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직장에 재직 중이시면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이나 건강보험 자격득실 확인서, 급여명세표 중에 편하신 것으로 주시면 됩니다.”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가 도입된 30일 오전 9시30분.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에서 입출금계좌 개설을 요청하자 들은 답변이다. 지난 2016년부터 대포통장 등 금융사기 피해 예방을 위해 입출금통장 개설절차가 강화됐기 때문에 통장 신규 목적에 맞게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상화폐 실명제 도입 첫날인 30일 서울 명동 신한은행 지점에서 가상통화 관련 안내를 배포하고 있다. 사진/백아란 기자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 도입 첫날 시장은 큰 혼란 없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 지나갔다.
다만 은행은 비교적 한산한 모습을 보인 가운데 거래소는 실명확인을 위한 수요가 증가하며 일부 서비스가 지연되는 등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30일 가상화폐 실명제 시스템을 개시한 신한·기업·농협은행의 영업점 분위기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초 약 300만명으로 추정되는 가상화폐 투자자가 일시에 몰리며 혼선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 것과 달리 대란은 일어나지 않은 셈이다. 이는 가상화폐 시세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기존 고객을 제외한 신규 투자 유입이 차단됨에 따라 무작정 계좌를 개설하기 보다 관망세를 이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업비트와 단독 계약을 맺은 기업은행의 경우 신규 계좌 개설 등 일반 업무를 위해 대기하는 고객은 2~3명에 불과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작년 말부터 실명제가 도입된다고 알려지면서 기존 투자고객은 미리 계좌를 개설하고 오늘은 인증 절차만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 규제가 강화되고 신규 투자자 유입이 제한됐기 때문에 창구 또한 평소와 비슷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이름을 밝히기 거부한 기업은행 창구 담당 계장 또한 “하루 10~15명 정도 입출금 계좌를 개설했다”며 “실명제를 도입한다는 얘기가 나올 때부터 꾸준히 계좌 개설이 이뤄졌다”고 귀띔했다.
신한은행 을지로 지점 역시 오전 11시 기준 대기 고객이 2명으로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신한은행은 영업점에 ‘가상통화 관련 대고객 안내문’을 배포하고 가상통화 관련 자금세탁 방지 가이드라인 주요 내용과 고객 유의 사항을 안내했다.
여기에는 고객 확인 강화를 위해 고객의 사무실 또는 영업점을 방문해 추가 정보를 요청할 수 있고 자금세탁 위험이 높을 경우 금융거래를 거절할 수 있음을 적시하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실명제가 도입됐다고 영업점 상황이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지만 자금세탁 방지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기 위해 유의사항을 안내하고 있다”며 “통장 신규의 경우, 정확한 수치를 집계하기 어렵지만 이날 오전까지 크게 늘어난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실명확인 절차. 사진/백아란기자
신규 투자 또한 은행과 거래소별로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이날부터 가상화폐를 거래하려면 실명확인이 필수지만, 시중은행에서는 ‘가상화폐 거래’ 목적의 계좌를 공식적으로 발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단 급여통장 등으로 발급하거나 출금액이 제한된 한도계좌를 발급하는 등 우회적인 방법으로 실명계좌를 받을 수 있다.
실제 기업은행에서도 증빙자료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하니, 한도계좌와 비대면계좌(IBK휙계좌개설 애플리케이션)를 안내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비대면 계좌의 경우 공인인증서를 통해 건강보험공단과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재직정보가 확인되면 금융거래 한도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어 요즘에는 영업점을 방문해 계좌를 개설하기보다 모바일 계좌를 더 많이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거래소와의 실명확인 절차 과정에서다.
약 5~6단계로 이뤄진 가상화폐 실명확인 절차는 제3자 동의를 하고 인증번호를 넣은 후 본인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번호를 등록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업비트의 경우 이용자 증가 등으로 서비스가 지연되며 약 50여분 만에야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 인증을 완료할 수 있었다. 실명인증 시 해당 고객의 기업은행 계좌로 발급된 인증번호 세자리와 1원을 확인 후 인증번호를 넣어야 하지만 입금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늦어진 탓이다.
실명확인 인증 서비스가 기존 가상계좌를 보유한 회원부터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신규 투자가 제한됨에 따라 혼선도 일었다.
신한은행과 거래 중인 코빗은 실명 인증과정에서 일부 고객의 신분증 인식이 안되는 등 에러가 발생했다.
농협, 신한은행과 계약을 맺은 빗썸의 경우 이날 오전 9시부터 농협은행 가상계좌 보유 고객을 대상으로 실명확인 입출금 번호를 재발급하고 있지만 휴대폰 번호로 된 평생계좌번호 보유 고객이나 농축협(지역농협)계좌의 이용은 불가능해 이에 대한 문의가 많았다.
빗썸 관계자는 “트래픽이 평소보다 더 많이 몰리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신한은행과 농협은행 계좌 둘 중 한 곳만 이용 가능해 여기에 대한 문의가 있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농협은행을 통한 실명확인 번호 발급은 가능하지만, 신한은행은 아직 발급되지 않고 있다”며 “한번 등록된 계좌는 변경이 불가능하므로 실명계좌 등록 시 유념해야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시장은 향후 재기될 신규 투자 여부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신규 자금 유입을 통해 거래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평가다. 현재 국내 가상화폐 코빗은 내달 6일 오후 12시부터 전체 고객을 대상으로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등록 서비스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에 신규 회원 또한 본인 명의의 신한은행 입출금 계좌만 있으면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 번호를 인증한후 실명확인을 등록할 수 있다.
다만 코빗과 거래계약을 맺은 신한은행 측은 “아직 가상화폐 신규 고객에 대한 실명 계좌 발급을 확정하지 않았다”며 “향후 추이를 보고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