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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서점은 상품이 아닌 사람 중심의 공간이어야 합니다”
노원구 문화 플랫폼 ‘더 숲’ 탁무권 대표 인터뷰
입력 : 2017-02-06 오전 8:00:00
노원역 5번 출구 근처에는 독특한 문화 공간이 있다. 영화관과 갤러리, 카페와 공연장이 서점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더 숲이 바로 그 곳이다. 노원구 중심가에 위치한 입구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탁 트인 넓고도 아늑한 공간을 마주할 수 있다. 저마다 편한 자리에 앉아 도심 한가운데서의 문화생활을 만끽하는 이들의 얼굴에서는 여유가 엿보였다.
 
마치 비밀스러운 아지트를 연상케 하는 이곳은, 개관한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지금 노원 주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 했다. 이처럼 진화된 형태의 서점이 있기까지,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탁무권 대표(사진)의 역할이 중요했다. 사회적 자본 개념이 취약한 우리 사회에서 무모한 도박을 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그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교육역할 수행 가능한 사람중심 문화 공간 표방
 
- 더 숲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1994년 노원문고를 개점했다. 출판사에서 근무하고 번역작업을 하며 책과 가깝게 지내다 보니 서점을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노원구 상계동에는 한창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었다. 비즈니스 차원에서 신도시는 탁월한 입지 조건이 된다. 노원구에 서점을 차린다면, 지역민들의 아쉬운 점을 해소해 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사업을 시작할 때 스스로 다짐한 것이 있다. 수익금을 통해 기부를 하고 싶었다. 다행히 개점 1년이 지나지 않아 흑자를 볼 수 있었다. 헌데 기부를 반복하다 보니 무언가 맞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서점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기보다, 서점 자체가 지역 사회의 기부 자원으로 자리매김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10년 동안 아이디어 구상을 했다. 서점을 기반으로 직원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사업적 측면과 사회적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진화된 형태의 서점 운영을 계획했다. 이것이 더 숲의 탄생 배경이다.
 
- 진화된 서점을 운영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철학은 무엇인가.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 서점은 단순히 서적만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다양한 생필품을 함께 팔며 상품중심의 생활밀착형 공간으로 지역민들과 소통한다. 이 점에 착안했다. 다른 부분이 있다면, 더 숲은 상품이 아닌 사람중심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이들이 한데 모여 강의를 듣고 공연을 즐기며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래서 영화관과 갤러리, 공연장과 카페를 응축시켰다. 진화된 서점 형태의 문화 플랫폼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 공간이 단순 상업 공간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교육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설정했다.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함과 동시에,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가치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싶었다.
 
기성세대와 달리 청소년들은 작은 변화에도 큰 동기를 부여 받는다. 학생들이 이곳을 방문해 마음껏 토론하고 대화하길 희망했다. 예컨대 우리 더 숲에서 상영되는 영화에는 일정한 선정기준이 있다. 단순 오락성만을 추구하는 작품은 철저히 배제된다. 휴머니즘, 역사, 문화와 관련된 작품만이 상영 가능하다. 갤러리 역시 동일한 원칙에 입각해 운영된다. 학생들이 긍정적이고 따뜻한 메시지를 품게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공유공간을 통한 사회공헌 가치 인식 재고 필요
 
- 사회공헌이 녹록치 않은 현실에도 불구, 무리해서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에 대한 개념이 취약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협력이 불가능하고, 바람직한 사회 공동 목표를 효율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자본 마련이 어렵다.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소양이 부족한 상태에서 신념만을 앞세우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유공간과 사회공헌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선구자 역할을 수행하고 싶었다.
 
넉넉하고 따뜻한 공간의 필요성은 나날이 커져간다. 하지만 당장 벌어먹고 살기에 급급하다 보니 다들 도토리 키 재기 식의 경쟁만을 고집한다. 일종의 레드오션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 사회 친화적 부분을 고려한 수익 창출을 고려했다. 단순히 서점을 운영해 돈을 벌기보다,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서점들의 저변이 확대되길 희망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공헌이자 공유공간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할 것이란 확신이 있다.
 
- 공유공간 필요성에 대한 가치관이 있다면.
 
▲어느새 부터 카페는 공부하는 장소가 됐다. 여유롭게 따뜻한 차를 한잔 즐기며 아늑하게 휴식을 취하는 모습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술집, 식당 역시 마찬가지다. 돈벌이에 급급해 공간을 단순 수익창출의 목적으로만 집중 운영하는 곳들이 태반이다. 공간을 소유한 이가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공간을 개방하는 순간 우리 사회는 더 따듯해진다.
 
카페는 가난한 사업가의 회의실이 될 수 있다. 식당은 독거노인들의 도시락을 만들어 주는 사회단체의 주방이 될 수 있다. 술집 역시 영업시간이 아닌 오후 한나절 누군가에게 잠시 필요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결코 어려운 얘기가 아니다. 사회 책임의 가치를 인식하는 사업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조족지혈이라 한들,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듦에 있어 공유공간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더 숲의 회의실은 특별한 시간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갤러리 역시 무료 개방을 한다. 설립취지에 따라 경영에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내린 결정이다. 더 숲을 통해 공간 운동을 하고 싶다. 비슷한 가치를 표방하는 이들이 이에 동조하면 파급효과는 더 커질 것이다. 같은 철학을 가진 이가 있다면, 더 숲의 브랜드를 얼마든지 공유할 생각이 있다. 이런 공간들이 우리 사회에 점차 확산되길 희망한다.
 
