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해나 산업1부 기자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1985년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만든 회사 ‘애플’에서 쫓겨났다. 야심차게 세상에 내놨던 컴퓨터 매킨토시의 실패로 인해서다.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없고 메모리도 부족했던 매킨토시는 처음은 창대했으나 곧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자신이 영입한 최고경영자(CEO) 존 스컬리와 이사회는 잡스가 회사에 큰 손해를 입혔다고 판단,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훗날 사람들은 잡스의 뼈아픈 실패가 없었다면 ‘아이폰’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이야기 한다.
자신의 회사에서 쫓겨난 인물은 또 있다. 세계 최대 차량공유업체인 우버의 창업자 트래비스 칼라닉이다. 운전기사와의 말싸움, 한국 룸살롱 방문 논란, 우버 직원 수잔 파울러의 고백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구설수에 기업의 이미지와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이사회는 2017년 결국 그의 탈선에 제재를 가했다. 새로운 CEO를 맞이한 우버는 다시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독립적인 이사회 덕분이었다. 미국에는 우리나라의 사외이사 제도에 해당하는 독립이사제도가 있다. 이사회는 60% 이상이 기업과 무관한 외부인사로 이루어져 있고 다른 기업 CEO 출신도 많다. 애플은 이사회 구성원 7명 중 CEO 1명만이 사내이사다. 사외이사는 월트디즈니컴퍼니 CEO, 블랙록 공동 창업자, 보잉사 전 CFO 등 그 출신과 인종도 다양하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이 넘었는데 아직 이사회는 ‘거수기’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100대 상장사들의 이사회에 올라온 3178건의 안건 중 사외이사가 반대 의사를 표시한 안건은 5개에 불과했다(CEO스코어).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위원회는 오너일가나 오너일가의 지인이 포함된 경우를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때문에 횡령 및 배임으로 회사에 피해를 끼친 CEO나 오너를 제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최근 주주총회를 앞둔 기업들은 이사회 독립을 강화하는 방안을 앞 다투어 추진 중이다. LG전자는 오는 15일 열리는 주주총회와 이사회에서 조성진 부회장의 대표이사 및 이사회 의장 겸직을 해제하고 권영수 ㈜LG 부회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2016년에 사외이사도 이사회 의장에 선임될 수 있도록 했다. 또 지난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상훈 경영지원실장 사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도록 해 대표이사와 의장직을 처음으로 분리했다.
CEO와 이사회 의장만 분리했다고 해서 견제와 감시가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같은 기업들의 경영투명성 제고를 위한 노력들은 반갑다. 기업 이사회가 경영진을 감시·감독하고 주주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운영되는 방향으로 가기를 바란다. 회사는 한 명의 소유가 아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