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정부가 은행권 근로시간 단축을 독려하고 나서면서 금융권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점심시간 보장’ 등이 현실화될지 주목된다.
은행권은 내년 하반기부터 52시간으로 단축된 법정 근로시간을 도입해야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조속한 시행을 주문함에 따라 연내 근로 시간 단축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금융노동조합 등을 중심으로 ‘점심시간 휴게 보장’과 ‘성차별 채용 금지’ 등도 요구되면서 금융권 전반의 채용과 근무요건 개선 작업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왼쪽부터) 성동화 부산은행 부행장, 백인균 산업은행 부행장, 박종복 SC제일은행장,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손태승 우리은행장, 김태영 은행연합회장,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위성호 신한은행장, 박진회 씨티은행장, 이대훈 농협은행장, 허인 국민은행장, 임상현 기업은행 전무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백아란 기자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19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시중 은행장들과 ‘노동시간 단축 관련 은행업종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간담회는 근로기준법 통과로 주당 법정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줄어드는 데 따른 준비와 일자리 창출 등을 독려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자리에는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김태영 전국은행연합회장을 비롯해 위성호 신한은행장, 허인 국민은행장, 손태승 우리은행장,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등 10개 은행의 은행장 및 부행장이 참석했다. 현재 은행권은 특례업종으로 분류돼 내년 7월1일부터 근무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조기 시행을 요구하는 모습이다.
김 장관은 이날 “내년 7월부터 은행 등에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적용되는 만큼, 조속히 노동시간 단축을 현장에 안착시켜 다른 업종에 모범사례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며 “노동시간 단축으로 더 많은 청년이 금융 분야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김용범 부위원장 또한 “근로 시간 단축을 통해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과 생산적 금융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선도적으로 앞당겨 시행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은행은 청년들이 많이 선호하는 직업인만큼, 일자리 창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금융위도 고용부의 근로시간 단축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이라고 답했다.
시중은행에서는 이미 전 은행 공통으로 일정 시간이 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종료되는 ‘PC오프(OFF)제도’와 ‘유연근무제’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주당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 국민, SC제일, 산업은행 등은 매주 ‘가정의 날’을 지정해 정시 퇴근을 유도하고 있으며, KEB하나은행에서는 근무시간 1시간 단축을 통한 ‘초등학교 입학자녀 돌봄 제도’ 등을 시행하고 있다. 아울러 기업은행과 하나금융 등에서 직장어린이집을 설립하는 등 중소기업과의 상생 협력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은행권 노동조합 등 일각에서는 실상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은 “기업대출과 펀드 전담 직원을 비롯해 본부나 IT 업무 등을 담당하는 은행원들의 실제 업무 강도는 생각보다 높다”며 “기존에 정해진 업무시간을 넘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꼬집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 또한 “홍보 등 대외업무를 하는 부서의 경우 주 52시간은 ‘그림에 떡’과 같다”며 “야근은 물론이거니와 일요일 근무도 당연히 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이와 함께 금융노조는 올해 산별중앙교섭에 ▲신규인력 채용확대 의무화(청년 의무고용) ▲근로시간 52시간 초과 금지와 휴게시간 보장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추가 채용 등을 요구한 상태다.
쟁점이 된 사안은 ‘점심 휴게시간 보장’이다.
은행원의 점심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1시간 휴점하자는 제안에 대해 불편함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 영업점의 경우 통상 오후 4시경 문을 닫기 때문에 업무를 보기가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허 위원장은 “고객들이 우려하는 부분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은행 노동자들은 영업시간 내내 업무를 하면서 휴게시간(점심시간) 1시간을 다 사용하지 못하고 김밥 등으로 대충 때우는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휴게 시간 보장은 근로기준법에도 원칙적으로 명시돼 있는 부분이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며 “다각도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박종복 SC제일은행장은 “고객 편의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면서도 “직원들의 고충을 무시할 수 없다”고 입장을 내놨다. 그는 “(일부 시간만 직원을 충원하는 등) 여러 가지 경우를 포함해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성동화 부산은행 부행장은 “고객 불편과 정부의 방침 모두 검토해야 한다”며 “은행뿐만 아니라 연합회 차원에서도 논의하고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성(性)차별 채용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KEB하나은행과 국민은행 등 일부 은행에서 남녀 합격자 비율을 미리 정하거나 남성 지원자의 서류 점수를 조작하는 등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노조는 노동청에 윤종규 KB금융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등을 고발하고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한 상태다.
정부에서도 성차별 채용과 여성임원의 ‘유리천장’ 폐지 등을 주문하고 있다.
김 장관은 “은행의 여성노동자 비율은 40%에 달함에도 관리직 여성 비율이 13%에 불과하다”며 “승진은 물론, 채용과정에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강조했다.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은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고 워라밸을 시행하는 것은 시대적 과제가 됐다”며 “노조와의 상생을 통해 업무 유연성을 높이고, (근로시간 단축 조기 시행 등) 타 업권을 선도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