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양진영 기자] 경제금융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역대 정권에서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산업' 중심에 무게를 뒀다면 이제는 서민의 금융부담 완화와 혁신기업으로의 자금공급 등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내세운 '사람 중심 지속성장 경제'도 2018년부터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사람중심 경제' 구현을 뒷받침하기 위해 작년 '포용적 금융'과 '생산적 금융'이라는 두 바퀴의 틀을 잡았고, 올해엔 이를 구체화하고 실현하는 데 방점을 둘 계획이다. 금융권에서도 최고경영자(CEO)들이 앞으로 경영 화두로 '고객'과 '사람', '동반성장'을 내세우는가 하면 일자리 창출과 신성장 사업 지원에 적극 나서면서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에 화답하고 있다.
"'사람 중심 지속 성장 경제' 구현을 금융이 적극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한다."
문재인정부 금융정책의 핵심은 이 한 줄로 요약된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금융이 더욱 생산적인 영역에 자금을 공급하도록 유도하고 서민 부담 완화를 위해 금융 비용을 줄여주는 정책이다. 이를 각각 '생산적 금융'과 '포용적 금융'으로 정리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9월 취임 직후 금융정책 방향으로 ▲신뢰의 금융 ▲포용적 금융 ▲생산적 금융 3가지를 꼽았다. 정책은 금융시장의 과실을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 큰 틀이다. 여기에 금융회사의 영업관행에도 변화를 주고 신의성실 의무를 부여해 '금융소비자' 중심으로 시장을 전면 개혁하겠다는 것이 최 위원장의 구상이다.
이 가운데 신뢰의 금융과 포용적 금융에 공통분모는 '서민금융 지원'이다. 이는 그간 홀대 받아온 금융약자인 서민과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정책 발표로 이어졌다.
금융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제기 지원, 쉬운 대출 및 부당한 광고 권유로 서민들의 빚을 늘리는 대부업 제재, 청년·대학생 지원, 정책서민금융 재설계, 장기소액연체채권 정리, 카드수수료 및 고금리 부담 경감 대책 등이 추진됐다.
우대수수료율이 적용되는 카드 영세 가맹점 범위를 매출 2억원에서 3억원으로, 중소가맹점은 3억원에서 5억원으로 확대한 카드 수수료 인하 방침은 서민들의 금융부담 경감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연내 가맹점수수료를 추가로 낮추고 매출실적 없는 신규가맹점에 수수료를 돌려주는 환급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법정최고금리(27.9%)와 이자제한법상 최고이자(25%)도 오는 2월부터 24%로 내려간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 중 하나로, 문 대통령은 임기 안에 단계적으로 연 20%까지 이자를 낮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장기소액 연체자 지원 대책은 원금 1000만원 이하 금액을 10년 이상 연체하고 있는 채무자에 대해 소득 심사를 거쳐 빚을 탕감해주는 내용이다.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장기소액연체자 뿐만 아니라 대부업체나 추심업체 등 민간 금융회사들이 개별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장기 소액 연체 채권도 포함시켰다.
올해에도 금융당국의 대대적인 서민금융지원 체계 개편이 있을 예정이다. 금융위원회의 외부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서민금융지원 체계를 개편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채무재조정 역할을 하는 신용회복위원회의 기능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미소금융대출과 햇살론, 바꿔드림론 등 정책서민금융상품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내용이다.
하주식 금융위 서민금융과장은 "서민금융지원 체계 권고안은 금융위에서도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최종구 위원장이 밝힌대로 내년부터 정책 결정에 반영하겠다는 부분"이라며 "금리 상승기가 도래하는 내년부터 취약 차주에 대한 채무재조정 등 금융지원이 절실한 만큼 국민들의 삶에 실질적인 체감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생산적 금융'과 관련해서는 금융위가 지난달 국내 벤처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3년간 10조원 규모의 혁신모험펀드를 조성하는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중소기업들을 괴롭히던 연대보증제는 정책금융기관이 선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또한 국책은행들의 정책금융 기능이 창업 벤처, 신사업 육성 등 혁신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개편될 예정이다. 정부가 발표한 '2018년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산업은행·기업은행 등의 중소·중견 기업에 대한 정책 자금 공급을 244조1000억원으로 확대한다. 담보 위주의 대출 관행에서 벗어나 기술 금융을 확산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금융취약계층에 대한 정책금융지원 강화 방안과 최고금리 인하, 연체 채권 소각, 기술금융 확대 등은 사실 이전 정부에서도 추진했던 정책이긴 하다. 다만 정권 초반기에 정책의 무게 중심이 이 분야로 쏠릴 것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역대 정권에서는 과거 정부에서도 금융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서민금융 지원 정책을 펼치기는 했지만, 정권 후반기에야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지난 2007년 등장한 이명박정부에서는 정권 초기부터 '메가뱅크론'이 강력하게 제기된 바 있다. 메가뱅크론의 핵심은 은행의 대형화에 따른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세계 50위권의 은행을 출범시키면 국가 금융산업 이미지 제고 등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던 강만수 산업은행 회장의 취임 이후 사실상 정부의 추진의지가 강하게 피력됐던 메가뱅크론은 결국 금융당국과 산은의 엇박자 속에 여론의 후폭풍을 맞으면서 무산됐다.
이후에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기업인 출신답게 정권 초반에 의욕적으로 금융 경쟁력 활성화 정책을 이야기 했지만 관련 대책을 발표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며 실효를 거두진 못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하자 성장 동력으로 녹색 산업을 택하고 지원 수단으로 '녹색금융'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후 박근혜정부의 금융정책은 '창조금융'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창조경제'를 내조하라는 사명으로 창조금융이 키워드로 제시된 것이다. 하지만 정권 중반까지 곳곳에서 금융사고가 터지면서 새로운 설계도를 그리기는커녕 뒷수습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박근혜정부는 금융사고 사태 수습 후 기술력을 담보로 중소기업에 대출을 해주는 '기술금융'과 핀테크 활성화 등 창조금융에 시동을 걸었지만, 스타트업 기업이나 중소기업금융 생태계가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하다보니 이렇다 할 결실을 맺지 못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로 정부 주도로 무리하게 끌고 나가려다가 금융사고 발생과 여론의 역풍으로 좌초된 것이 한두번이 아니라는 점에서 금융정책 패러다임 전환은 필요한 상황"이라며 "문재인정부에서는 금융정책의 근본을 금융소비자와 금융서비스, 금융시장과의 관계에서 찾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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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용·양진영 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