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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선

사명감 저하·비현실적 처우…법관들, 너도나도 '퇴직 러시'

고법판사만 15명 사의…4일 인사 '퇴직 규모' 주목

2022-02-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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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새 정부가 탄생하는 2022년 올해에도 법관들의 '퇴직 러시'가 이어질 전망이다. 이전부터 제기돼 온 예전같지 않은 예우 문제에 더해 사명감 상실과 경제적 문제 등 법관들의 퇴직 사유도 다양해지고 있다.
 
3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부장판사급인 고등법원 판사만 20명이 넘는 인원이 올해 법복을 벗는다. 또 여러 지방법원 부장판사와 평판사들도 퇴직 의사를 밝히고 있어 오는 4일 단행될 법관 인사에서는 더 많은 퇴직자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에는 상반기에만 80명이 넘는 법관들이 법원을 떠났다.
 
"자긍심 잃고 떠난 법관들 꽤 있어"
 
법관들의 이전 퇴직사유는 지방 발령에 따른 자녀 교육이나 전세자금 마련 문제 등 현실적인 사안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명감 상실'이라는 이유가 더해졌다. 최근 몇년 새 심화된 판결에 대한 여론의 공격 때문이다. 특히 올해에는 대선을 앞두고 판결에 여론의 공격이 도를 넘어섰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수도권의 A 부장판사는 “사직을 하는 데 여러 복합적 요인들이 있는데 (여론 등에 휘말리면서) 법관으로서 자긍심을 잃고 떠난 분들이 꽤 있다”고 귀띔했다. 서울중앙지법의 B부장판사는 "예전에 비해 현재는 진영논리에 매몰된 무조건적 비판만이 횡행하는 것 같다"면서 "법관의 생명과 양심은 재판상 독립을 전제로 하지만 법관 역시 사람인지라 무조건적인 비판, 비난을 위한 비판에 무제한적으로 노출돼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마음고생 하는 것을 보면 법관으로서의 소명에 회의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2009년 법관 임용식에서 신임 법관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퇴직 이유 1위'는 보수 등 처우 문제
 
퇴직을 고민하는 법관들, 특히 40~50대 법관들이 현실적으로 가장 많이 고민하는 문제는 역시 보수 등 처우 문제다. 현재의 법관 봉급체계에서 가족을 부양하는 법관들로서는 10년 근무 후 재임용 심사를 통과한 뒤 명예퇴직금을 받고 로펌으로 옮겨가는 타이밍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법관들의 명예퇴직금은 정년을 모두 마치고 나갈 때 받는 퇴직금 보다 더 많다. 판사는 한번 임용되면 정년 63세까지 연속 근무하는 검사와 달리 헌법 제105조에 따라 10년마다(대법원장·대법관 임기는 6년) 재임용 신청을 해야 한다.
 
지난해 2월부터는 고법 부장판사에게 제공되던 관용차량이 폐지됐다. 검찰에선 고법 부장판사와 비슷한 예우를 받는 검사장급에 관용차량을 제공하지 않는 대신 명예퇴직수당을 준다. 이에 법원행정처도 올해부터 16호봉(약 27년 이상 재직) 이상의 법관에게도 명예퇴직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그간 명예퇴직 수당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던 고법 부장판사들도 명예퇴직 시 수당을 받게 됐다.
 
'법관 및 법원공무원 명예퇴직수당 등 지급 규칙' 3조는 법관(고법 부장판사급 이상 법관 및 16호봉 이상 법관 제외) 정년 퇴직일 전 10년의 임기만료일이 먼저 도래하는 경우 임기만료일을 정년퇴직일로 본다. 정년의 잔여기간은 최대 7년까지만 인정하며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판사에게만 명예퇴직 수당을 지급한다.
 
명예퇴직금 더 많아…법관 퇴직 부채질
 
하지만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도 퇴임을 조금 늦추는 방안일 뿐, 결국 고법 부장판사들의 입지를 좁히고 16~17호봉 직전 또는 경력 30년 즈음 고참 부장판사들 조기퇴직을 사실상 종용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관들 사이에서는 정년을 채우지 않고 일찍 법복을 벗을수록 돈을 더 많이 주는 명예퇴직금 제도 보다는 재직 기간이 높은 법관에 대한 수당을 신설하는 등 다른 방안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명예퇴직제도가 아닌 법관 보수체계를 전반적으로 손질하는 등 경험치가 높은 판사들을 붙잡을 실질적 당근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20년 경력의 판사 봉급은 대형로펌 신입변호사와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로펌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대형로펌의 신입 변호사들의 연봉은 세전 1억4000만원~1억60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경력 15년 이상의 부장판사급 변호사가 대형로펌에서 받는 연봉 수준은 이를 훨씬 웃돈다.
 
법원장이나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도 실력 있는 법관들의 퇴직사유로 오랫동안 거론되고 있다. 특히 고법 부장판사의 경우 사실심의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에 '법관의 꽃'으로도 불리우던 자리다. 그러나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는 이른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제왕적 대법원장' 논란이 절정에 달하면서 '법관 줄세우기' 문제가 표면화 돼 2020년 정기인사부터 폐지됐다.  
 
김명수 대법원장 "'좋은 재판' 기반 굳건"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를 폐지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우리는 그동안 국민을 위한 '좋은 재판' 실현이라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쉼 없이 정진해 왔다"면서 "그 결과 '좋은 재판'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확대하고 이를 더 굳건하게 만들 수 있었다"고 자평했지만 법관들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수도권 법원에서 근무하는 D 부장판사는 “예전처럼 고법 부장판사나 법원장을 목표로 하는 판사들이 지금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오히려 지방에 있을 때 지역 제한(전관 개업지 제한) 등을 고려해 서초동에 개업하거나 로펌으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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