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여성임원 있습니까. 있으면 손 한번 들어보세요.”
금융부 백아란 기자
지난해 10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나온 설훈 위원장의 질문이다. 당시 설 위원장은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 농업협동조합중앙회 등을 대상으로 한 국감에 참석해 여성 임원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다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근 금융권을 휩쓴 ‘성(性)차별 채용’ 문제를 보고 있으면 6개월 전 설 위원장이 던졌던 질문이 떠오른다. 금융권 여성 임원에게 견고하게 작용하고 있는 ‘유리 천장’이 신입행원 채용 과정에서부터 뿌리 깊게 박혀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앞서 KEB하나은행은 금융감독원 특별검사에서 남녀 합격자 비율을 미리 정하는 등 ‘차별 채용’을 실시한 사실이 적발됐다. 국민은행 또한 검찰 수사에서 남성 지원자의 서류 점수를 조작하는 등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 정황이 드러났다.
은행 내에서는 여직원의 경우 출산이나 육아 등으로 휴직을 하거나 퇴사를 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남성을 선호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경력 단절은 경영진의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용 첫 단추부터 여성 직원을 배제하고, 나아가 채용 점수까지 조작하는 현상이 바람직하다고 보기엔 어렵다. 더욱이 여성만이 육아 문제 등과 연관돼 있다고 보는 보수적인 문화는 오히려 인재 양성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여성 직원이 중요 보직에 배치되거나 임원 등으로 승진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작년 말 국민·신한·하나·농협·
우리은행(000030) 등 5대 시중은행의 임원은 6명에 불과하다. 전체 임원 130명 가운데 단 4%만이 여성인 셈이다. 특히 KEB하나은행이나 신한은행에서는 부행장급 여성임원이 전무한 상태다. 보험사와 카드사, 증권사 등 2금융권의 여성 임원 비율 또한 4.3%에 머물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작년 말 정기 인사를 단행하며, ‘50년 만에 여성 본부장 탄생’과 ‘여성 리더 육성 프로그램 신설’ 등을 자랑스럽게 내걸었다. 물론 고무적인 일이지만, 여성 임원의 발탁이 ‘특수한 케이스’로 분류돼 주목받는다는 점은 역설적이게도 유리천장이 아직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방증한다.
무조건 여성을 많이 뽑고, 여성 임원을 선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다만 공평한 기회는 부여돼야 한다. 이를 위해 성별이 아닌 능력에 따른 인사체계를 구축하고,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에 대한 징계와 제도를 재정비해 모든 임직원이 성장할 수 있는 사다리가 만들어야 한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