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진성 기자] '고용 없는 성장'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노동유연성을 확대하고 다양한 근로형태와 지원 대책을 발굴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적어도 노동분야에 있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농업과 제조업 등 1~2차 산업 비중이 매우 높은 국내 환경 요인도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노동유연성 악화를 가장 많이 거론한다. 노동 시장이 근무 환경부터 직종까지 빠르게 변화하는 추세임에도 정부가 여전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만 갇혀 있다는 설명이다.
9일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32%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가 공공기관부터 공기업, 민간기업까지 정규직으로 채용을 독려해왔음에도 비중이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필요에 따라 단기 계약을 통해 일을 맡기는 고용 형태가 늘고 있다고 설명한다. 주변에서 흔히 두 가지 직종에서 근무하는 일명 '투잡'을 가진 직장인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정규직은 더 이상 질 좋은 일자리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옥스포드대학의 '고용의 미래' 연구 보고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 7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00만개가 창출된다고 분석했다. 대부분은 특정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직종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 직장에서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정규직을 선호했지만, 융합을 추구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오히려 이들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4차 산업혁명을 예상케 하는 모습은 곳곳에서 목격된다. 일부 IT기업들에서는 오전 9시 회사로 출근해 오후 6시 퇴근하는 근무 시간 개념이 무너지고 있다. 특정 기술을 갖고 한 회사에 귀속되기보다는 여러 회사의 일을 맡아 하는 일부 프리랜서들의 경우 고소득을 올리면서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삶을 살고 있는 모습도 종종 목격된다. 이제 재택 근무라는 용어는 더이상 생소한 단어도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앞으로 바이오 제약, 가상·증강현실시스템(VR/AR), 스마트 금융시스템(핀테크), 스마트 자동차 등 새로운 먹거리가 자리를 잡게 되면, 이전 업종은 도태되거나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창의적인 업무 환경을 위해 지금의 근로시간 개념도 크게 변화할 것이란 게 관련 업계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변화하는 산업환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지나지체 경직된 노동시장 문제 때문이다. 최근 KDI는 'KDI정책포럼-비정규직 사용규제가 기업의 고용 결정에 미친 영향' 보고서를 통해 비정규직법은 기업의 고용규모를 감소시킨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정규직을 늘리기 위해 만든 비정규직법이 다른 역효과를 내는 셈이다. 박우람 KDI 연구위원은 "법적 규제만으로는 고용의 양과 질을 동시에 추구하기 어렵고 법의 보호를 받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간의 격차를 확대 시킬 수 있다"면서 "노동유연성의 개념을 확장해 근로자가 필요하는 고용안전성과 기업이 필요로 하는 노동유연성을 균형 있게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규직에 집중한 정부의 규제가 기업의 새로운 변화를 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정부가 하는 노동유연성 대책은 주52시간 근로제 본격 시행에 앞서 탄력근로제를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 추진하는 게 전부다. 다른 전문가들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기업이 신산업에 부합하는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민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4차산업혁명은 보이지 않는, 그래서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근무 환경과 산업의 변화 등이 예상되는데, 우리 기업들이 이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고 노동유연성을 확대해 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세종=이진성 기자 jinl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