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자율주행 개발 속도가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보다 2년 늦은 현대자동차그룹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통 큰 투자를 단행하면서 얼마나 빨리 정상 수준에 도달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세계 4위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보유한 미국 앱티브와의 합작법인 설립을 계기로 개발 속도에 상당히 속도를 낼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최근 2조4000억원을 투입해 자율주행 전문기업 앱티브와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2조4000억원은 현대차의 지난해 연 영업이익에 해당하는 규모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개발 속도가 선두 자리를 점한 다른 자동차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2년 정도 늦다고 보고 있다. 이 분야에서 리더 자리를 선점한 GM은 2016년 스타트업 크루즈 오토메이션을 인수하며 자율주행차 시대에 발 빠르게 대응했기 때문이다. 일본 토요타도 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해 지난해 10월 소프트뱅크와 합작회사 '모네 테크놀로지'를 설립했다.
폭스바겐과 포드는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아르고, BMW는 인텔의 자회사 모빌아이, 르노-닛산은 구글 자율주행차 사업부 웨이모와의 협력을 통해 기술 선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의선(왼쪽)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골드만삭스 본사에서 케빈 클락 앱티브 최고경영자와 합작법인 설립에 대한 본계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이 손을 잡은 앱티브는 미국 보스턴에 있는 자율주행 전문기업으로 2017년 12월 부품회사 델파이에서 분사한 법인이다. 분사 당시 앱티브는 1억~2억원에 달하는 자율주행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2025년까지 500만원 이하로 낮춰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사업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앱티브는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로보택시 시범 서비스를 선보이며 기술을 인정받았다. 센서를 통해 주로 차량 주변 상황을 살피는 자율주행차 특성상 비가 오는 날에는 정상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데 앱틱스는 비가 오는 날에도 서비스를 운영한 유일한 업체였다.
올해 미국 시장조사 전문기관 내비건트리서치가 발표한 자율주행 종합 기술 순위에서도 4위에 올랐다. 이 평가에서 앱티브는 기술력은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판매 능력이 다소 부족해 4위에 머물러야 했다.
반면 현대차그룹 같은 보고서에서 15위에 그쳤다. 이는 자동차 산업 후발주자인 중국의 IT기업 바이두에도 밀린 성적이다. 판매 능력 관련 점수는 전년보다 상승했지만 기술력 점수는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됐다.
2017년 CES에서 선보인 현대차 아이오닉 자율주행차. 사진/현대차그룹
이처럼 현대차그룹은 전세계 자동차 기업 중에서도 자율주행차 기술력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미국 오로라 등 관련 해외 기업들에 투자는 해왔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더 늦어지면 자율주행차 시장에서 완전히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항공 자율주행 시장의 경우 선두 자리에 있는 몇 개 기업이 과점하면서 신생업체 진입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차를 완성하는 것보다는 소프트웨어와 솔루션을 다른 곳보다 먼저 개발해 이를 다른 기업들에 판매하겠다는 전략이다. 모빌리티 시대가 도래하며 자동차를 제조하는 것보다는 관련 기술을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투자자 대상 합작법인 설명 자료에서도 앱티브와 자율주행 솔루션을 개발해 모빌리티서비스 사업자에게 이를 판매하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밝혔다.
김준성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은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자율주행 기술 개발과 적용을 앞당길 것"이라며 "매출과 이익 성과가 즉시 발현되지는 않겠지만 기술 선도를 위한 이상적인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