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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사회적 합의 있나?
입력 : 2015-12-03 오전 6:00:00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윤리적 투자, 사회책임투자는 한국사회에서 매우 생소한 단어였다. 그러나 요즘은 산전벽해, 격세지감이란 말이 너무나도 가슴에 와 닿는다. 국민연금은 UN 사회책임투자원칙(PRI: Principles of Responsible Investment) 가입 이후 계속 사회책임투자 규모를 확대해 현재는 그 투자 규모가 6조원을 넘는다.
 
이런 외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각종 제도적 장치가 속속 마련되고 있다. 지난해 말 통과된 '국민연금기금의 ESG 고려와 공시'를 규정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국민연금이 투자할 때 투자대상의 ESG 즉 환경, 사회, 지배구조 요소 등을 고려할 수 있고, 관련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또 9월초 발의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지침 마련'을 담은 법안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의결권 행사에 관한 기본원칙과 세부 기준 및 절차 등에 관한 사항, 상법 등 관계 법률에 따른 주주권 행사 기준 등이 포함되어 있다. 더불어 금융위원회는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도입을 별도로 추진하고 있다. 이런 외형상의 움직임을 보면 사회책임투자가 제대로 한국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면을 곰곰이 살펴보면 여전히 수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우선 국민연금 사회책임투자의 외형과 실제의 괴리다.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은 2015년 10월 국민연금공단 국정감사에서 “국민연금공단은 사회책임투자(SRI)를 위하여 2009년 UN PRI에 가입은 하였지만, 현재까지 UN PRI 회원국의 유일한 이행사항인 연례보고서 발행과 평가 과정 참여에 불참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공단은 2014년 2월 ‘의결권 행사지침’ 개정을 통해 종전의 ‘사회책임투자는 환경, 사회, 기업지배구조 등 사회책임투자 요소를 고려하여 의결권을 행사한다’에서, ‘사회’를 삭제하고 ‘책임투자는 기금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률 제고를 위함’이라는 조항을 추가하여 스스로 사회책임투자를 포기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국민연금은 실제로 지난 몇몇 문제가 발생한 기업들에 대한 주주 의결권 행사에서 일반 국민들의 정서와 상반된 결정을 내린 적이 여러 번 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책임투자원칙의 수립과 합리적이고 단계적인 이행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은 정책수립의 과정에서 지금처럼 지나치게 학계 및 금융전문가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연금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수렴 프로세스를 시급히 구축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방안은 국민연금 전반의 사회적 역할, 운용 원칙, 지배 구조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역대 정부 중 그 누구도 국민연금의 독립성 확보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기금운영본부장을 정권의 코드에 맞는 인사들로 바꾸어 정부 스스로가 국민연금의 독립성을 훼손시키는 데 앞장서왔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을 위해 독립성을 제고해야 하는 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그 정책이 펼쳐져 왔다는 것이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국민연금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 기금 운용은 제도와 별도로 자산 운용의 문제이기에 기금 운용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하며, 이해 당사자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기금운용위원회를 금융전문가 중심으로 상설화하고, 별도의 기금운용공사를 설립해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되고 있다.
 
반면 야당과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제도와 기금은 분리될 수 없으며, 기금 운용의 안정성과 실질적인 가입자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가입자 단체가 기금 운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 주장은 기금의 공공적 투자 강화로 이어진다.
 
기금 운용 체계 개편에 대한 핵심 이슈는 크게 수익률 vs. 안정성·공공성, 전문성 vs. 대표성, 독립성 vs. 책임성 등인데,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히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이런 이슈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 원칙과 규정에 관한 방법론만으로는, 한국에서 사회책임투자가 제자리를 잡기는 요원할 것이다.
 
박주원 CSR서울이니셔티브 운영위원장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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