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지하철, 버스를 탄 후 도보로 이동해야 하는 길. 꽤 걸어야 하지만 자동차는 진입할 수 없는 길. 좀 더 편하게 갈 수는 없을까?
최근 전기자전거, 전동킥보드처럼 자동차보다 몸집이 작아 골목길에서 제약 없이 달릴 수 있는 1인용 이동수단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최종 목적지까지 이용할 수 있어 라스트마일 모빌리티(Last Mile mobility)라고도 불리는 1인 이동수단을 개발하기 위해 최근에는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들도 뛰어들고 있다.
이 가운데 현대·기아자동차 로보틱스팀은 '차량과의 연결'에 초점을 맞춘 전동스쿠터를 개발했다. 2017년 선보였던 콘셉트 모델은 개발과 수정을 거쳐 최근 자동차 빌트인 타입(Vehicle-mounted)으로 탄생했다.
콘셉트 모델이었던 전동스쿠터를 눈앞에서 움직이도록 완성한 현대·기아차 로보틱스팀의 박준환 책임연구원은 8일 "전동스쿠터를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보다 차량과 연계할 때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우리 제품은 포화 상태인 1인 전동 이동수단 시장에서도 독창적인 콘셉트"라고 말한다.
박준환 현대·기아차 로보틱스팀 책임연구원. 사진/현대차그룹
자동차에서 충전하고·펼치고·달린다
"차 운행 중 발생하는 전기를 활용해 충전하고 '빌트인'으로 차량 내에 보관한다"
현대·기아차 로보틱스팀이 개발한 전동스쿠터는 이제까지 봐왔던 전동스쿠터와는 조금 다르다. 자동차 뒷좌석이나 트렁크에 싣는 것이 아니라 빌트인 가구처럼 자동차 내부에 전동스쿠터 자리가 따로 있다. 즉 자동차와 전동스쿠터가 한 세트인 셈이다.
충전 또한 차 운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아직 개발이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지난달 27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홍보 영상에서 전동스쿠터는 차량 측면 앞뒤 창문 사이에서 나오기도 하고 헤드라이트 옆에서 꺼낼 수도 있다.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8일 기준 약 30만 조회 수를 돌파하며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처럼 세계인의 이목을 끌고 있는 자동차 일체형 전동스쿠터 연구를 진행하게 된 이유에 박 책임연구원은 "교통수단을 선택할 때는 언제, 어디로, 몇 명이 이동할 것인지 등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이동상황에 따라서 버스가 편할 수도, 지하철이 편할 수도 있지만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도보 이동은 필수"라며 "라스트마일 모빌리티는 고객의 이동 전반을 책임지는 데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스쿠터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보다 차량과 연계되었을 때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라스트마일 모빌리티는 최종 목적지까지 이용할 수 있는 개인 이동수단으로 전기자전거, 전동킥보드와 같은 1인 모빌리티가 대표적이다.
현대·기아차는 이를 2021년 신차 선택사양으로 양산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와 한 몸이 된 스쿠터는 차량 내부에서 자동으로 충전할 수 있다. 박 연구원은 "차량의 배터리 또는 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기를 활용해 차량 내 충전기로 스쿠터를 자연스럽게 충전할 수 있는 원리"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 어떤 차종과 연계될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전기차부터 적용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연구원은 "전기차에만 한정해 생각할 필요는 없다"며 "220V 소켓과 약간의 공간만 있다면 어떤 차라도 탑재할 수 있다. 전동스쿠터의 크기가 매우 작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로보틱스팀이 개발한 전동스쿠터. 사진/현대차그룹 유튜브 캡처
'작고, 가볍게'…차 한 대에 여러 대 탑재도 고민
로보틱스팀이 개발한 전동스쿠터는 10.5Ah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충전으로 약 20㎞를 달릴 수 있다.
