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아경 기자] 국민연금의 '경영참여' 칼은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칼을 향했다. 한진그룹은 최악은 피했다는 분위기지만 한진칼의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오는 3월 열릴 한진칼의 주주총회 표대결이 조양호 회장 일가의 운명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1일 오전 2019년도 제2차 회의를 열고 한진칼에 적극적(경영참여) 주주권행사를 결정했다. 다만 기금위는 시장의 우려를 고려한 듯 주주권 행사는 '정관변경'에 한해 행사하기로 했다. 이사해임, 사외이사 선임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횡령, 배임으로 모회사나 자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는 경영진이 생기면 '자동 해임'으로 처리되게 정관변경을 요구할 계획이다. 이 경우 현재 횡령ㆍ배임 혐의로 기소된 조 회장이 재판 결과에 따라 형이 확정되면 한진칼 이사에서는 자동으로 해임된다.
수백억 원대 상속세 탈루 등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해 7월 영장이 기각된 후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은 제외하고 한진칼에게만 경영참여를 결정한 배경은 '10% 룰'이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지분 11.56%를 가지고 있어 기존 '단순투자' 목적을 '경영참여'로 바꾸면 10%룰에 걸려 6개월 안에 발생한 단기매매차익을 반납해야 한다. 한진칼에 대한 국민연금 지분은 7.34%로 10% 미만이기 때문에 투자목적을 바꿔도 매매차익은 토해내지 않아도 된다.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으로 KCGI의 목소리도 힘이 실릴 가능성이 커졌다. KCGI는 지난달 31일 한진칼에 △임기가 3월에 만료되는 석태수 대표이사(사내이사)의 연임 반대, △조재호 서울대 경영대 교수·김영민 변호사 2명의 사외이사 선임, △김칠규 회계사 감사 선임 등을 담은 주주 제안서를 보냈다.
한진그룹을 포함한 재계는 이번 국민연금 결정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진칼의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 결정이 선례로 작용해 경제계 전체로 확산되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며 "투자나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우려된다"고 논평을 냈다.
대한항공 노조 조합원이 1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19년도 제2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회의장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당장 한진그룹이 타격을 입을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국민연금이 제안한 '정관변경'은 주총 특별 결의사항인 만큼 주주 과반수가 출석한 가운데 출석 정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될 수 있다. 현재 한진칼의 지분 구도만 보면 조 회장 일가 지분이 28.93%로 국민연금과 KCGI 지분의 합(18.15%) 보다 10.78% 높다. 주총이 두달이 채 남지 않은 만큼 우호지분을 확보한다고 해도 표대결의 승자는 조 회장 측이 우세해 보인다. 올해 주총 이후 국민연금과 의견을 같이 하는 기관투자자들이 늘어날 경우 추후 표대결이 격화될 가능성은 남아있다.
한진그룹은 "이번 결정으로 인해 한진칼의 경영 활동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국민연금에서 정관변경을 요구해 올 경우 법 절차에 따라 이사회에서 논의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한편, 한진칼은 대한항공의 지주회사로, 자회사로 칼호텔네트워크, 정석기업, 제동레저 등을 두고 있다. 조 회장은 한진칼 대표이사이며, 아들인 조원태 사장과 한진칼 사내이사직을 맡고 있다. 임기는 2020년 3월까지다.
이아경 기자 akl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