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인 24일 가수 구하라씨가 사망한 소식을 다루면서 워싱턴포스트지가 한 말입니다. 설리에 이어 구하라까지 최근 유명 연예인들이 잇달아 세상을 떠나면서 악성 댓글, 악플에 대한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오늘 뉴스분석에서는 취재기자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 보겠습니다. 중기/IT부 안창현 기자 나왔습니다.
[앵커]
설리에 이어 구하라까지 최근 유명 연예인들이 잇달아 세상을 떠나면서 악성 댓글, 악플에 대한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기자]
지난달 악플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진 설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데 이어 지난 주말인 24일 구하라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악플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그동안 포털 등의 사업자들이 자정 노력을 해왔지만 이제 법적, 제도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위헌 판정을 받고 폐기됐던 인터넷 실명제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앵커]
그동안 업계의 자정 노력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지난달 14일 설리의 사망 이후 포털사이트 다음을 운영하는 카카오는 댓글 폐지를 발표하기도 했는데요.
[기자]
악플의 폐해가 부각되면서 포털 사업자를 포함한 업계 자정 노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카카오는 지난달 기자간담회를 열고 연예 뉴스의 댓글 잠정 폐지를 비롯해 포털 뉴스와 검색 서비스 개편안을 발표했습니다.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는 댓글 폐지 배경에 대해서 “최근 안타까운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연예 뉴스 댓글에서 발생하는 인격 모독 수준이 공론장의 건강성을 해치는 데 이르렀다는 의견이 많다”며 “관련 검색어 또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검색 편의를 높인다는 애초 취지와 달리, 사생활 침해와 명예 훼손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카카오는 지난달부터 다음의 연예 뉴스 댓글을 폐지했고, 인물 관련 검색어도 올해 안에 제공하지 않을 방침입니다.
네이버는 댓글을 폐지하는 대신, 악성 댓글에 대한 필터링을 강화했습니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악플을 필터링하는 ‘클린봇’ 기술을 뉴스 서비스에 적용했는데, 지난 4월부터 웹툰과 쥬니버, 스포츠, 연예 등의 서비스에 순차적으로 적용됐다가 이제 전체 뉴스 서비스에도 도입한 것입니다. 클린봇은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자동으로 불쾌한 욕설이 포함된 댓글을 숨겨주는 기능을 합니다. 네이버는 악플을 상습적으로 다는 이용자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뉴스 댓글 정책과 기술을 계속 개선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앵커]
일각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인터넷 실명제’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도 인터넷 실명제 부활을 요구하는 청원들이 올라왔고요.
[기자]
악플 근절을 위해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인터넷 실명제를 재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실제 다수 여론조사에서도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찬성하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인터넷 실명제 부활과 그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입니다. 인터넷 실명제는 지난 2012년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폐기됐습니다. 당시 헌재는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 언론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인터넷 실명제 시행을 통해서 불법 게시물이 의미 있게 감소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헌재 위헌 판결의 주된 이유가 실명제 도입 이후에도 악플이 감소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실효성이 없는데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부작용도 커서 재도입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습니다. 또 이미 상당수의 사이트에서 실명인증을 진행하는 등 실명제에 준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고, 실명제 재도입이 이뤄진다 해도 이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되면 다시 위헌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것도 인터넷 실명제 도입에 부정적인 이유입니다.
[앵커]
정치권에서는 악플 방지를 위한, 이른바 ‘설리법’이 발의됐는데요.
[기자]
악성 댓글과 사이버폭력을 막기 위한 다양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이미 발의됐습니다. 자유한국당 박대출 의원은 지난달 25일 인터넷 준실명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댓글 아이디의 풀네임과 아이피(IP)를 공개해 이용자의 책임을 강조하고, 처벌을 강화해서 악플을 다는 부정행위를 막겠다는 취지의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바른미래당 박선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는 차별이나 혐오 댓글에 대해서 당사자가 아닌 누구라도 삭제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포털 등 플랫폼 사업자가 악플을 사전 인지해 삭제하는 등의 방안들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국회 소관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법안 심사조차 이뤄지지 못한 상태로 계류 중입니다.
[앵커]
현행 법 집행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관련해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고요.
[기자]
특히 악플에 대한 형사처벌이 보다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이 나옵니다. 일부 악플에 대해서는 정보통신망법에서 사이버 명예훼손죄가 적용돼 관련자가 강하게 처벌될 수 있지만, 대부분 형법상 모욕죄가 적용돼 집행유예나 가벼운 벌금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악플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또 현행법상 모욕죄의 경우 범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고소를 해야 하는데, 악플의 파급력 등을 고려하면 고소 기간이 지나치게 짧아서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인터넷 상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별도 법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악플에 대해 법적인 처벌 조항을 강화하는 논의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당사자가 고소를 취하하면 처벌이 이뤄질 수 없는 현실입니다. 실제 많은 악플 사건의 경우, 여러 가지 이유에서 고소가 취하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발언을 경찰이 인지하고 이를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보다 유효하다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입니다.
[앵커]
해외에서는 이런 악플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기자]
일본은 우리와 같이 뉴스 서비스가 야후재팬 등의 포털사이트를 통해서 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악성 댓글도 이미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바 있는데요. 일본의 경우는 지난 2002년부터 소위 서비스 제공자인 프로바이더 책임 제한법을 만들어 포털 사업자의 관리와 책임 의무를 강화해 왔습니다. 피해자의 요청을 받은 사업자는 악플을 삭제하고 피해자가 원하면 악플을 작성한 가해자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독일 등에서도 악플이나 혐오 발언 등에 대한 신고가 있는 지 24시간 내에 사업자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상당한 벌금을 부과하는 등 사업자 처벌과 책임을 강화하는 추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