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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故人추모는 뒷전)"잠시만요! 유족님, 돈 내고 가실게요"

[기획]장례문화, 이대로 좋은가 <1부>상술로 얼룩진 빈소

2013-11-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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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장례는 고인(故人)의 삶을 기리며 엄숙하고 의미있게 치러져야 하는 게 기본이다. 그러나 기본이 흔들리고 있다. 추모는 뒷전이고 장례시장이 집안 과시를 위한 허례허식과 체면치레의 경연장이 돼버린 지 오래다. 이 틈을 상술이 그냥 넘길리 만무다. 장례식장은 온통 '돈'으로 얼룩져 유족, 추모객을 피곤하게 한다. 성스러워야 할 문화가 천한 의례로 뒤바뀌었다. 뉴스토마토 은퇴전략연구소는 국내 장례 문화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2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사회 초년생 김 모씨는 최근 치른 부친상의 장례 비용으로 2500만원을 썼다. 고인이 된 부친께 못다 한 정성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장례식장에는 선친의 지인 300명 이상이 찾아왔다. 김 씨의 형편을 잘 아는 그들은 두툼한 봉투를 건넸다. 부의금은 3000만원가량 들어왔다. 부친이 세상을 떠나는 길은 화려했다. 하지만 장례식이 모두 끝난 뒤 김 씨의 표정은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부의금은 장례식장을 찾은 선친의 지인들에게 평생 갚아야 할 빚이 됐기 때문이다.
 
#상식, 발인제, 노제, 성복제···. 최 모씨는 최근 부친상을 치르며 이같은 장례 절차를 처음 들었다. 장례 식장 관계자는 장례를 처음 겪는 이들에게 생소한 절차를 잇따라 소개했다. 그때마다 추가 비용을 최씨에게 청구했다. 각종 제사상에 오르는 과일이 시중가보다 5배 정도 비싼 것 같았다. 최씨는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장례에 돈을 아끼면 불효자가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식장 관계자도 "흥정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호화용품 사용을 유도했다.
 
◇서울의 한 장례식장.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평균 장례비용 1200만원..평균 부의금 5.3만원
 
우리나라 장례식은 성대하다.
 
뉴스토마토가 이달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연세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등 서울 5대 대형 상급종합병원의 장례 비용을 조사한 결과 평균 900만~1400만원으로 나타났다. 3일장, 빈소 규모 50~60평, 1인당 식사 1만~1만5000원, 조문객 300~400명 기준이다.
 
고인을 보내는 상주들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5대 병원 장례식장 관계자들은 "식사나 술 등의 이용량이 예상보다 늘어나고 빈소·관·수의 등의 항목을 고급화하면 더 비싸진다"며 "최고 수준으로 할 경우 장례식장에 지불하는 비용만 최소 2000만원을 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형병원이 아닌 경우도 비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기준 우리나라 화장 시설에서 상을 치른 국민들이 실제 사용한 장례비용은 평균 1208만6000원이었다. 
 
부의금 기준도 급격하게 올라가 장례식장을 찾는 조문객들의 부담을 크게 늘리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실제 지출한 장례 부의금은 지난 2010년 기준으로 평균 5만3000원이다. 여기에 조화, 근조기 등을 포함하면 비용은 더 늘어난다. 
 
장례에 과도한 비용이 쓰이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장례식장에 쏠려 있는 수요가 원인이기도 하다. 2011년 기준 우리 국민이 장례를 치르는 장소는 대부분(97.4%) 장례식장이었다.
 
김숙응 숙명여대 실버산업전공 주임교수는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이 늘어나면서 대부분 병원이나 장례식장을 통해 장례를 치르다 보니 외형적으로 고급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례식장 상조회사 '孝' 빌미로 폭리·꼼수 영업
 
장례 관련 시장이 커지고 장례 식장으로 수요가 쏠리다 보니 장례식장이나 상조회사들의 폭리 영업도 빈발하다. 더군다나 장례 비용을 크케 따지지 않는 유족의 정서를 이용한 상술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장례식장이용의 불만사유와 개선 사항'을 설문 조사한 결과 가장 많이 나온 불만은 '비용이 비싸다(61.9%)'인 것으로 나타났다. 개선이 가장 필요한 사항으로는 불필요한 장례용품·서비스 강권(42.5%)이 꼽혔다. 
  
특히 장례식장의 노잣돈 요구, 조화 바꿔치기 등 수익을 극대화 하기 위한 각종 '꼼수'는 유족의 심리를 악용한 상술로 손꼽힌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손 모씨, 김 모씨 등은 "입관이 진행될 때 장례 지도사가 '마지막 가는 길 노잣돈을 건네라'고 권해 5만원을 관 속에 넣었다"며 "그런데 영구차 운전기사도 노잣돈 5만원을 요구했고, 화장터에서도 노잣돈 요구가 잇따랐다"고 푸념했다.
 
한 유족은  "조화를 나르는 인부들이 어머니의 이름을 붙인 리본만 바꿔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장면을 목격했다"며 "어머니 장례식장에 쓰인 조화들이 다른 곳에서 쓰던 것이란 생각에 분통이 터졌다"고 말했다.
 
◇부의금 봉투. (사진=뉴스토마토)
 
◇고인 추모는 없고 눈도장만
 
한국소비자원 인터넷 게시판에는 "장례식장 폭리도 정도가 있는 것이지 중국산 땅콩 봉지 1개가 6만원이라면 납득하겠습니까?"라는 글도 올라와 있다.
 
서울에서 금융기관의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 모씨는 최근 빈소가 부산인 부음을 보고 고민에 빠졌었다고 한다. 조문을 위해 부산까지 가자니 시간이나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고,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부의금만 보내자니 상주를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라면 1년에 몇 번씩은 이 씨와 같은 고민에 빠지게 되어있다. 이 씨는 그나마 "부산에 업무차 내려갈 일이 갑자기 생겨 빈소에 잠깐 들러 눈도장은 찍을 수 있었다"며 활짝 웃었다.  
 
한국의 장례식장에는 추모가 없다. 말없는 망자를 이용한 상술이 판치고, 비즈니스를 위한 사교의 장, 민심을 사기 위한 정치의 기회일 뿐이다. 조문을 가더라도 장례식장을 가득 채운 조화와 영정, 고인의 이름을 보는 것 이외에 고인의 삶을 볼 수 있는 의식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
 
경제,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었던 고인의 장례식장에 가면 조화를 놓을 자리도 없어 복도와 식당 벽을 가득 채운 리본 구경만 하고 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같은 동양이라도 장례식장 한 켠에 모니터를 설치해 고인의 생전 모습과 경력을 소개하는 일본, 대만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김 교수는 "가정에서 장례를 치르는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대형 장례 식장을 이용해 많은 문상객을 모으고 리무진으로 관을 옮기는 등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엄숙하게 돌아가신 분을 애도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김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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