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을 준비하면서 여러 검색 포탈에 ‘CSV(공유가치창출)’ 혹은 ‘CSV 보고서’라는 키워드를 이용하여 기사를 찾아보았다. 그 결과 몇 가지 패턴을 확인하였는데, 첫째로는 여전히 CSV와 사회공헌이 구분되지 않고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해외지역에서의 사회공헌 활동이 CSV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둘째는 필자가 분명히 이전에 ‘CSV보고서’를 발간한 사실을 파악하고 있거나 각종 기사에 ‘CSV보고서’를 발간하였다고 소개된 기업의 홈 페이지와 각종 자료를 아무리 찾아봐도 관련 제목의 보고서를 게재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첫째와 같은 사실은 여전히 기업들이 CSV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선택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의 경우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보고서를 발간하고도 홈 페이지에 게재하지 않았을까? 궁금증을 참지 못해 해당 기업들의 ‘CSV보고서’ 대신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일일이 체크해보았다. 내용을 보면 ‘CSV’팀이나 위원회를 갖고 있다고 기술된 경우가 많았다. 계획, 회의, 보고가 되고 있단다. 그런데 그 구체적인 진행과정, 결과물, 향후 계획 등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왜 이런 경향이 관측될까?
추측을 해보자면 첫째, CSV란 이름은 걸어놓았지만, 실제로는 한 것이 없을 수 있고, 둘째, 무언가 하기 했지만 드러내놓고 홍보할 만한 결과물이 없거나, 셋째, 결과물이 있기는 하나 자기들 스스로도 이것을 CSV의 결과물로 내놓을 만한 것인가 판단이 안서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경우는 세 번째이다. 몇몇 안면이 있는 기업체의 CSR담당자가 연락을 해와 CSV컨설팅을 의뢰하거나 개인 자문을 구할 때 한결같이 궁금해 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CSV활동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입증하여 내외부에 인정받을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처음에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사업이 한참 진행된 뒤에 이제 와서 평가 및 측정 기준을 만들겠다니?
마이클 포터 교수의 CSV 핵심이론 중 하나는 지역 클러스터링의 구축이다. 즉 사회문제의 파악과 이의 해결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 생산, 유통, 소비를 위해서는 지역주민, NGO, 협회, 정부, 협력업체 등과의 계획, 실행, 평가 과정에서의 유기적인 시스템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특히 어떤 사회·환경적 이슈가 지역사회에서 시급히 해결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선택된 이슈가 상품 및 서비스로 개발 및 제공되는 과정에서의 각 이해관계자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지, 제품 및 서비스의 재무적 성과는 어느 정도로 예상되며, 해결되는 사회·환경적 가치를 어떻게 측정할 것 인지, 장기적인 비전과 계획 수립 등은 어떻게 수립해야 할 것인 지 등과 같은 ‘CSV 사업’의 승패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기업은 CSV를 파편적으로 이해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진행 자체도 매우 일방적이고 자기만족적으로 진행하면서, 오로지 그 사업을 인정받을만한 이론적 근거만 찾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는 마이클 포터 교수의 ‘CSV이론’ 자체가 개별 기업주도의 이론이기도 한 측면이 크다.
사업 영위 지역 주민과 사업 파트너들이 대상화된 개별기업 중심의 CSV모델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 인식하에 경기도내에서의 CSV사업 모델 개발 시도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한 NGO의 주도하에 각종 지역문제 전문가 및 단체들은 요즈음 경기도 지역 내에서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사회·환경적 이슈의 정리, 마을조직들의 활성화 정도, 지방자체단체의 지원 및 협력 의사, 비즈니스를 실행할 사회경제조직과 기업들의 파악 및 평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말까지 시범사업 1개를 진행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크게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CSR전문가로서 이론적 프레임에 갇혀서, 왜 지역이 선도하는 CSV모델에 대해서 상상하지 못했는가하는 뼈저린 반성을 하게 된다. 지역이 주도하고, 기업이 결합하는 한국형 CSV모델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박주원 CSR서울이니셔티브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