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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잘 보겠습니다.
(벼랑끝 소공인)시간이 멈춰버린 '패션의 메카'

(르포)②-1. 창신동 의류봉제공장 밀집지역

2013-06-04 15:29

조회수 : 9,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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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보라·이준영 기자] 수많은 주택가 사이사이에서 스팀이 뿜어져나온다.
 
'목욕탕이 이리 많은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때쯤 창문 사이사이 하얀 형광등 아래에서 분주히 오가는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스팀이 나오는 곳은 어김없이 옷을 만드는 공장. 종로구 창신1,2,3동 일대는 일년 중 대부분의 시간, 동대문의 하늘로 스팀공기를 뿜어내고 있다.
 
동대문역사문화역운동장역1번 출구로 나와 첫번째 골목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2000년대 서울 도심의 한켠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허름한 골목이 나온다. 시간이 멈춘 듯하다. 골목 사이사이로 자그마한 가내수공업 형태의 3000여개 공장들이 밀집해있다. 재단부터 미싱, 마무리 작업까지 모두 담당하는 대형업체가 있는가 하면, 각 공정별로 분업화된 소규모 공장들도 많다.
 
◇창신동의 한 주택가. 가정집처럼 보이지만 거의 의류봉제공장이다. (사진=이보라 기자)
 
◇"일감이 바닥에 쌓여야하는데…"
 
"올해처럼 일이 없기는 처음이에요. 물건이 나가야 주문이 들어올텐데 장사가 워낙 안되니까…. 원래 남성 마이(자켓)만 만들었는데, 일감이 없다보니 여자 옷 같은, 무슨 종류의 옷이든 다 가져다 만들고 있어요."
 
5년 전 공장을 나와 아내와 함께 미싱작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최모씨의 말이다. 일이 늦어지면 늦은 밤이 되어서야 퇴근하는 일이 많아 이 직종에는 최씨 같은 부부 종사자가 많다. 열평 남짓한 공간. 벽 한켠에는 작업의 흔적이라 할 수 있는 30여종 색색깔의 실들이 자리해 있다. 부부의 세월을 함께한 그들의 미싱기와 작업대, 그들은 이곳에 나란히 앉아 오늘 아침에 들어온 여성용 치마바지를 만든다.
 
"둘이 일하면 아무래도, 공장에서 다같이 일하는 것보다 긴장감이 떨어지는 건 있죠. 하루종일 붙어있지만 그래도 (둘이 일하는게) 편할 때가 많아요."
 
5㎝가량의 길쭉한 천으로 벨트가 들어가는 고리, 라벨 등을 박는다. 미싱기와 옷감을 다루는 손길이 자로 잰듯 일정하면서도 섬세하다. 이들 부부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아들을 두고 있다. 샘플만 있으면 남성자켓을 '뚝딱' 만들 수 있지만, 이들의 주종목인 '마이'를 만들어 준 적은 없다. 
 
너무 덥거나 추우면 이들의 일감은 현저히 줄어든다. 날씨나 경기변동에 민감하다. 금융위기 이후 내수경기 침체로 일감은 줄어드는 추세지만, 작년과 올해는 일감이 줄어드는 속도가 남다르다.
 
"요즘 유니클로나 자라 같은 외국 브랜드가 많이 들어와서 창신동 의류봉제 매출이 많이 줄었어요. 2년전까지만 해도 일감이 바닥에 쌓여 밀려있었지만, 이 바닥 좀 보세요. 일감이 없잖아요."
 
◇창신동에서 미싱작업장을 운영하는 최모씨 부부의 손을 거치면 오른쪽에 재단된 천들이 왼쪽과 같은 형태의 여자바지로 재탄생한다. (사진=이보라 기자)
 
재봉질이 완성된 옷에 각종 장식품을 달아주는 한 업체에서 7년 가량 일한 이모씨 역시 일감이 줄어 힘들다고 토로했다. 큐빅 등 특별한 장식물을 옷에 부착하는만큼 이 업체의 일감으로 창신동 의류봉제업의 경기를 가늠할 수 있다. 공장 바닥에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이 나 있음에도 그것을 바라보는 이모씨의 눈빛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일감이 쌓여있어야 하는데…." 
 
