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아경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취임 20년만에 대한항공 경영권을 내려 놓게 됐다. 주주들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로 대기업 총수가 경영권을 잃는 초유의 사례가 발생했다.
대한항공은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빌딩 5층 강당에서 제57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이 부결됐다고 밝혔다.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조 회장 연임을 찬성하는 비율은 64.1%, 반대가 35.9%였다. 약 2.5% 차이로 희비가 갈린 셈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26일 대한항공 주주총회 결과 대표이사 자리에서 내려오게 됐다. 사진/뉴시스
대한항공 이사회는 델타항공과의 조인트벤처(JV) 조기 정착,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총회의 성공적인 서울 개최 등을 위해 "항공 전문가인 조 회장의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경영권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
조 회장은 이에 따라 1999년 4월 아버지 고 정석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지 20년 만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조 회장의 대표이사 재선임은 주총 전부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조 회장이 현재 총 270억원대 규모의 횡령,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데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의 '물컵갑질' 등으로 총수일가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특히 전날 2대주주인 국민연금은 조 회장의 연임 반대를 결정하면서 소액주주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원회는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반대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해외 주요 기관투자자들과 국내외 의결권자문사들도 잇달아 조 회장 연임에 '반대'를 밝혔다. 미국 플로리다연금과 캐나다연금(CPPIB), 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BCI) 등은 의결권 사전 공시를 통해 조 회장의 연임을 반대했다. 특히 플로리다 연금은 "이사회가 독립적이지 않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국내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와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 좋은기업지배연구소 등도 조 회장 연임에는 '반대' 투표를 권고했으며,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도 소액주주를 대상으로 의결권 위임 운동을 벌이며 반대표를 행사했다. 이에 따라 외국인 주주와 소액주주 등도 조 회장에게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한항공 주식 지분은 조 회장과 한진칼 등 특수관계인이 33.35%를 보유하고 있고, 국민연금은 11.56%를 가지고 있다. 외국인 주주 지분률은 20.50%, 소액주주 등 기타 주주는 55.09% 등이다.
한편, 이날 주총에는 위임장 제출을 포함해 5789명, 총 7004만946주가 의결권을 행사했다. 의결권이 있는 주식 총수(9484만4611주)의 73.84%에 달해 특별결의 사항을 의결할 수 있는 수준을 만족했다.
이아경 기자 akl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