문화 사업을 통한 지역사회 발전기여 및 환경 운동단체 후원
 
- 문화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무엇인가.
 
▲노원구는 낙후된 지역이다. 예컨대 경제적 자립도가 높은 다른 지역들과 비교 했을 때, 같은 종류로는 무엇 하나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를 찾기 힘들다. 물질적 측면에서 그들과 동등한 경쟁을 펼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문화는 다르다. 주관적 견해지만 더 숲은 그 어떤 지역에 위치한 문화공간들과 비교해 보아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훌륭한 문화 플랫폼이다. 비물질적 차원에서 문화는 얼마든지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분야다.
 
더불어 노원구는 학교가 많은 지역이다. 학생들로 하여금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마련 해주는 것 역시 문화가 지역사회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다. 다양한 전시작을 보고, 책을 읽으며 영화를 관람하는 사이 자연스레 사고의 폭은 넓어진다. 건전한 사고를 지닌 학생은 지속가능한 사회구현의 훌륭한 자원이 된다. 마치 나비효과와 같은 것이다. 사실 지역 주민들로부터 걱정 어린 말을 많이 듣는다. 운영을 걱정해주고, 유지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장사꾼이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확장했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 낙후된 공간에 이 같은 문화 공간을 마련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사회공헌이기 때문이다.
 
- 더 숲을 운영함과 동시에 환경 운동단체인 푸른 아시아를 후원 중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남을 도우며 살아가겠다는 것은 오래된 소신이다.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따뜻해질 수 있다면 기꺼이 힘을 실어주고 싶다. 푸른 아시아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 환경 운동단체 가운데, 푸른 아시아처럼 한 우물만 꾸준하고 진실 되게 고집하는 단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몽골에서의 사막화 방지 운동이라는 주제를 20년 넘게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드러내고 홍보하는 데 크게 주력하지 않는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정해진 길을 걸가는 모습에서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하여 후원을 결심했다.
 
6일이면, 더 숲에서 푸른 아시아 환경 사진전이 열린다. 내가 먼저 제안한 일이다. 이곳을 찾아주는 분들, 푸른 아시아를 응원하는 분들 모두에게 새로운 장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사진전과 동시에 푸른 아시아의 월중 행사인 카페콘서트가 더 숲에서 개최 될 것이며, 영화 역시 환경을 주제로 다룬 작품을 상영할 계획이다. 우리는 흥미로운 주제를 다룰 수 있어서 좋고, 푸른 아시아는 좋은 홍보의 계기를 마련했기에 그야말로 모두에게 득이 되는 일이다. 협력을 통한 상승효과가 발생하리라 믿는다.
 
적극적 참여를 통한 브랜드 가치 성장과 안정적 공간 공유 실현
 
- 더 숲의 향후 구체적인 운영 계획이 있다면.
 
▲경영학 관점에서 본다면, 단순히 책과 영화표만을 팔아서는 이 공간을 온전히 운영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더 숲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더욱 성장시켜야 한다. 영국의 경우 1879년에 개점한 블랙 웰서점이 대표적이다. 그 곳의 모든 상품은 할인가격에 팔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얼핏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고집스러운 이미지만이 지닐 수 있는 철학이 존재한다. 블랙 웰 서점에서 판매하는 에코백과 각종 상품은 자체에 찍힌 서점 로고만으로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 사람들은 그 곳에서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아닌, 서점의 철학과 고집을 제 값을 지불해 가며 산다고 느끼는 것이다.
 
더 숲이 성공해서 뿌리를 내리고,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면 우리만의 철학이 공유된 상품을 만들 계획이다. 그 정도 단계에 이른 시기라면, 이미 더 숲은 지속가능한 단계에 안착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 크기만큼의 판매매장이 추가로 필요하다. 그래야 안정적인 자립이 가능하다. 지금 형태로는 재정적 자립이 불투명하며, 서점이라 보기에도 모자란 부분이 있다.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할 계획도 있다. 이 역시 더 숲이 재정적 안정을 찾은 이후 도모할 일이다. 현재는 주어진 공간 내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재능 기부를 하는 식이지만, 이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들에게 굉장히 미안하며 고맙다. 이 밖에도 효과적인 보완제도를 찾기 위해 끊임없는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더 숲에서 통용될 수 있는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며, 문화 공간의 확산 차원에서 더 숲과 같은 공간을 1~2개 정도 더 운영할 계획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 더 숲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더 숲이 노원구의 문화 플랫폼으로 자리 매길 하길 바란다. 그렇기 위해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플랫폼은 일종의 마당이다. 이곳을 채워나가는 것은 참여하는 이들의 몫이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공유공간의 필요성과 가치에 대한 저변을 점차 넓혀나가길 바란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 숲 역시 열린 마음으로 언제나 시민들과 함께 하겠다.
 
인터뷰 이후 탁 대표는 애정 어린 손길로 곳곳을 설명했다. 모든 장소에는 오랜 세월 그가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분리된 듯 자연스레 이어진 각각의 공간을 가득 매운 이들은, 저마다의 휴식을 취하며 그의 철학을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공유공간의 사례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였다.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그의 가치관처럼, 보다 많은 이들의 손길이 모여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더욱 풍족한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더 숲’ : 서울시 노원구 노해로 480 조광빌딩 B1(02-951-0206)
 
김태경 KSRN기자
편집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회(www.ksrn.org)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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