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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향

어른이 되면 외로움도 공부라는 시련도 다 사라지는 거죠?

어느 중학생과의 인터뷰

2017-02-22 16:01

조회수 : 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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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자 공포증이 있는 것 같아요. 분명 재미있는 개그도 준비했고 하고 싶은 말도 있었는데 여자애들 앞에만 서면 말을 더듬고 자신감도 떨어져요. 머릿속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요. 그럴 때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6년 전, 그러니까 초등학교 2학년 때로요. 그때 제가 실연을 당했거든요. 차라리 고백하지 말걸.
 
바쁜 스케줄 속에서 찾아오는 외로움과 공허함
 
제 스케줄을 생각하면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을 것 같은데 매시간 외로움과 공허함이 밀려와요. 이유가 뭐냐고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학교 갔다 돌아오면 어머니가 내주시는 숙제를 해요. 영어 동화책을 볼 수 있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한 권씩 읽고 단어나 문장을 외우는 거죠. 6시 반부터 8시까지는 영어 학원을 가는 시간이에요. 저녁은 그 후에 먹어요. 원래 저녁을 늦게 먹은 건 아니었지만 이제 습관이 돼서 괜찮아요. 9시부터는 인터넷 강의로 취약한 과목을 공부해요. 국어, 사회, 과학,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과정을 듣고 있어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제가 국사를 좋아하기도 하고, 어머니가 준비해보라고 추천하셔서 시작하게 됐어요.
 
영어 학원을 안 가는 수요일에는 학습지 선생님이 오세요. 중국어, 일본어, 한자, 수학을 하는데 일주일 내내 풀어야 정해진 학습량을 끝낼 수 있어요. 문제를 풀면서 모르는 부분을 표시했다가 물어보는 시간이죠. 너무 많이 하는 것 아니냐고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있고 어머니가 시키셔서 하는 과목도 있긴 해요. 어머니 말씀에 반항하거나 반발해본 적은 없어요. 학생의 본분은 공부잖아요. 제 자식이 생긴다면 지금 어머니가 하시는 것처럼 교육할 거예요.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어떤 공부를 할 것인지 선택권을 주는 거죠. 목요일에는 독서 논술 학원을 가요. 첫째 주에는 도입 부분을 생각해보고 둘째 주에는 전개방향을 잡아서 셋째 주에 글을 완성하고 넷째 주에 토론을 하는 방식이에요. 최근에는 영생을 주제로 글을 썼어요. 글 쓰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친구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은 즐거워요.
 
고등학생이 되면 폴더폰으로 바꿀 거예요
 
학교에서 성적은 상위권에 들어요. 평균 90점정도 나와요. 자신 있는 과목은 영어예요. 지금 수능 문제를 풀 정도로 오래 공부했어요. 수학은 한 학년 정도 선행학습을 하고 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한 문제 때문에 10~20분을 잡아먹은 적이 있어서 수학은 꼭 선행학습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됐어요. 국영수(국어, 영어, 수학)는 어느 정도 점수가 높게 나오는데 음미체(음악, 미술, 체육) 같은 실기 과목이 좀 약해요. 아무래도 학원에 가거나 학습지를 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따로 연습할 시간이 없기 때문일 거예요.
 
가고 싶은 대학교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아니면 카이스트예요. 고등학교는 한림예고(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를 준비하고 있어요. 사실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국사 선생님은 만약 뮤지컬 배우가 되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해서 준비해두는 거고요. 부모님은 성적을 더 올린 후에 예고 입시 준비를 하라고 말하세요. 저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지 않으시는 또 다른 이유는 금전적인 부담 때문일 거예요. 예고는 돈이 많이 들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혼자 준비하는 중이에요. 고등학생이 되면 휴대폰도 폴더폰으로 바꾸고 학습량도 더 늘릴 각오를 하고 있어요. 이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그 정도는 해야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호감 가는 사람이 있지만 여자 친구를 만들 생각이 없는 것도 고등학교에 가면 공부를 더 빡세게 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공부랑 연애를 병행하는 건 어렵잖아요. 대학에 입학한 후에 서로 시간 날 때 만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 이 부분에 대해 많이 조언해주셨어요. 물론 저도 동의하고요. 그런데 제가 가끔 외로움이 밀려온다고 했잖아요. 그럴 땐 친구들과 놀면서 해소하지만 외로움은 다시 찾아와요. 어른이 되어야 해결될 것 같아요.
 
잠재워졌던 스트레스가 구멍을 뚫고 폭발하는 순간
 
주말에는 친구들이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요. 제가 시()에서 하는 합창단에 속해 있어서 토요일마다 합창 연습을 해요.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고요. 시작한 지는 2년 정도 됐어요. 이 시간이 저에게 제일 행복한 시간인 것 같아요. 합창부가 끝나면 친구들과 게임을 하며 노는데 평일에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서 좋아요. 한번은 촛불집회에 참여해본 적도 있어요. 뉴스로만 봤을 때는 어느 정도 규모인지 감이 안 잡혀서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거든요. 광장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니 이들이 화가 난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됐어요. 생각보다 안전하게 진행되는 시위에 놀라기도 했고요. 몇 번 더 참여하고 싶었는데 어머니가 반대하셔서 다시 못 갔어요. 혹시나 위험할까 봐 걱정을 많이 하셨거든요.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 말씀을 따르기로 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냐고요? 화를 잘 내는 편은 아니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래가요. 갑자기 욱하는 성질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스트레스가 잠재워져 있다가 한 번씩 구멍이 뚫려서 폭발하는 느낌이랄까요? 가장 스트레스 받는 순간은 시험 볼 때 분명 열심히 외웠던 건데 머리가 백지상태가 될 때예요. 그리고 공부해야 하는데 자꾸 휴대폰에 손이 갈 때 저 스스로 못마땅해요. 이런 점은 아버지를 닮은 것 같아요. 아버지가 담배를 끊으신 이유가 담배에 지배당하는 당신이 싫어서라고 하셨거든요. 저도 휴대폰에 지배당하고 싶지 않아요.
 
()만 강조되는 교육, 어른이 되면 건의할 거예요
 
가끔 이런 상상을 해요. 뮤지컬 배우가 된 저의 모습을요.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게임하고 작곡하며 여가를 즐기고 뮤지컬 연습도 즐겁게 할 것 같아요.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하는 취미도 가지고 싶어요. 그리고 어른이 되면 정부에 건의할 거예요. 지금의 교육은 지나치게 지()만 강조되고 있어요. ()이 부족하다는 것은 학교폭력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저희 학교 일짱, 이짱이 저와 같은 반인데 목소리가 특이하다는 이유로 한 애를 괴롭히고 패딩까지 뺏는 걸 봤어요.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용기를 잃었어요. 그 아이들이 저랑 친하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었죠. () 역시 수행평가가 아니면 체육 잘하는 애들 빼고는 몸을 움직이지 않아요. 교육은 학생들의 지덕체가 골고루 길러지도록 만들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공부는 하나의 시련이라고 생각해요. 이걸 참고 견뎌내서 완수해내면 어른이 되는 거겠죠?
 
김이향 기자 lookyh8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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