박 연구원은 "과거 여러 타사에서도 다양한 콘셉트의 전동 이동수단을 개발해왔다"며 "하지만 우리가 만든 전동스쿠터는 기존 콘셉트들보다 부피가 작고 무게가 가볍다. 이 때문에 차량의 수납공간에 쉽게 실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처럼 일체감이 뛰어난 제품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1회 충전에 20km에 그친 주행거리는 아쉽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시중에 나온 제품 중에는 40km인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에 박 연구원은 "우리가 개발 중인 전동스쿠터는 장거리용이 아닌 차에서 내린 후 목적지까지 짧은 거리를 이동하기 위한 용도"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초소형과 초경량이었기 때문에 무게와 크기를 희생하면서까지 큰 배터리를 끼우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향후 회생제동 시스템을 추가해 주행거리를 늘릴 계획은 있다. 박 연구원은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배터리를 더 탑재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며 "현재보다 7% 늘리는 것을 목표로 개발 중"이라고 전했다.
로보틱스팀은 전동스쿠터를 3단으로 접어 간편하게 휴대하고 보관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발판 한 번, 손잡이 또 한 번 총 3단으로 접히기 때문에 크기가 작아 성인이라면 한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다. 무게는 7.7kg인데 이는 현재까지 나온 전동스쿠터 중 가장 가벼운 수준이다.
박 연구원은 "작게 접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는데 수많은 모델을 만들어본 결과, 현재의 접는 방식이 부피를 가장 줄일 수 있는 방식이라고 결론 내렸다"며 "이 방식에 대해서는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납공간과 충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지만 여러 명이 차량에 탔을 때 각각 전동스쿠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여러 대 탑재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보틱스팀은 전동스쿠터와 스마트폰과의 연동을 개발 중이다. 사진/현대차그룹 유튜브 캡처
안전은 기본…"독창적이지 않다면 살아남을 수 없어"
이처럼 전동 모빌리티 시장이 커지면서 관련 제품들은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안전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속도를 높여 달리다가 사고가 나거나 전용 도로가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타다 행인과 부딪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지난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 전동킥보드 교통사고는 5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커지는 사고 위험에 최근 미국 LA에서는 전동스쿠터를 타고 인도에서 주행하다 적발 시 197달러(한화 약 23만5000원)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로보틱스팀도 전동스쿠터 개발 단계에서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지점을 검토했다. 일단 콘셉트 모델에서 전륜구동이었던 방식을 후륜으로 바꿨다. 무게중심을 뒤쪽으로 배치해 더 안전하고 조종하기도 쉬워졌다는 설명이다.
이는 바퀴가 노면을 잡는 정도를 말하는 접지력 향상에도 도움을 줬다. 박 연구원은 "모터의 토크는 충분한데 접지력이 부족해 앞바퀴가 헛도는 현상이 있었다"며 "운전자의 무게가 실리는 뒷바퀴에 모터를 달았더니 이러한 현상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량화를 위해 크기를 줄이다 보니 발판이 좁아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로보틱스팀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직접 테스트 주행 해본 결과, 발판이 좁아 느낀 불편함은 없었다면서도 "시중 스쿠터를 탈 때처럼 안전을 위한 기본적인 주의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발판이 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사용해본다면 큰 불편함은 없을 것. 오히려 차량 내에 수납이 용이한 점이 더 크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안전한 야간주행을 위해 LED 헤드라이트와 테일램프도 기본 사양으로 넣었다. 박 연구원은 "디스플레이가 눈에 잘 띌 수 있도록 공을 들였기 때문에 주행 중 계기판을 확인하느라 시간을 뺏기는 일이 적을 것"이라며 "스마트폰과의 연동도 고민하고 있어 안전 관련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자동차 빌트인 전동스쿠터는 아직 개발이 끝나지 않았다. 로보틱스팀은 적정한 가격에 양산하기 위해 설계를 개선하고 있다. 박 연구원은 "스마트폰앱을 통해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해 각 사용 환경에 맞게 차별화된 편의성과 즐거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전동형 개인 이동수단 산업이 성장하며 관련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라며 "남들과 다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로보틱스팀 전동스쿠터처럼 독창적인 제품은 계속 나오지 않을까?"라고 1인 모빌리티 시대의 미래를 그렸다.
'자동차 빌트인 전동스쿠터'를 개발한 현대차그룹 로보틱스팀. 사진/현대차그룹
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