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훈 (사진제공=큐브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국내 연예계에서 비(정지훈)만큼 갑작스럽게 스타가 된 인물도 없을 것이다. MBC <천생연분>에서 10여초의 '각기' 춤으로 얼굴을 알리게 된 뒤 수 년간 승승장구를 이어나갔다. 음반이면 음반, 무대면 무대, 연기면 연기. 어떤 분야에서든 비는 최고의 성적을 일궈냈다.
그렇지만 스타가 된 뒤에는 행보가 순탄치 않았다. 악성 루머와 법적 분쟁이 계속됐고, 대중들의 시선도 예전만 못했다. 할리우드에 진출한 뒤에도 평판은 나아지지 않았고, 지난 겨울 비가 음반을 냈을 때는 "이번에 망할 것"이라는 예상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방송3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냈다.
그런 그가 또 한 번 실력을 검증받는 무대에 선다. SBS 새 수목드라마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이하 <내그녀>)가 그것이다.
드라마로서는 이례적으로 방송 전 기자들과 배우들이 가볍게 저녁자리를 갖는 호프데이가 지난 16일 열렸다. 영화의 경우 촬영이 모두 끝난 상태에서 홍보의 목적으로 미디어데이를 갖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드라마는 촬영 도중이기 때문에 시간을 내는 것이 거의 힘들기 때문에 이색적인 자리였다. 방송 3사 통틀어 최초로 갖는 호프데이에서 정지훈을 만났다.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정지훈을 두고 다른 기자들로부터 "딱딱하다", "허세가 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선 제작발표회 자리에서 선배 배우인 박영규가 정지훈을 두고 "어린 친구가 저렇게 어른스러운 생각을 하기 힘든데, 지훈이는 고생을 많이 한 것 같다. 나 정도의 내공이 있다"고 말할 때도 드라마 주인공을 향한 선배 배우의 '립서비스' 정도로만 생각했다.
직접 만난 정지훈은 내 생각이 선입견이었다는 느낌을 줬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도 솔직한 태도를 보였다. 말에도 허세보다는 진심이 묻어있었다.
◇"돋보이고 싶지 않아요"
편안해 보였다. 종종 배우들은 기자들과 처음 만나면 어색해 하기도 하는데 여유가 흘렀다. "아마 다들 처음 보실텐데 잘 도와주셔야 합니다"라며 능글맞게 웃음을 지어보이는 모습에서부터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기자들에게 맥주를 일일이 따라준 뒤 건배를 외치기도 했다. 칭찬을 하나 던졌다.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는데 발음이 정말 좋아졌다"고 말했다. 정지훈은 3개월 동안 발음과 발성연습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아직도 아침에는 '가나다라마바'를 한 음절씩 말해요. 연습한 지 한 달 뒤에 발음이 확실히 좋아졌어요. 기본기가 탄탄해야 뭘 해도 잘 할 수 있겠더라고요."
<내그녀>의 전작이 <괜찮아, 사랑이야>였다. 노희경 작가에 조인성, 공효진의 드라마였지만, 시청률은 10%초반이었다. 마니악하다는 평가로 마무리 됐다. "전작이 더 잘됐었으면 기대도 컸을텐데 조금 아쉽지는 않냐"는 질문이 던져졌다.
"전작이 30%가 나와도 내가 만드는 음식이 맛없으면 아무도 먹지 않더라고요. 처음에만 반짝 먹고 결국에는 줄어들게 돼 있어요. 내걸 잘 만드는 게 중요하죠."
시청률 얘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지금은 10%만 나와도 중박이라는 시대다. 거기다 남자 주인공이라는 자리.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았다.
정지훈은 "사실 엄청난 대박은 기대하지 않아요. 솔직히 말하면 딱 이정도만 유지해서 40살 넘게까지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에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고 물었다.
"그렇죠. 아마 가수들 중에 제가 업앤다운이 가장 큰 가수 2위일 겁니다. 1위가 싸이형이고요. 이제는 대박나서 엄청 관심받고 싶지도 않고요. 그냥 이정도만 유지하고 싶어요. 못했으면 '죄송합니다 잘하겠습니다'라고 하고, 호평을 해주면 '고맙습니다 잘하겠습니다'라고 하고 그냥 꾸준히 이 정도만 유지하고 싶어요. 더 잘돼서 관심이나 기대를 받고 싶지 않아요. 그냥 제가 하는 일을 즐겁고 행복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말은 진실해 보였다. 그간의 루머와 법적분쟁을 겪으면서 고생 끝에 얻은 결론 같았다.
"사실은 왜 좀 더 이런 대화의 자리를 갖지 못했었나 후회가 돼요. 대화를 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었는데. 사실이 아니니까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대화를 해야 오해가 풀린다는 것을 늦게 알았어요."
요즘에 그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진정성이란다. 진정성이 있으면 대중은 알아봐준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대하면 알아주더라고요. 그게 누구든 간에요.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진정성으로 다가가고 싶어요."
◇"브루스 윌리스를 이기려고 했던 성격..이젠 고쳤다"
정지훈과 진행된 20분 간의 대화는 즐거웠다. 허세나 독기도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가 꺼낸 말은 "이제는 후배들이 더 돋보였으면 좋겠다"였다. "저 보다는 후배들이 더 카메라에 예쁘게 나오고 더 많은 칭찬을 받았으면 좋겠다. 내 앞가림하기도 힘든 처지지만 더 많이 알려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어쩌다 이렇게 변한 것일까. 누구에다도 지지 않으려고 열심한다는 소리를 듣는 정지훈이었다. 어째서 자신을 내려놓게 된 것인지 궁금했다.
"그게 제 문제였어요. 뭘 할 때든 이겨먹으려고 하는 거요. 선배들 앞에서 지지 않으려고 눈 한 번 안 깜빡이고 부라리고, 대사 안 틀릴려고 완벽하게 준비하고, 엄청 가혹하게 저를 다뤘죠. 브루스 윌리스 만났을 때도 지지 않으려고 했어요. 이제는 저보다는 제 주위가 더 빛났으면 좋겠어요."
이 드라마에는 가수 출신 연기자들이 대거 포진됐다. 정지훈을 비롯해 에프엑스 크리스탈(정수정), 인피니트 엘, 베스티 해령 등 다양한 가수들이 연기에 도전한다.
정지훈은 "후배들을 촬영장에 불러 하는 말이 있다. 가수 출신 연기자라고 주눅들 건 없지만 겸손할 필요는 있다고 말하곤 한다. 지금 당장 신인 연기자를 불러서 해보라고 하도 너희들처럼 못할거라고 말하면서도 시청자들이 혹평을 하면 받아들이라고 한다. 나중에 이 아이들이 마지막 회차에서 많이 발전했다는 말을 듣고 뿌듯해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확실히 선배로서의 성숙함이 엿보였다. 이날 일찍 다른 스케줄을 찾은 정수정에 대한 배려도 있었다.
"수정이는 외국에서 오래살다 와서 그런지 기자들과 만나서 인터뷰를 하는 게 굉장히 힘들다고 한다. 마치 한국 사람이 외국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는 느낌일 거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얼굴이 빨개진단다. 많이 예뻐해주셨으면 좋겠다. 뒤에서는 정말 착하고 순수하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친구다."
"진정성이 있으면 통합니다"는 비. 그의 진정성을 오래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