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시작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영유아와 산모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PHMG)는
1994년
SK케미칼에 의해 국내에서 처음 개발되었다
. 인체 호흡독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1997년부터 가습기 살균제품들이 속속 출시되어 매년
60만개씩 팔렸다
. 그리고
5년 후인
2002년 옥시 제품을 사용한 유아가 사망하는 첫 사례가 발생했고
, 2006년에 원인 미상의 소아 급성 간질성폐렴 사망자가 또 발생했다
. 2011년 임산부
4명이 원인 미상의 폐질환으로 연이어 사망하자 보건복지부는 그때서야 역학조사에 들어갔고
,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 미상 폐손상 위험요인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 발표 후
5년이 지난
2016년 검찰은 수사를 시작했다
. 결국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최초 사망 이후
9년이 지나서야 사건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났고
, 14년이 지나서야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기업에게 법적 책임을 따질 수 있게 된 것이다
.
보이지 않는 재앙의 끝
가습기 살균제품이 출시되고부터 2011년 정부의 가습기살균제 수거명령이 내려지기까지, 사망자가 146명이나 될 때까지 무려 14년 동안 소비자들은 죽음을 부르는 독성물질제품을 아무런 의심 없이 사용해왔다. 2016년 4월4일까지 신고된 피해자는 1500명이 넘고 정부의 3차 조사 등을 포함하면 사망자가 230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2015년 서울대 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2%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하니 앞으로도 피해자는 늘어나게 될 것이다.
죽음으로 드러난 책임도 회피한 기업
가습기 살균제 원료(PHMG) 제조회사인 SK케미칼(당시 유공)은 1994년 “가습기의 물때를 제거하며 인체에 전혀 해가 없는 제품을 개발했다”고 밝힌바 있다. SK케미칼은 그동안 가습기살균제 원료의 90%를 공급해왔고, 정부가 밝힌 피해자 중 90%가 SK케미칼 원료로 만든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피해자들이다. 2013년 심상정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SK케미칼은 가습기살균제 원료의 흡입독성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가장 많은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회사는 옥시 레킷벤키저이다. 옥시 레킷벤키저는 2011년까지 11년간 450만개나 되는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했고, 이 제품을 사용한 소비자 중 103명이 사망했다. 정부가 1, 2차 조사에서 밝힌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사망자 146명 중 70%를 차지한다. SBS 보도에 따르면 옥시는 2011년 12월 주식회사 옥시 레킷벤키저를 해산하고 같은 날 유한회사 옥시 레킷벤키저를 설립했다. 자사 제품으로 많은 소비자가 사망한 사실을 알고도 ‘형사소송법 상 피고인격인 법인이 존속하지 않으면 공소가 기각이 된다’는 점을 악용해 책임을 피하려 했다면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마땅하다.
의무를 팽개친 정부
보건복지부는 가습기살균제가 사망 원인이라는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고도 피해 문제는 제조사와 소송하라며 소비자를 외면했고,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환경보건법상의 환경성질환으로 결정된 이후에도 피해신고조차 제대로 받으려 하지 않았다. 처벌과 퇴출이 필요한 곳은 보건복지부와 환경부이다. 공정거래위원회도 TV 등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가 안전하다며 허위광고한 옥시 레킷벤키저에 5000만원, 홈플러스와 버터플라이이팩트에 각각 100만원씩 총 5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 롯데마트 등에는 경고조치만 내려졌다. 많은 소비자의 죽음을 부른 마케팅을 한 업체에 대한 처벌이라고 볼 수 없다.
소비자 안전을 보호할 기업 사회책임과 국가 의무
안전 책임을 져버린 기업들의 간접 살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146명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수백명의 생명을 지금도 위태롭기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소비자보호정책 기초가 된 유엔 소비자보호지침(UN Consumer Protection Guideline)은 건강과 안전 위험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할 국가의 의무를 요구하고 있고, 기업 사회책임의 원칙을 제시하는 ISO26000 사회책임지침(Guidance on Social responsibility)은 안전한 제품만을 제공할 기업의 사회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정부의 소비자보호정책도, 기업의 사회책임도 작동하지 않았던 우리나라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가장 많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사용한 옥시레킷벤키저의 공식 입장 발표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은숙 서울연구원 초빙선임연구위원/ISO 소비자정책위 제품안전작업반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