경기 영향을 많이 받다보니, 일감의 부침도 심하다. 많을 때는 하루 14시간 넘게 일하는 반면, 일이 없으면 아예 손을 놓을 때도 많다.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일하는 스케줄도 들쭉날쭉해졌다. 미싱기을 돌리던 한 근무자는 무덤덤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더 바라는 것은 없다. 일감만 꾸준했으면 좋겠다."
 
◇"새 인력 유입 끊겨..의류봉제업 명맥 '간당간당'"
 
"5년 후 상황을 그려보면 아찔해요. 기술자가 없잖아요. 50대인 내가 바늘귀가 잘 안보여서 감으로 실을 꿰는데 말이에요. 창신동 노동자들이 평균 40대 후반이니 10년 후에는 창신동 의류봉제업이 사라질 수 도 있어요. 그럼 국산옷을 구경하기 힘들겠죠?"
 
일감이 떨어지는 것보다 심각한 문제는 새로 일하려는 인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한국 의류봉제업의 명맥이 결국 끊기게 된다는 의미다. 하루만에 완성본을 내놓아야하는 유통시스템과 노동환경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 신규 인력 유입은 불가능하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요즘엔, 옷 만드는 기술을 배우겠다는 젊은이가 없어요. 사람들은 정시 퇴근, 주5일 근무를 바라는데 현재의 의류 유통시스템상 그렇게 하기 어려워요. 그렇다고 초임 130만원 수준이 많은 편도 아니고 작업환경도 그리 좋지 못하죠."
 
◇ 여자옷을 만드는 공장에서 한 업주가 옷감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이보라 기자)
 
1976년부터 40여년간 의류봉제업계에 종사해 온 한 의류봉제 공장장이 말했다. 이 인근 업체들은 아침마다 도매상으로부터 주문을 받는다. 작업지시서나 완성품을 샘플로 받아 옷을 만들기 시작한다.  도매상은  하루만에 만들어진 완성품을 밤이나 이른 새벽 이들로부터 다시 거두어간다. 동대문 상가 대부분의 도매상이 도매상이나 소매상을 대상으로 '새벽'장사를 하기 때문이다.
 
단 하루만에 수백벌의 옷을 바로 만들어내는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한국이 유일무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과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한국의류제품을 선호하는 이유다. 트렌드에 민감한데다 옷을 만들어내는 속도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품종 소량생산체제가 자리잡아 소비자들은 남들과 다르고 조금은 특별한 옷을 합리적인 가격에 입을 수 있게됐고, 어제 드라마에서 눈여겨본 옷을 바로 그 다음날 손에 쥘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의 패션이 화려해질수록 이 업계 종사자들의 삶은 더욱 열악해졌다.
 
80-90년대까지만 해도 미리 수요와 트렌드를 예측해 옷을 만들어 놓는 '기획생산'방식이었다. 작업스케줄 예상이 가능했고, 종사자들 역시 이에 따라 비교적 규칙적인 생활을 할수 있었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가 도입되면서 기획생산보다는 트렌드를 좇는 '하루살이' 같은 유통시스템이 생겨났다.
 
"사실 일이 힘들죠. 노력한만큼 보상이 되는 직종이지만 젊은 사람들이 일하려하지 않아요. 제가 마지막인것 같아요."
 
옷의 마무리공정을 담당하는 이른바 '시야게'공장을 운영하는 사장이 말했다. 12명의 직원 중 7명이 네팔과 몽골인들이다. 창신동 업체들은 담당공정에 따라 생활리듬도 다르다. 시야게공장의 경우 일반 봉제 업체들보다 늦게 열고 아침이 되어서야 작업을 마무리한다. 대략 오후 3-4시쯤 문을 열어 새벽 5-6시가 되서야 문을 닫는다. 
 
