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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포옹하는 사람, 포용하는 사회
입력 : 2017-05-08 오전 8:00:00
딸아이가 유치원 다닐 무렵부터 아빠와 뽀뽀를 거부했다. 엄마한테 쪼르르 달려가 안기면서 아빠에겐 메롱하기 일쑤였다. 처음엔 그 조차 귀엽고 예뻐 보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섭섭하고 묘한 배신감까지 들었다. 엄마만 좋다는 녀석을 자주 안아주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사춘기를 지날 무렵 꾀를 냈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야하는 고난의 중고생 시기, 아침에 “우리 딸,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안아 일으켰다. 처음엔 서로 어색했지만 나중에는 일찍 눈뜨고도 아빠가 안아 일으켜주기를 기다려주었다. 아주 짧은 그 시간에 부녀사이엔 모든 소통이 이루어진다.
 
아들은 그 반대였다. 쑥스러운 표정으로 전기면도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던 날 이후에도 한참을 더 잠자기 전 아빠와 입을 맞췄다. “잘 자, 우리 아들”하면 까칠한 수염 있는 입술을 쭉 내밀곤 했다. 매일 반복되는 행사다보니 갑자기 중단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고2까지 아들과 입맞춤할 수 있었다.
 
명절이나 생신 등 가족행사로 일 년에 몇 번 본가와 외가에 아이들을 데려간다. 아주 어려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무릎 위에서 재롱을 떨던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친구를 사귈 무렵 갑자기 ‘노인’이 싫다고 말했다.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냄새 나고, 잔소리 많고 등등의 이야기가 오가면서 정제되지 않은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주시는 용돈은 바로 엄마에게 맡길 만큼 순수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의 감정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호불호를 분명히 하는 아이가 당혹스러웠다. 조금 지나자 직접적인 표현은 사라졌으나 마치 의무방어전 하듯 꾸뻑 인사하고 돌아서는 아이 뒷모습은 보는 사람조차 섭섭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 번 꾀를 내어 아이들과 약속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만나면 말로만 하지 말고 포옹하며 인사해 보자고…. 영화처럼! 그렇게 시작된 우리 가족의 인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조카들도 같은 방식으로 인사한다. 포옹은 즐겁게 전염된다. 처음 손자손녀가 안기던 날, 그 순간의 환했던 부모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매번 그 표정은 반복된다. 이젠 50을 훌쩍 넘긴 나도 만날 때 헤어질 때 부모님 품에 안긴다. 여전히 따뜻하고 포근한데 많이 야위고 작아지셨다.
 
서툴게 자기주장을 하는 아이, 철들며 쑥스럽고 어색함에 감정표현을 자제하는 청년, 그리고 그대로 쭉 살아가는 어른·어르신…. 우리 가족 3대만이 아니라 대부분 그럴 것이다. 우리 사회는 30살까지의 청년, 60세까지의 중장년, 그리고 90세 전후까지의 어르신, 이렇게 3대 사이에는 국경보다 더한 세대 간 칸막이가 존재하지 않는가? 불과 한 세대 남짓한 시간 속에 서구 100년 이상의 역사적 경험을 농축하며, 세대 간의 이념적·경제적 갈등도 그 이상의 농도로 키워왔다.
 
촛불과 태극기의 부딪침. 청년실업과 노인빈곤의 이중주. 모두가 고령화·저성장·양극화 사회의 아픔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문제다.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사회경제 전 부문에서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족에서 시작하여 사회로 확산되는 세대 간 포옹과 정치·경제·문화·복지·교육을 아우르는 사회적 포용이 절실하다.
 
출발은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대한 어른들의 성찰이다. 지금의 사회경제적 위기는 과거의 방식으로 돌파할 수 없다. 화석에너지의 종말과 분산에너지로의 전환, 100살까지 사는 사람들과 줄어드는 일자리는 가까운 미래다. 준비하고 있는가? 지난 반세기 동안 기성세대의 세포 깊이 각인된 경쟁과 효율로는 미래를 열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는 경쟁과 배제에서 협력과 포용으로 나아가야 한다. 너무 거창하고, 너무 추상적이라고? 그럼 쉽게 가자. 내일 아침 아이들을 안아주자. 주말에는 카네이션 달아드리며 부모님을 안아드리자. 처음 만나는 이웃에게 먼저 말 걸자. ‘포옹하는 사람’들의, ‘포용하는 사회’로 가자.
 
박영범 지역농업네트워크협동조합 이사장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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