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첨단 기술의 허브’ 샌프란시스코. 혁신기업의 산실이자 창업자들의 고향으로 전 지구적인 관심이 집중되는 곳이다. 애플, 페이스북, 구글 등 주요 IT 업체들이 샌프란시스코 인근 실리콘밸리에 터를 잡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 개의 스타트업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그 때문인지 로봇이 커피와 햄버거를 만들고 자율주행차가 거리를 누비는 모습이 결코 낯설지 않다.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한국인 창업가들은 이 곳을 ‘위기이자 기회의 땅’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스타트업과 경쟁을 해야 하지만 원천기술만 있다면 투자 또한 받을 기회가 많아서다. <뉴스토마토>가 최첨단 도시 샌프란시스코 도시 곳곳에 녹아있는 로봇과 인공지능(AI)을 만났다. 또 문화와 언어가 다른 이 도전의 땅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한국 기업가들에게 미국 진출의 비전을 들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첨단 도시답게 ‘사람이 없는’ 가게들이 곳곳에 있다. 주문 방법을 알려주는 전담 직원과 사람보다 높은 효율을 자랑하는 로봇이 위치한 가게들이다. 소비자들은 태블릿이나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과 결제를 하고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찾아 문을 나선다. 쇼핑 방식이 다소 삭막하다 싶기도 하지만 편리함과 효율성에 가게마다 찾는 이들로 북적거린다.
메트리온 쇼핑센터에 위치한 카페 엑스(CafeX) 내부에는 키오스크 4대와 중앙의 커다란 로봇 팔이 전부다. 키오스크 앞에서 망설이자 직원 한 명이 다가와서 커피를 주문하고 카드로 결제를 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뜨거운 음료만 13가지에 커피 종류도 4가지나 됐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후 4달러를 결제해 이름을 입력하자 로봇 옆 전광판에는 커피를 만드는 중이라는 알림이 떴다. 원형 부스 안에서는 로봇 팔이 빠르게 움직이며 에스프레소를 내리기 시작했다. 전광판에 있는 숫자코드를 입력하자 로봇 팔이 커피가 담긴 컵을 들어 화면 바로 앞의 선반에 올려놨다. 그 후에는 선반이 움직여 컵을 꺼낼 수 있는 공간까지 커피를 옮겼다. 커피를 집어 들자 로봇 팔은 손까지 흔들며 기자를 배웅했다.
카페X에서 바리스타 로봇이 커피를 만들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지난해 2월 샌프란시스코에 첫 지점이 생긴 후 1년 만에 3호점까지 개설됐다. 그만큼 현대인이 필요로 하는 편리함을 충분히 충족시키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바리스타 로봇은 한 시간에 커피 120잔을 만들 수 있다. 한 잔에 30초 꼴이다. 일반 카페에서 바리스타가 기본 3명 필요한 점을 감안하면 그 정도의 일을 혼자 해내는 셈이다.
폴섬스트리트에 있는 식당 크리에이터(Creator)에서는 로봇이 만든 햄버거를 맛볼 수 있었다. 지난해 6월 시범 운영을 끝내고 9월부터 정식 영업에 들어갔다. 영업시간은 수, 목, 금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단 2시간30분. 가게 안은 짧은 시간 안에 로봇 햄버거를 보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햄버거는 6달러, 감자튀김 3달러, 맥주 6달러, 음료는 3달러였다. 결제는 신용카드로만 가능했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보다는 로봇 근처에서 햄버거를 만드는 과정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로봇은 인간의 모습이기보다는 휴대폰 조립공정같은 형상이었다. 버거용 빵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구워졌고 종이에 담겨 컨베이어 벨트를 지나갔다. 벨트 위에 설치된 기다랗고 둥근 파이프 여러 개에서 토마토와 양파, 채소, 소스 등이 차례로 빵 위에 내려왔다. 마지막에는 왼쪽 오븐 속에서 구워지던 고기 패티가 올려졌다.
로봇 식당 크리에이터의 전경(위)과 햄버거 로봇. 사진/뉴스토마토
로봇이 만든 햄버거의 맛은 사람이 만든 햄버거의 맛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에서 햄버거가 7,8달러를 훌쩍 넘어가는 점을 감안하면 6달러에 그치는 햄버거는 훌륭하다 싶었다. 실제로 소비자 평가 사이트 옐프(Yelp)에 남겨진 리뷰는 칭찬이 자자하다. 6달러짜리 버거치고 매우 맛있으며 다시 먹고 싶다는 반응이었다.
크리에이터의 로봇은 요리 재료만 공급해주면 1시간에 100개의 버거를 만든다고 했다. 로봇을 개발한 회사는 가게와 같은 이름을 가진 크리에이터다. 식당을 열기에 앞서 구글 벤처스, 코슬라 벤처스 등 실리콘밸리 유명 벤처 투자사들로부터 1800만달러(200억원)를 투자받았다. 식당의 한 직원은 “아직은 정식 영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업시간이 짧지만 향후 시간을 늘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가게 안에는 또 다른 로봇이 가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로봇 버거 식당에서 머지않은 곳에서는 사람 없는 자동화 식당이 위치해있다. 샐러드 식당 잇사(Eatsa)다. 잇사는 주문부터 요리, 서빙까지 과정을 모두 자동화한 식당이다. 요리사도, 서빙하는 직원도 없다.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고 카드로 결제를 하고 기다리면 액정표시장치(LCD) 스크린에서는 음식 상태를 보여준다. 식당이 아니라 스크린이 모인 커다란 TV같은 모습이다. 2015년 8월 말 1호점을 열었고 지금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만 두 개 매장이 영업 중이다. 이틀 동안 2번 잇사를 방문했지만 마침 프로그램 업그레이드 중이었다. 자동화 식당의 단점이기도 했다.
100% 자동화 식당 잇사. 사진/뉴스토마토
포스트 스트리트에는 제품을 집어들고 그냥 나가면(Just Walk out)되는 아마존 고(Amazon Go)가 있다. 약 60㎡ 공간에 빼곡하게 식료품이 진열돼 있고 안내 직원은 2명 정도다. 아마존 고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자신의 신용카드를 등록해야 한다. 그 다음은 간단하다. 물건을 골라 문을 빠져나가면 된다. 수백 대의 카메라와 센서가 방문객의 모습을 인지한다. 가게를 빠져나오면 자동으로 물건의 값이 결제됐다는 안내문구가 떠오른다.
무인 식료품점을 표방하는 아마존 고. 사진/뉴스토마토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누비는 자율주행차 죽스. 사진/죽스 홈페이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스스로 운전하는 자율주행차도 만나볼 수 있다. 자율주행차 스타트업인 죽스(Zoox)는 지난해 12월 캘리포니아 정부로부터 자율주행차에 일반 승객들을 태울 수 있도록 허가받았다. 숙련된 운전자가 운전하기도 힘든 구불구불한 롬바드 스트리트가 주요 시험 주행지다. 죽스의 자율주행차는 장애물 감지 센서인 라이다를 달고 비탈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2년전엔 엔비디아가 자율주행차를 개발해 이곳을 지나갔다.
샌프란시스코=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