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2000년대 초중반 즈음, 친구들 사이에서 도토리(싸이월드 속 화폐단위)를 선물로 주고받고, 아바타(온라인에서 개인을 대신하는 캐릭터)를 꾸미는 것이 유행이었다. 의상이나 머리스타일, 소품 등을 통해 가상의 나를 만들었다. 아바타를 풍족하게 채우면 미니룸을 꾸몄다. 여름에는 바닷가로, 겨울에는 낙엽으로 분위기를 바꾸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트리도 사고, 선물 꾸러미도 사면서 신나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마치 내 방인 것처럼, 엄마가 짐덩어리라며 사주지 않았던 1인용 소파도 넣고, 스탠드도 장만했다. 기분에 따라 아바타와 미니룸을 바꿨다. 싸이월드를 보고 친구들의 감정선을 살피기도 했다. 인터넷 상 아바타는 또다른 나의 분신이자 소통 수단이었다.
지난 19일 SK텔레콤이 5G시대의 초실감 미디어 전략과 서비스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시공간을 초월한 글로벌 가상현실(VR) 세상을 만들겠다며 VR 콘텐츠인 버추얼 소셜 월드(Virtual Social World)를 론칭했다. 아바타를 꾸미고, 7개 테마의 가상공간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음성으로 대화를 하며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서비스다. 10여년전 친구들과 소통 수단이었던 싸이월드가 오버랩됐다.
지난 19일 오큘러스Go를 착용하고, 버추얼 소셜 월드를 체험해봤다. 사진/뉴스토마토
싸이월드와 차이점이 있다면, VR기기가 있어야 한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통해 싸이월드로 들어가 문자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2D 아바타를 사용했던 것과 달리 움직이는 3D 아바타와 음성으로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진일보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페이스북의 VR기기 오큘러스Go를 썼더니 눈앞에 커다란 방이 펼쳐졌다. 마이룸이다. 쇼파가 있고, 한쪽 벽면에는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니 거울이 있다. VR기기 리모컨으로 거울을 클릭해 아바타 꾸미기로 이동했다. 얼굴형부터, 체형, 머리모양, 눈, 코, 입등 이목구비까지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다. 의상도 일상복부터, 정장, 크리스마스 코스튬 등 다양하게 고를 수 있다. 요즘 유행한다는 단발머리에 크리스마스 코스튬을 입고 빨간 구두를 신었다. 평상시에 할 수는 없지만, 하고 싶었던 아바타를 만들었다.
버추얼 소셜 월드 클럽룸. 사진/뉴스토마토
거울 옆에 있는 문을 클릭하니 '문을 열어 소셜룸으로 이동해보세요'라는 메시지가 나온다. 클럽룸, 카페룸, 스포츠룸, 뮤직룸, 펍룸, 콘서트룸, 뮤직룸 등 7개의 소셜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이동할 수 있다. SK텔레콤이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는 클럽룸으로 이동했다. 친구가 만들어 놓은 클럽룸에 입장할 수 있고, 내가 만든 룸으로 친구를 부를 수도 있었다. 룸에 입장하는 화려한 불빛의 클럽이 나왔다. 누군가는 DJ가 돼 디제잉을 하고 있고, 신나게 춤을 추는 이도 있었다. 화려한 공간에 주눅이 들어 멈칫하고 있을 때 무대 한편에 대포 모양의 조각물이 눈에 들어왔다. 조각물을 클릭해보니 폭죽이 터졌다. 파티 타임이다.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어 스테이지에서 춤을 추고 있는 캐릭터에 다가갔다. "안녕" 인사를 하고, 바로 이동해 병음료를 집었다. 옆에 있던 아바타와 "치얼스(cheers)". 손으로 먹는 시늉을 하니 병음료가 기울어졌다. 입으로 음료수가 들어가는 건지, 옆으로 흐르는 건지 가상의 공간과 동작의 불일치가 있었지만 파티 분위기는 흠뻑 느낄 수 있었다. 진짜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즐길 수 있다면, 메시지나 음성통화 이상의 소통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싸이월드에서 일촌 메시지를 주고 받았던 것 이상의 소통을 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듯 싶다.
현재 소셜룸이 7개지만, 지속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카카오프렌즈와 연결되는 별도의 공간도 새롭게 마련될 예정이다. 우선 2개의 추가적인 소셜룸 준비를 마무리하는 단계다. 당장 버추얼 소셜 월드를 즐기기 위해서는 페이스북의 오큘러스나 삼성전자의 기어VR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서비스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지만, 기기는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셈이다. 서비스는 오큘러스 스토어 내 점프 VR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버추얼 소셜 월드를 즐길 수 있는 VR 기기 오큘러스Go. 사진/뉴스토마토
싸이월드는 인터넷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사용할 수 있었다. 강의가 빈 공강 시간에 비어있는 공용 컴퓨터를 찾아 일촌을 맺고, 메시지를 확인하고, 아바타로 기분 상태를 변경했다. 버추얼 소셜 월드는 VR 기기가 있어야 한다. 추후 모바일과 연동해 VR 기기 없이 쓸 수 있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하지만 기본 조건은 VR 기기가 보여주는 가상세계다. VR 기기가 주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내가 VR 기기가 있더라도 친구가 없다면 제한된 소통만 진행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공간을 초월한 감각은 소통의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다. 얼마나 소통의 감정선이 깊어질 수 있는지가 VR 서비스 성공의 관건으로 보인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