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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한국엔 성공한 기업은 많지만 존경받는 경영인은 드물다"
국내 기업 몸집은 커졌지만 윤리경영 의식은 낮은 수준
입력 : 2015-11-26 오전 6:00:00
배출가스 조작을 둘러싼 폭스바겐 사건은 기업 사회책임(CSR)의 중요성을 다시 환기시켰으며, 이제 기업들에게 CSR이 무시할 수 없는 가치가 되었음을 못 박는 이정표가 되었다.
 
지난 12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현대아울렛 내 패션센터에서 열린 ‘사회책임 토크콘서트’는 이러한 세계적 변화를 거듭 확인하는 자리였다. ‘기업의 윤리경영과 사회적 책임’을 주제로 마이크를 잡은 박기찬 인하대 교수는 프랑스 팡테옹(Pantheon)에 묻힌 위인 중 관료나 경영자 출신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들처럼 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분들을 국립묘지에 모셔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기업의 성장과 윤리경영의 관계
 
박 교수는 먼저 기업의 성장과 윤리경영 간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며 “윤리는 돈이 되지만, 돈은 윤리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꺼냈다. 실제로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윤리경영 수준은 결코 세계적 수준에 와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오랫동안 존속하기 위해선 ‘올바르고 떳떳한 경영’과 ‘청렴한 조직문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박교수는 강조했다.
 
이어 ‘하인리히의 법칙’을 들어 윤리경영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즉 비윤리적 경영이 계속된다면 언젠가 기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박 교수는 폭스바겐 사건을 가리켜 “기업에서 부정부패 한 건이 표출되었을 때는 이미 그러한 조짐이 300건 이상 있었음에도 계속 흘려보내다가 큰 사고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하며 ‘윤리적 예방’을 역설했다.
 
◇존경받는 기업인, 경영자가 드물어
 
박 교수는 “한국엔 성공한 기업이 많지만 존경받는 기업과 경영자가 드물다”고 꼬집었다. 인정받는 경영자들에겐 나름의 경영철학이 있는데, 정주영 회장의 사업보국(事業報國), 유일한 선생의 제약보국(製藥報國), 박태준 회장의 제철보국(製鐵報國)에는 대한민국의 경제기반을 굳건히 한 창업자들의 철학과 경영이념이 배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경영권이 다음 세대로,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지면서 이러한 철학과 정신은 사라지고 오로지 수익에만 관심을 기울인다”고 비판했다. 피터 드러커가 제시한 ‘경영의 3대 기본요소’인 수익창출(profit), 사회적 책임(responsibility), 혁신(innovation)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면서 세 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소홀하면 존경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사회적 책임과 윤리경영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당면한 실천과제로 삼기보다는 여전히 논의와 모색의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진단이다. 사회 분위기에 따라 마지못해 대응하는 수준을 벗어나야 선순환 구조에 접어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멘스의 반부패, 교보의 윤리경영
 
박 교수는 청렴문화의 모범사례로 독일의 지멘스와 한국의 교보를 들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지멘스는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 진출한 세계적 기업이다. 하지만 2006년에 경영진이 1억 유로가 넘는 공금을 빼돌린 사건이 발각돼 회사의 존립마저 흔들리는 위기에 처했다. 당시 준법감시 최고책임자 요제프 빈터는 “사업보다 중요한 게 준법이다. 준법에 실패하면 바로 문을 닫겠다”고 선언하고 단호하게 내부의 부패 척결에 나서면서 지멘스는 위기를 헤쳐 나올 수 있었다. ‘법규준수(Compliance)’는 CSR에서 가장 기본에 해당한다.
 
교보의 윤리경영은 다산 정약용의 철학에서 따온 것이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가장 바람직한 경우가 ‘옳은 일을 하면서 이익을 얻는 것’이고, 그 반대편은 ‘옳지 않은 일을 하며 이익을 얻지도 못하는 것’이라고 자식들에게 일렀다고 한다. 교보가 광화문 네거리의 ‘좋은 목’에 고급상가가 아니라 서점을 연 건은 ‘옳은 일을 하며 이익을 얻는 것’을 좇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SNS가 유력한 ‘기업 감시자’로 떠올라
 
박 교수는 기업의 윤리경영을 감시하는 데 SNS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SNS 시대에서 부정부패와 비리를 은폐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졌다”면서 지속가능경영 대상이나 윤리경영 대상을 선정할 때 인터넷 자료 등을 통해 네거티브 스크리닝(Negative Screening)이 이뤄지고 있음을 거론했다. 네거티브 스크리닝은 횡령·배임이나 시장질서 위반 등 기업의 부정을 수집하고 측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불가(佛家)에서는 아무리 선업(善業)을 짓더라도 악업(惡業)을 지울 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면서 “기업이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나쁜 일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즉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만큼이나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과거에는 실정법의 도덕적 기준이 국민정서보다 높았지만 SNS와 스마트폰 보급 등으로 실시간 소통이 활발해지며 지금은 역전됐다고 한다.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SNS가 때때로 여론재판이라는 부작용으로 흐를 수도 있지만 “SNS와 NGO가 경영자와 관료들을 견제하는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SNS에 나타나는 현시대의 윤리적 정서와 가치를 기업들이 제대로 파악하고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진다.
 
박 교수는 블룸버그통신 분석 자료를 제시하며 국내 기업들이 이사회에서 ESG(환경·사회· 거버넌스) 현안을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ESG가 다뤄지지 않는 이유로 단기성과 위주의 가치관과 중간관리자의 게이트 키핑(이사회 의제에서 배제)을 지목했다. 때때로 기업이 부당하다고 여길 정도로 가해지는 이해관계자들의 무리한 요구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ESG가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직결된 가치인 만큼 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박 교수는 “윤리의 기준은 간단하다. 방송에 가끔 옷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나오곤 한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더라도 괜찮은가, 다시 할 수 있는 것인가’라고 묻고 ‘괜찮다’는 답이 나오면 행동하라”는 말로 두 시간에 걸친 강의를 마무리했다.
 
연말까지 계속되는 사회책임 토크콘서트는 금천구청 구로공단노동자생활체험관이 주최하고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이 주관,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가 후원한다.
지난 12일 열린 '사회책임 토크콘서트'에서 박기찬 인하대 교수가 기업의 윤리경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KSRN 유혜림기자
KSRN 김용재ㆍ송윤아기자
편집 이동형 집행위원(www.ksrn.org)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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