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 포스터 (사진제공=메가박스)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의혹이 있으면 검증하는 게 언론인이 해야 될 일 아닙니까?"
진실을 파헤치고자 하는 언론인의 말에 방송사 고위 간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진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야!"
16일 언론을 통해 베일을 벗은 새 영화 <제보자>는 언론의 부끄러운 민낯을 낱낱이 깐다. 약 10년 전 '황우석 사태'를 소재로 삼아 언론의 얼굴을 벗긴다.
영화는 양심을 지닌 과학자 심민호(유연석 분)가 자신이 모시던 줄기세포분야 권위자 이장환(이경영 분) 박사의 진실, 즉 "줄기세포는 없다"는 사실을 시사 교양 PD 윤민철(박해일 분)에게 제보하면서 출발한다. 윤민철을 처음 만난 심민호는 마치 이 시대 언론인에게 말하듯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진실이 우선입니까?, 국익이 우선입니까?"
"진실이죠. 진실이 궁극적으로 국익을 위하니까요."
말로는 쉬워보이지만 실상은 어렵고 험난한 길을 택한 윤민철 PD는 스타 과학자로 떠오르며성역이 된 이장환 박사의 의혹을 검증하기 시작한다.
◇<제보자> 스틸컷 (사진제공=메가박스)
조금씩 진실에 근접해가던 윤 PD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한다. 이장환을 추앙하는 대국민적 열기와 이장환에 굴복한 기성 언론이었다. 영화는 "같은 국민끼리 그러지(괴롭히지) 맙시다"라는 택시기사부터 방송사 앞에 모여 '취재 불허'를 요구하는 국민들, 이장환을 만나 "알아서 잘 써드리겠습니다"라고 웃음을 흘리는 주요 신문사 편집국장 등의 모습에서 과연 10년 전 '황우석 사태'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지 되묻는 듯 하다.
영화는 이처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을 끊임 없이 환기시킨다.
연출을 맡은 임순례 감독은 진지하고 성실하게 당시 사건을 재현한다. 약 3년 간의 시나리오 집필기간, 임 감독이 연출을 맡은 후 재시작된 1년 간의 시나리오 수정과정을 거친 이 영화는 취재가 상당히 집요하게 이뤄졌음을 전면에 드러낸다.
당시 시사프로그램 PD의 취재과정 면면이 영화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심지어 "검찰 조사가 있을 것"이라는 거짓말을 이용한 취재마저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 외에 다소 어려운 용어가 포함된 줄기세포 관련 이야기들도 어렵지 않게 풀어낸다.
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언론인의 모습을 통해 이 시대 국민이 원하는 언론인의 군상을 그린다. 영화를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낀 언론인는 비단 기자뿐만은 아니지 않을까. 같은 직업군에 있기 때문인지, 진실을 쫓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존경에 앞서 반성하게 됐다.
민감한 소재와 무거운 주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재미있다는 게 이 영화의 장점이다. '역사가 스포일러'인 <제보자>는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높은 긴장감을 준다. 빠르고 매끄럽게 진행돼 약 2시간의 런닝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틈틈이 엿보이는 임 감독의 유머감각 또한 수준급이다.
◇<제보자> 스틸컷 (사진제공=메가박스)
배우들의 열연 역시 영화를 한 단계 높이 끌어올린다. 윤민철 PD를 맡은 박해일은 자신의 주특기를 다시 한 번 꺼내들었다. 정의로운 얼굴로 관객 앞에 선 그는 완벽히 윤민철을 수행한다. 진실만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박해일의 눈빛에서 영화를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느껴진다.
요즘 충무로에서 가장 바쁘다는 말을 듣는 이경영은 '역시 이경영'이었다. 황우석을 모델로 한 인물 이장환을 연기한 그는 선량함과 애국심으로 가득찬 열정적인 과학자와 그 이면으로 세상을 기만하고 거짓을 일삼는 이중적인 모습을 훌륭히 표현한다. 영화 말미 자신의 행위에 후회를 하는 모습에서는 '황우석 면죄부' 논란이 예상될 정도로 뛰어난 연기를 펼친다.
또 한 명 주목해야 될 인물은 유연석이다. tvN <응답하라 1994>를 통해 대학생 칠봉을 맡아 풋풋한 첫 사랑을 성공적으로 연기한 유연석은 양심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과학자 심민호로 이미지 변신에 도전한다.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전 진실만을 말하고 있어요"라는 그의 대사에 제법 무게가 실린다. 그에게는 스펙트럼이 좁지 않음을 입증하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제보자> 스틸컷 (사진제공=메가박스)
심민호의 아내 김미현으로 분한 류현경과, 윤민철의 버팀목인 시사 프로그램 팀장 역의 박원상, 후배들을 믿고 징계를 견뎌내는 편집국장 역의 권해효, 팀내 에이스로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후배 PD 송하윤, 단 한 장면이지만 존재감을 보이는 김원해까지 아쉬운 연기자가 없다.
영화는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길임을 시사한다. 방송사 사옥 앞에서 항의 촛불집회를 벌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진실만 이야기하면 우리 편일 줄 알았는데.."라고 아쉬움을 드러내는 윤민철의 대사는 가슴을 무겁게 한다.
결국 진실이 승리한 싸움이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과연 현재의 언론은 10년이 지난 작금에 진실을 쫓고 있는지, 오히려 퇴행하지는 않았는지, 잃어버린 10년이 된 건 아닌지 고민하게 만든다.
영화계에서 흔히 하는 말로 "언론인이 멋있게 나오면 영화는 잘 안되는 징크스가 있다"고 한다. 묵직한 울림을 주는 <제보자>. 이번 만큼은 그 징크스를 철저히 깨부수기를 고대한다.
10월 2일 개봉. 상영시간 11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