 같아요."
가장 궁금했던 내용이다. 모호한 정체성의 이광수.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지가 궁금했다. 이광수는 민수와 닮았다. 자기주장이 없고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행동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대답만큼은 소신이 뚜렷하게 묻어났다.
그래도 여전히 이광수는 아이러니하다. 어쩌다 연예계에 입문하게 됐냐고 물으니, "어렸을 적부터 관심받는 것을 좋아하고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해서 이 일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저음의 목소리로 진중한 표정을 짓고 조용히 말하는 말투와는 전혀 상반된 내용이다.
"아이러니한 면이 강하다"고 하니 이광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게 말한다. 아까는 이렇게 말해놓고 이건 또 왜 이렇게 말하냐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그 모든 점이 나다. 내가 그런 걸 어떡하겠어요"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고 모호하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주관은 있다. 그래서일까 연기도 행동도 낙폭이 크더라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모호한 이광수, 아이러니한 이광수. 그래서 더 매력적이라고 본다. 190cm나 되는 그의 키처럼 쭉쭉 커나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