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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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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의 서러움

2025-01-3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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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MBC 사옥 모습. (사진=송정은 기자)
 
[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MBC에서 근무했던 기상캐스터 고 오요안나씨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했다는 유서가 유가족의 제보로 밝혀지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프리랜서 형태로 고용된 오 씨가 같은 기상캐스터들로부터 부당한 지시와 따돌림 등을 당했다는 내용인데요. 오 씨와 함께 근무했던 이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마녀사냥'도 펼쳐지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 퍼지는 모양새입니다. 
 
오 씨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그 누군가를 탓하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 또한 방송국에서 계약직, 혹은 프리랜서라는 고용 형태로 오랜 시간을 일하면서 겪었던 부당함과 고통을 상기해보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인지 고민하기 위해 과거를 잠시 꺼내보려고 합니다. 
 
만 5년 동안 한 지상파 방송국에서 1년 단위 계약직(흔히 무기계약직으로 표현했는데, 회당 출연료를 받는 프리랜서가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아나운서로 일했습니다. 4명이서 오전, 오후 방송 시간대에 따라 교대로 근무하는 형태였죠. 다행스럽게도 직장 내 괴롭힘이나 따돌림이 있던 장소는 아니었습니다. 데스크 임원들을 제외하면 함께 근무하는 아나운서뿐 아니라 편집, 송출 직군 모두 같은 처지였기에 고충을 나누는 좋은 동료로 지냈죠. 
 
좋은 동료들을 만난 건 복이었지만, 저를 대하는 회사의 태도는 가끔씩 실망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매월 출연료가 지급되는 통장에 찍히는 금액은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하기에 턱없이 모자른 금액이었고, 이에 각종 행사MC와 강연, 인터넷 플랫폼 방송들로 모자란 수입을 대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방송 스케줄에 지장만 없다면 직군 관련 일을 능력껏 찾아서 할 수 있다는게 프리랜서의 유일한 장점이 아니었을까요.
 
그럼에도 가끔 회사 관계자들은 "네가 아무리 프리랜서라고 해도 밖에서는 OOO 아나운서다. 행실 똑바로 하고 다녀라"라는 말로 활동을 제한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거의 매일 뉴스를 진행하면서 이른바 '현타'가 오는 시간도 많았습니다. 특히나 비정규직, 계약직들의 부당한 대우를 보도하는 뉴스 원고를 읽을 때는 내 처지와 비교하며 한없이 초라해지는 경우도 많았죠.
 
어떤 이는 "누가 프리랜서로 일하라고 협박이라도 했냐. 억울하면 정규직으로 합격하지 그랬냐"라고 거칠게 몰아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치열한 방송업계에서 정규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일하는 이들은 정말 극소수에 불과했죠. 꿈을 좇아 여기까지 왔는데 들어갈 수 있는 문이 계약직과 프리랜서밖에 없다면 거기서 물러날 이는 아마 많지 않을 겁니다. 
 
아나운서 커리어를 마무리하던 순간이 생각납니다. 물론 커리어 막판 적지 않은 실수를 저지른 스스로의 탓이 크다고 여기지만, 그래도 5년을 일한 직장에서 퇴직금 한푼 받지 못하고 방송국 문을 나서던 날은 지금도 잊기 힘들 정도입니다. '계약직의 서러움'이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였죠. 그렇게 소모되고 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몇달 동안 상처를 치유하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치열한 경쟁,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만 하는 세계에 발 딛은 이상 감수해야할 페널티라고도 누군가는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단정짓기에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꿈은 결코 작지 않고, 열정은 생각보다 큽니다. 
 
오 씨외에도 방송국 내 수많은 계약직, 프리랜서 직원들이 사고로 혹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사랑하는 이들과 안타까운 이별을 하는 상황을 몇 번 지켜봤습니다. 지금이라도 이들의 안정적인 고용형태 전환 방법이 어떤 것이 있을 지 고민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방송국 놈들이 더해"라는 사람들의 비아냥은 결코 멈추지 않을테니깐요.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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