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시작된 조류독감(AI)으로 3000만 마리가 넘는 가금류가 살처분 당했다. 비단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매년 AI가 문제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AI의 원인으로 공장식 밀집사육을 꼽고 있다. 닭 한 마리당 A4용지(0.06㎡)보다 작은 0.04㎡의 공간에서 사육되는 공장식 밀집사육에서는 면역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넓은 공간에서 동물이 습성대로 자랄 수 있는 동물복지 농장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동물복지란 동물의 사육부터 도축까지 과정에서 동물에게 발생되는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에서 축산분야의 동물복지는 낯선 개념이지만 이미 영국과 유럽연합(EU) 국가에서는 동물 복지 개념을 정책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식재료로 이용되는 고기에 동물복지 인증마크가 있는 경우 높은 신뢰도와 가격을 인정받는다.
동물복지는 동물도 생명이라는 당위성을 넘어 여러 측면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공장식 가축 농장에서 나오는 배설물은 거름으로 자체 재활용할 수준을 넘기 때문에 폐기해야 한다. 이 배설물은 도시 하수가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보다도 치명적이다. 또한 동물복지는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사람의 복지와도 연관된다. 밀집사육에 따른 전염병, 항생제 남용은 사람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내 동물복지 인증 확대
국내에서는 기업이나 지자체에 의해 동물복지 인증제가 먼저 시작되었다. 풀무원은 2007년 국내 최초로 동물복지제도를 도입하며 ‘올가동물복지인증’을 운영했다. 육류, 계란, 우유에 대하여 5대 자유 원칙에 따른 동물 복지 기준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자체 동물복지 기준을 충족한 농가와 동물복지 이행협약을 체결하고 해당 제품에 동물복지 인증마크를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안성시는 2008년 ‘안성맞춤형 동물복지 농장 인증 조례’를 만들었으며, 전라남도에서는 FTA에 대응하고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하여 “동물복지형 친환경녹색 축산 육성 조례”를 마련하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국제기준에 부합하고 국내현실을 고려한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 및 “동물복지 축산물 표시제”를 도입하여 2012년부터 운영 중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동물복지인증제’란 농장동물이 본래의 습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육환경을 제공하고 스트레스와 불필요한 고통을 최소화하는 등 농장동물의 복지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제도다. 동물복지는 영국 농장동물복지위원회가 규정한 ‘동물 복지 5대 자유원칙’ 즉 배고픔·불편함·질병·활동·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2005년부터 동물 운송, 도축 등에 관한 동물복지 기준을 정하여 운용하고 있다. 동물복지인증 마크는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심사를 통과한 농장에게만 부여되며,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농장은 국가의 지속적인 사후 관리를 받는다.
현재 우리나라는 2012년 산란계 농장을 시작으로 2013년 양돈 농장, 2014년 육계 농장, 2016년 한우, 육우, 젖소, 염소 농장으로 인증 대상 축종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현재 국내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농장은 산란계 87개, 양돈 12개, 육계 10개, 젖소 2개다. 2016년 3월 기준 산란계 71개, 양돈 6개, 육계 2개였던 것과 비교했을 때 작게나마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AI 발생 이후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달걀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 동물복지 산란계농장 인증기준(제4조)을 보면 동물복지 축산물은 급수, 온도, 조명 등의 세세한 관리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기존의 케이지 사육을 금지하며 바닥 면적 1㎡당 9마리 이하의 산란계 사육, 닭장 내 횃대 설치, 별도의 산란장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동물복지인증마크가 있는 축산물이라 해서 푸른 초원을 누비는 생활환경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산란계 농장을 예로 들면 A4 용지 면적의 좁은 케이지 사육장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사육장에 가두어 키우는 평사형 동물복지인증 농장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자유방목 동물복지 인증은 따로 받아야 하며 1마리당 1.1㎡이상의 방목장, 차양시설 및 환경 등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현재 국내 전체 동물복지 산란계 농장 87개 중 자유방목 동물복지인증 농장은 15개이다.
보편화한 국외 동물복지 인증제
선진국에서는 동물복지제도가 보편적이다. 유럽연합은 197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동물 보호·복지에 관련된 법안 및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2013년 돼지를 스톨(길이 2m·폭 60cm의 매우 좁은 돼지우리)에서 사육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동물복지 규칙을 정했다.
정부의 규제가 중심이 되는 EU에 비해 미국은 민간단체 및 소비자의 압력에 의해 업계가 자발적으로 동물복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맥도날드, 웬디스 등 대규모 패스트푸드점은 축산물에 대해 자체적인 동물복지 기준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충족한 축산물을 사용한다. 캘리포니아주, 플로리다주 등에서는 동물복지에 관한 주(州)입법을 확산하고 있다.
