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고 이희호 여사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내이기 전 민주화투쟁의 동지로서 평생을 살았다. 김 전 대통령에게 있어 때로는 엄격한 비판자로, 때로는 조언자로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명언을 후세에 남겼다.
이 여사는 1971년 남편의 첫 대선 도전 당시 찬조연설에서 “만약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습니다”라고 소리쳤다.
이듬해에는 해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쿠데타 반대 투쟁을 하던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신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정부에서는 당신이 외국에서 성명 내는 것과 국제적 여론을 제일 두려워한다고 합니다”라고 썼다. 이 여사는 “특히 미워하는 대상이 당신이므로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고 주문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구속됐을 땐 길거리 투쟁에 나섰고, 외신을 통해 “우리의 남편들이 한 일은 양심적이고 애국적인 일이었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당당히 일하다가 고난을 받고 있는 우리의 남편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외쳤다. 김 전 대통령이 1977년 징역 5년이 확정돼 진주교도소로 갔을 땐 편지에 “하루를 살더라도 바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이겠습니까”라고 적었다.
또 김 전 대통령이 1980년 신군부가 조작한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을 당시 “당신의 생이 평탄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더욱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라고 편지를 보냈다.
그러던 이 여사는 2009년 8월 남편의 서거를 맞고 운구행렬 중 서울광장 단상에 올라 “제 남편은 일생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인권과 남북의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권력의 회유와 압력도 있었으나 한 번도 굴한 일이 없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남북화해의 길에도 앞장섰던 이 여사는 2015년 8월 방북 뒤 기자회견에서 “평양에서 애육원, 육아원을 방문하고 해맑은 어린이들의 손을 잡으면서 다음 세대에 분단의 아픔을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더욱 깊이 새기게 됐습니다”라고 밝혔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