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기업과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존 러기 하버드대 교수를 특별 대표로 임명하여 6년간의 광범위한 작업을 통해 지난 2011년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을 채택했다. 이행 윈칙은 ‘기업의 인권침해를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 인권을 존중해야 할 기업의 책임; 사법적/비사법적 구제책 마련’의 세가지 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엔 인권이사회는 원칙 실행을 위한 실무그룹을 임명하고, 동향 논의 및 이해관계자의 대화와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포럼을 운영하기로 했다.
이에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차례의 연례포럼이 유엔 제네바 사무국에서 열렸고, 지난해는 전 세계 기업, NGO, 각국 국가인권위, 유엔글로벌콤팩트 로컬 협회, 학계 등 2천 여명의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여 기업과 인권 이슈에 관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한국에서도 처음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및 다수 공기업, 시민사회 등 필자를 포함해 최대 인원이 참여했다.
유엔은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2011)’ 채택에 이어 각국의 국가행동계획(National Action Plan, 이하 NAP) 수립을 권고하고, 2014년 12월에는 각국의 NAP 수립과 이행을 위한 프로세스와 방향 안내 제공을 목적으로 지침서를 제시하였다. 현재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 핀란드 등 7개 국가가 기업과 인권에 관한NAP를 수립했고, 40여개 국가가 수립을 검토하거나 준비 중이다.
지난해는 6월 독일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에서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 지지 선언에 이어, 9월 전세계 정상이 모여 채택한 ‘2030 지속가능발전 아젠다’ 에서 전세계의 빈곤 퇴치, 포용적 성장, 기후변화 대응 등으로 구성된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169개 세부목표 달성을 위한 기업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기업이 준수해야 할 주요규범으로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을 언급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국제법적 구속력을 지닌 기업과 인권 관련 조약 제정을 위한 논의도 이미 시작됐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기업과 인권 분야에 대한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논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국가인권위에서 수년간 기업과 인권 이슈 확산을 위해 연구 및 이해관계자 포럼 등을 실시하고, NAP 연구를 통해 권고안을 마련할 예정임에도, 기업과 인권 이슈 해결의 핵심 당사자인 정부 부처와 민간 기업의 관심과 참여는 저조하다. 극히 소수의 기업들이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에 대해 지지를 선언하고, 지속가능보고서에 포함하거나 ‘인권경영 선포식’과 같은 행사를 통해 의지를 천명할 뿐이다. 또한 이행원칙의 중요한 축인 비사법적 구제절차 중 하나로서, ‘다국적기업에 관한 OECD 가이드라인’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모든 OECD 회원국들이 NCP(National Contact Point)를 설치했고, 한국은2000년부터 NCP를 운영해오고 있으나 NCP의 실질적인 역할 강화와 개선 요구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과 인권에 관한 국가의 계획을 설정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NAP를 수립한 유럽국가들의 전례를 보더라도, 정부 부처 간 협력 및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이끌어내고, 광범위한 평가, 분석 및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은 대단한 수고를 요하는 일임을 알수 있다. 현재 인권, 노동 이슈와 관련된 국내 상황을 보면 NAP 수립까지는 더욱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국제 사회에서 책임 있는 정부와 기업의 역할을 이행해야 할 우리의 위치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서 리스크 관리 및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 투자 유치 등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국제 흐름을 외면할 수는 없다. 이제라도 기업과 인권 관련 모든 정부 부처 및 기업, 시민사회, 학계 등이 머리를 맞대고 실효성 있는 NAP 수립을 위한 구제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은경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