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때 과잉대응으로 국민들의 원성을 샀는데 이번엔 다를까요.’, “늑장 대응으로 사람들 이 죽는 것보단 과잉 대응으로 비난받는 게 낫다고 생각 합니다.” 2011년 영화 컨테이젼(Contagion)에서 극 중 미국질병관리본부의 한 박사가 기자 질문에 답한 명대사다.
1960년 인구 폭발과 세계 기근, 1970년대 자원고갈, 1980년대 산성비, 2000년대 지구 온난화 등 비관적 담론에도 인류는 번영을 누려왔다. 공상과학소설에 등장할 법한 차가 날아다니고 해저도시를 꿈꿨던 2020년.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초석을 다지는 21세기에 슈퍼버그의 창궐은 우리 사회를 공포로 몰고 있다.
단순한 감염병이 아닌 강한 공격성과 진행 속도가 빠른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의 변종’이 인류의 생명뿐만 아니라 각 경제 영역에 충격파를 주고 있다.
코로나19 공포에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계 전반이 사실상 셧 다운 상태다. 백화점과 복지시설, 공연장, 박물관, 에너지기업 등이 문을 닫았고 인력 밀집 사업장들도 하나 둘 업무를 접고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사회적 감염 확대의 통로를 최대한 막아야한다는 공통적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지난해 12월 중국발 코로나19 확산은 한국경제 뿐만 아닌 어느덧 세계 경제의 위협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비상이 걸리면서 주요 20개국(G20)은 ‘세계 경제의 위험 감시 강화’라는 공조 시그널을 내포하고 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가장 긴박한 불확실성 요인으로 ‘코로나19 확산’을 강하게 지목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의 장기화가 세계 경제의 회복세를 저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한민국 거시경제를 진두지휘하는 경제수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적극적 재정운용과 세계 주요국 간의 통화 공조정책 등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경제지표가 심상치 않을 때마다 ‘경제는 심리’라는 넋두리도 이번 사태에 군불을 붙이기 힘든 분위기다. 하룻밤 사이 최대 규모인 500명이 넘는 확진자가 추가된 데다, 사실상 전 지역이 얼어붙고 있다.
‘지역경제가 살아야 국가경제에 활력이 생긴다’던 문통의 외침에도 이미 지역경제는 딜레마에 빠진 격이다. 지역별 경제 거점의 기반은커녕 슈퍼버그의 ‘심각’ 단계로 불안심리가 경제를 쥐고 흔드는 꼴이 됐다.
요즘 정부 안팎에서는 ‘마스크 부총리’로 불린다. 고가 마스크로 국민적 공분이 일면서 뒤늦게 마스크 심리 잡기의 퍼포먼스만 부리고 있는 부총리를 향해 빗댄 말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모도 버리고 저울의 눈금을 속이는 ‘장사치들’ 앞에 그럴싸한 마스크 정책을 내놓은들, ‘사재기 오한’을 떨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불가항력인 코로나19 사태는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로 인해 녹록치 않은 경제사정도 추후 만회할 수 있는 정책능력을 보이면 된다.
하지만 마스크 값 하나 못 잡는 정부의 무능이 한국경제의 슈퍼버그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규하 정책부 팀장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