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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현

htengilsh@etomato.com

전진만 염두에 두려합니다
극우의 언론 공격과 하인리히의 법칙

2025-01-2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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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극우 성향의 아스팔트 보수가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법을 습격한 때에 언론사들도 공격당했습니다. 폭행을 당하고 카메라와 메모리 카드를 뺏기는 일도 있었습니다.
 
1월초부터 대통령 관저가 있는 한남동과 윤석열씨가 수감된 서울구치소 앞, 구속영장이 나온 서울서부지법을 내내 가본 입장에서 '하인리히의 법칙'이 떠오릅니다. 1번의 큰 사고가 있으려면, 29번의 경미한 사고와 300번의 징후가 있다는 겁니다.
 
19일의 언론 공격은 1번의 큰 사고에 해당할 겁니다. 어디까지가 경미한 사고, 어디까지가 징후인지는 따져볼 일이지만, 현장에서 제가 봐왔던 아스팔트 보수가 언론인을 대하는 태도는 경미한 사고와 징후쯤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1월 초쯤까지만 해도 한남동 집회 참가자들은 "JTBC는 간첩이다", "언론은 죽었다" 처럼 적대적으로 말하고 집회 무대 위에서 그런 메시지를 내는 정도였습니다.
 
<뉴스토마토> 소속이라는 점을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쩌면 반사적으로 피했고, 어떤 사람은 멘트 주면서도 "좌파잖아"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말로만 적대감을 드러내던 1월초의 그 상황도, 작년 11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위증교사 무죄 때보다는 좀 더 험악해진 분위기였습니다. 당시 '명태균 게이트' 정국이 한창이었는데도 서초동 극우 집회 참가자들은 <뉴스토마토>를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13일 새벽에는 당시 한남동 아스팔트 보수 집회 장소 중 본류격인 도이치모터스 전시장 앞에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밑에 있는 집회 참가자들을 육교 위에서 카메라로 찍고 있던 YTN 카메라맨을 집회 참가자들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군복을 입은 노인(해병대 출신이었던 거 같기도 합니다)이 이런 분위기에 가세하자 카메라맨은 철수해 육교를 내려갔습니다.
 
14일에는 <뉴스토마토> 취재진이 새벽에 집회 장소 중 하나인 한남초등학교 앞에서 노숙하고 있는 아스팔트 보수들을 촬영하려고 하자, 한 참가자가 경광봉을 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는 "누구냐, 가까이 접근하지 말라, 촬영하지 말라, 나가라"고 외쳤습니다. "카메라를 내놓고 사진을 삭제하라"고 윽박지르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은 근처에 배치된 경찰관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서야 충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날 오전에는 도이치모터스 전시장 앞 집회장에 들어간 사복경찰을 아스팔트 보수들이 MBN으로 착각해 고성을 지르고 내쫓는 일이 있었습니다.
 
윤씨 체포 당일인 15일에는 더 험악해졌습니다. 한남초 남쪽으로 370m쯤 떨어진 육교 위에서 MBC가 집회 현장을 찍고 있었습니다. 역시 아스팔트 보수가 옆에서 취재방해를 해 MBC는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 때 한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극우 중 한 사람이 셀카봉에 휴대폰을 끼고 최소 수십m를 계속 쫓아가면서 화를 냈다는 점입니다.
 
체포 이튿날인 16일 이후부터는 서울구치소 앞에서 일종의 고지전이 벌어졌습니다. 아스팔트 보수들은 경찰이 취재진 구역에 울타리를 쳐놓은 곳 앞에 오거나, 취재진이 그 구역을 벗어나서 리포팅을 하려고 하면 방해를 했습니다.
 
방해 유형은 가지가지였습니다. 연합뉴스TV가 리포팅으로 "내란 우두머리 혐의"라고 운을 띄우자 한 할머니가 옆에서 "내란 우두머리 아니에요"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전후로도 이런저런 구호를 외치고 음악을 틀며 방해 중이었습니다.
 
KBS가 리포팅을 하기 위해 대기하자, 좀 떨어져서 "취재하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차츰 모여들다가 급기야 한 사람이 다가가서 기자와 접촉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당일인 19일 오후에는 MBC가 카메라로 군중을 찍자 몇 명이 나가서 태극기 등으로 카메라 렌즈 앞을 성조기 태극기, 패널 등으로 막아서며 촬영을 방해했습니다. 서울구치소 앞에서는 취재진과 멀리 떨어져 소리를 지르는 복수의 사람들, 직접 다가가서 방해하는 단수나 소수의 사람들 이런 구성이었는데 이번에는 몇 명이었습니다. 구속영장이 발부되니 더 거칠어졌다는 인상이었습니다.
 
19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아스팔트 보수들이 언론사의 촬영을 방해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그러고 보니 윤씨의 구속영장심사 출석 날이었던 18일 오후에 가본 서부지법에서는 언론에 대한 공격을 겪지 못했습니다. 18일 오후에 서부지법 부지로 가서 구속영장심사 끝나고 윤씨가 호송차량 타고 구치소로 출발할 때까지 있었는데 말입니다. 법원을 둘러싼 극우 군중의 아우성들, 또렷하게 들리는 집회 무대 마이크 소리에서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게 폭풍 전야인가 싶습니다.
 
'하인리히의 법칙'의 요점은 300번의 징후와 29번의 경미한 사고를 지나치지 말고 그것들부터 나오지 않게 막아야 한다는 겁니다. 아스팔트 보수 중에서 자신이 1번의 큰 사고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정신승리'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29번의 경미한 사고와 300번의 징후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정말로 정신승리일 뿐입니다.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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