◇시야게 공장에서 사람들이 다림질 등 마무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보라 기자)
 
◇"책상머리 정책 필요없다..피부와 와닿는 지원 해달라"
 
'드드드르륵, 드드드르륵'
 
일정한 리듬으로 돌아가는 성실한 미싱기 소리. 지하의 한 공장에서는 6명의 중년여성 직원이 미싱기로 옷을 만들고 있었다. 발로 페달을 밟고 손으로는 옷 원단을 이쪽 저쪽으로 돌려가며 박음질을 했다. 재봉틀 옆에는 완성되지 않은 채 박음질을 기다리는 원단과 완성된 옷 수십 장이 쌓여 있다.
 
2-3층 높이의 단독주택이 밀집한 이 일대의 지하는 거의 의류봉제공장이다. 임대료가 지상에 비해 30%이상 저렴하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고 영세하다보니 지하를 중심으로 공장들이 생겨났다. 원단을 자르고 미싱하다보면 옷감에서 나온 먼지 같은 것들이 쉴새 없이 코를 간지럽힌다.
 
정부는 50인 미만 소기업들에서 안전하고 쾌적한 일터를 조성하기 위해 기술과 자금 등을 지원했다. '클린사업장 조성 지원사업'이다. 의류봉제업체들은 이 사업을 통해 환풍기와 보일러 교체 등을 지원받았다.
 
"(정부가)도움을 주면 피부에 와닿아야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정부가 일하기 편한 방식으로만 지원하고 있어요.우리가 필요할 때 갖다 쓸 수 있는 식의 지원이 필요해요."
 
지하에 위치한 공장에 설치된 환풍기는 시간이 갈수록 까맣게 변한다. 옷감을 재단하고 미싱하면서 발생한 옷감의 먼지와 이물질이 환풍기에 쌓여가기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교체하지 않으면 화재로까지 번질 수 있어, 정부의 환풍기 교체사업은 필요한 일이지만 더 합리적이고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한 공장주는 목소리를 높였다.
 
◇가내수공업형태의 의류봉제공장이 밀집한 창신동 일대(사진=이보라 기자)
 
업체마다 필요한 물품과 시기가 각각 다름에도 정해진 기간에 일률적으로 물품을 교체하라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정업체의 교체물품 가격이 평균시장가에 비해 터무니 없이 높게 책정돼 있는 것도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주택가 곳곳에 들어선 공장들의 환경을 일시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물품 지원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작업환경을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부가 아파트형 공장을 지어 낮은 임대료로 공급하게 되면 의류봉제업에 대한 이미지도 개선돼 결국 신규 인력도 불러들이지 않겠냐는 것이다.
 
정부가 지난해 동대문패션비즈센터라는 아파트형 공장을 세웠지만 규모가 작고 주차공간도 부족한 상황이다.
 
봉제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에서 저렴한 임대료의 아파트형 공장을 지원하면 환경이 개선되면서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종로 일대의 큰 변화를 바라지 않는 일부 정치권의 속내와 의류봉제업을 3D 업종으로만 취급하는 고정관념 때문에 우리 의견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창신동 일대에서 큰길을 건너 십여분 가량 걸어가면 전 서울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나온다. '미래'를 상징하는 이 곡선모양의 거대한 은빛 건축물은 내년 개관을 앞두고 있다.
 
동대문 의류시장의 생산기지로 1970년대 말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창신동 의류봉제업 밀집지역. 동대문 밀리오레나 평화시장 같은 대형 의류상권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그날 주문하면 바로바로 옷을 토해내는 창신동 의류봉제공장의 성실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창신동은 시간이 멈춰버렸다.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정부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고여버린 동네가 되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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