국외에서도 동물복지 인증제도가 있다.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란 동물복지 기준에 따라 사육한 농장에 대해 국가가 인증하는 제도다. 해당 축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구별이 가능하도록 하고, 생산자에게 경제적 인센티브를 부여하여 동물복지를 향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영국은 동물학대방지협회(RSPCA)에서 동물 복지 상태에 따라 인증하는 ‘프리덤 푸드(Freedom Food)’ 제도가 있다. ‘프리덤 푸드’는 1994년 제정되었고 식용 목적으로 사용되는 동물의 복지증진을 위하여 해당 로고를 포장지에 표시하는 제도다. 인증기준의 내용 등이 세계적인 동물복지 인증과 운영의 표본으로 활용될 정도로 높은 수준의 동물복지를 추구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방사형으로 사육된 닭과 달걀을 ‘Label rouge’라는 동물복지 축산물로 인증하고 있다. 덴마크는 각 축종별 동물 복지 기준을 준수한 생산자에게 동물복지 인증마크를 부여하고 있으며, 이들 이외에도 많은 단체에서 개별적 인증기준을 가지고 동물복지 인증마크를 부여한다. 이들은 국내 동물복지 인증이 기업, 정부에서 운영되는 것과 달리, 생산자단체 혹은 동물보호단체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설립, 운영되고 있다.
국가별 동물복지 기준 비교, 양돈농장 거세 금지 논의해야
국가별 동물복지 기준은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농장동물의 자유로운 행동표현이 가능하도록 사육면적을 확대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산란계의 경우 케이지 사육을 금지하고, 본능적인 행동표현이 가능하도록 횃대와 모래목욕 등을 할 수 있는 시설 제공을 요구하고 있다. 임신돈의 경우 기존의 스톨(금속틀) 사육을 금지하고 군사사육(사육공간이 개방되어 여러 마리를 사육할 수 있는 공간에서 키우는 것)을 하도록 하고 있으며, 분만틀의 사용을 금지하고 분만 후 5일 후부터는 모돈이 움직일 수 있는 시설에서 사육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국내 동물복지 양돈농장 인증기준안도 이를 따르고 있다. 동물복지 양돈농장은 스톨과 분만틀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다만 임신돈의 안정과 유산 방지를 위하여 교미 또는 인공수정 후부터 4주까지는 스톨에서 사육할 수 있도록 허용) 견치 절치(이빨 자르기), 단미(꼬리 자르기), 거세로 인한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
인증기준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거세 등 신체절단에 관련한 것으로 국가별 인증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거세의 경우 영국의 RSPCA에서는 원칙적으로 거세를 금지하고 있으나, 미국의 HFAC에서는 거세를 허용하며 생후 7일 이내에 거세를 실시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식문화에 따른 웅취(수퇘지가 성숙기에 도달했을 때까지 거세하지 않고 도축된 돼지고기 또는 돈육 제품을 조리하거나 먹는 동안에 흔히 나타나는 불쾌한 냄새 또는 맛) 제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거세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과 동물보호·복지의 차원에서 거세를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에 국내 인증기준에서는 비외과적 방법을 이용하여 웅취를 제거하거나 웅취가 나지 않는 품종을 이용하는 등 외과적 거세를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며, 수의사나 숙련된 자에 한하여 외과적 거세를 허용하고 있다. 식용 돈육으로 암퇘지를 선호하는 식문화 속에서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의 증가와 맞물려 거세에 대한 법적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속가능형 축산업을 위하여
동물복지 인증 농장의 확대로 토지 부족과 수질오염 등의 환경 문제가 해결되어 축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이 거론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에서는 “공장형 축산을 벗어나는 것이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온실가스를 줄이는 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AI 문제가 커지자 동물 복지 농장 확대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서울 YWCA에서 서울 지역 축산물 판매업소 관리 및 종사자 100명을 대상으로 향후 시장 전망과 시장 활성화 방안에 대해 조사한 것에 따르면, 향후 친환경 축산물 시장은 ‘지금보다 늘어날 것이다’라고 60명이 답했으며, 시장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사항으로 제도의 신뢰성 제고 및 관리노력(34명)과 가격 인하(20명)를 꼽았다. 동물복지 축산물을 선호하는 소비자층이 형성되어야 동물복지 축산 농장도 늘어날 수 있다. 값싼 먹거리를 제공하는 공장식 축산에 길들여져 있었던 소비자에게 값비싼 동물복지 축산물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 동물복지의 가치 홍보 및 신뢰성 제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해 12월 전북 김제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닭들에 대한 살처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구예원 KSRN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