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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

"계란이 없습니다…" 극심한 품귀에 영세자영업자들 생계 '흔들''

최악의 정부, AI 참사 대응도 최악…계란 도매상 '줄폐업', 동네빵집·김밥집은 발만 동동

2016-12-2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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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광표기자] "당분간 계란 공급량 부족으로 도·소매를 하지 않습니다" 27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의 한 계란 도매점 문앞에는 이 같은 안내문과 함께 빈 계란판만 가득 쌓여 있었다.
 
계란 부족 상황을 취재하던 중 연락이 닿은 한 계란 도매점 점주는 한숨부터 길게 내쉬었다. "계란을 구해 달라는 전화를 매일 열군데 이상씩 받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며 "나도 죽겠지만 우리와 거래하던 영세상인들도 장사 못 하겠다고 난리다. 큰 일이 날 것 같아 걱정이다"고 말했다.
 
이 곳은 일주일에 1000~1500판(1판 30알 기준)의 계란이 거래됐는데 열흘 전 거래 농장에서 마지막 계란을 공급받은 뒤 1주일째 문을 닫고 있다고 했다. 오래된 단골을 위한 비상용 계란까지도 바닥이 난 상태다.  
서울 시내 한 계란 도매점이 공급량 부족으로 문을 닫은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광복 이후 최대 무능 대명사가 된 박근혜 정부 4년차를 맞아 이번에는 사상 최악의 AI 참사가 발생했다. 금값이 된 '계란'은 이제 돈을 주고도 구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계란 수급 차질을 넘어 이제는 계란을 취급하는 자영업자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5412원(특란 한 판 기준, 평균가격)이던 계란값은 26일 7510원까지 치솟았다. 1996년 aT가 계란값을 집계한 이래 가장 높은 가격이다. 문제는 계란 공급마저 끊기다시피 해 가격도 무의미하다는 게 현장의 아우성이다.
 
도매단계부터 계란 품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정부와 각 시도 지방자치단체가 AI 발생 인근지역의 농가에서 계란 반출을 금지한 탓이다. 반출이 차단된 지역은 경기·충남·충북·세종·전남 등 35곳에 달한다. 여기에 전체 산란계의 20.8%인 1451만마리가 살처분되면서 공급량이 줄어든 것도 '계란 대란'을 악화시켰다.
 
계란유통협회 관계자는 "계란을 팔겠다는 농장도 없고 산란계 농가들도 폐업하거나 사업을 양도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며 "농가로부터 계란을 공급받는 도매상들도 협회를 줄줄이 탈퇴하고 하루에도 수십군데가 줄줄이 폐업 중이다"고 전했다.
 
경기도 광주에서 계란 도매업체를 운영하던 사장 A씨는 "30년째 계란 장사를 했는데 쌀과 김치 유통으로 업종을 바꾸려 한다"며 "사정이 다들 비슷해서 어디 하소연도 못하겠고 스스로 살길을 찾을 수 밖에 없다. 내가 알기로는 서울 경기 일대 계란 유통하다 망한 사람이 1000명은 될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도·소매상들로부터 계란을 못 구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그야말로 '버티는' 상태다. 특히 소규모 동네빵집들은 비상이 걸렸다. 이미 대형 프랜차이즈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는 상황에서 계란값 폭등과 수급 차질까지 악재가 계속돼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서울 양천구에서 동네 빵집을 운영해 온 임미희(58)씨는 "주변에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들은 안정적인 공급처라도 있는데 우리같이 영세한 동네빵집은 사방팔방 뛰어다니지만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하는 것이 계란이다"라며 "기존에 거래하던 도매점도 물량이 달려 문을 닫아서 당장 하루하루 장사가 걱정이고 온 가족이 계란을 구하러 뛰어 다니는게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계란값 때문에 빵값도 올려야 남는게 있는데 오랫동안 한 동네에서 장사해온 탓에 그러기도 쉽지 않다"며 "최소 200원은 올려야 하지만 주변에 경쟁 빵집이 많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한숨을 지었다.
 
서울에서 5개의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제빵사 강진구(61)씨도 시름이 깊었다.
 
강 씨는 "크리스마스와 연말 대목이라 본격적인 케이크 제작에 들어갔어야 하는데 물량의 절반도 못 맞출 지경"이라며 "평소 하루 100판은 필요한데 계란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연말 대목을 앞두고 당장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라고 걱정했다. 
 
서울 강서구에서 30년 가까이 빵집을 운영하던 송광호(66)씨는 최근 정들었던 가게를 내놨다. 송 씨는 "대형 빵집들 때문에 장사하기도 힘들었고 그나마 단골 손님들을 보고 버텨왔다"며 "가게를 접을까 고민중이었는데 계란까지 속을 썩이니 그냥 문을 닫기로 했다"고 푸념했다.
 
계란을 많이 쓰던 식당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분식점을 운영 중인 손병기(65)씨는 "손님들 반찬으로 나가던 계란말이도 당분간 다른 음식으로 대체 중이다"라며 "요즘 계란을 구하지 못해 큰일이다. 매일 계란을 사기 위해 도매상을 몇 군데씩 돌아다니지만 헛걸음을 할 때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명동에서 프랜차이즈 김밥 전문점을 운영하는 한 가맹점주는 "이번주부터 당분간 계란말이 김밥의 판매를 중단하고 일반 김밥에도 계란을 빼고 원가가 더 비싼 참치나 고기로 대체하고 있다"며 "안 그래도 매출이 줄었는데 손님도 더 줄어들지는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노점을 운영하던 김팔례(67)씨는 "국화빵이랑 계란빵을 팔았는데 미리 사뒀던 계란도 다 떨어져 이제 한판도 안 남았다"며 "계란빵 가격을 올리면 팔리지도 않을 것 같고 올 겨울 장사는 다 끝난 기분"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겨울 대목을 노렸던 계란빵 장사를 접을 예정인 서울 시내 한 노점의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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