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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향

네가 좋아, 네가 보고 싶어, 네가 필요해

-크리스텔 프티콜랭의 <나는 왜 네가 힘들까>

2017-04-12 13:07

조회수 : 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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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얕은 인간관계보다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선호하는 나지만 상대가 예상치 못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면 밀어내게 된다. 크리스텔 프티콜랭의 <나는 왜 네가 힘들까>를 읽게 된 이유는 나의 이러한 심리를 이해하고 바꾸기 위해서였다.


 칭찬이나 애정표현을 낯부끄럽게 여기는 나같은 사람들은 비난하고 꾸짖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위안이 필요할 땐 누군가에게 위로해 달라고 부탁하고 위안 받는 것이 정상적인 인간관계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상대가 거절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와 살가운 감정을 주고받기가 두려운 나머지 긍정적인 인간관계보다 심리 게임을 더 선호하게 된다.


 심리 게임에는 세 가지 역할이 있다. 피해자, 박해자, 구원자다. 피해자는 자기가 이렇게 아픈데 당신은 잘만 지낸다는 이유로 죄의식을 조장한다. 목적은 상대의 동정심을 자극해서 자기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는 데 있다. 단골 레퍼토리로는 네가 날 이렇게 만든 거야!” “나는 네가 하라는 대로 했어.” 등이 있다. 대표적인 심리 게임으로 나를 뻥 차 주세요가 있는데 상처가 되는 생각으로 상대를 도발해서 상대가 결국 속상하고 화가 난 나머지 박해자로 돌변하게끔 유도한다. 예를 들어 자기야. 나 못생겼지?..나 못생긴거 알아..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보고 못생겼대..근데 사실은 못생겼지?거봐 나 못생긴거 맞네 엉엉이럴 경우 절대로 도발에 넘어가지 말고 초연한 자기 긍정으로 일관해야 한다. 절대로 공격성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는 학대자 역이 있다. 사람을 못살게 굴고 무정하게 대하며 언어적?신체적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공격하면서 얻는 자기 권능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킨다. 대표적인 심리 게임으로 볼트랩 게임이 있다. 간접적으로 도움을 구해 놓고서 상대가 뭔가를 제안하면 퇴짜를 놓는다. 부모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를 좌절시키고 누구도 자기를 도와줄 수 없음을 재확인시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조언을 포기하고 당사자는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지를 묻는 게 낫다. ‘흠집 찾기는 다른 사람들의 흠을 이야기하면서 자기 결점은 숨기고 위안을 얻는 게임이다. 여기에는 이렇게 대응하자. “결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를 이해하고 용인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정말로 높이 살 만하죠.”


 마지막은 구원자 역이다. 언제라도 약자를 감싸고 힘 잃은 대의를 옹호하고 나설 만한 용기도 있다. 하지만 상대를 어린애 취급하고 의존적인 인간관계를 불러오기 십상이다. 이들이 구원자가 되는 이유는 구원자의 마음속에도 자기가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은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남들의 문제에 집중함으로써 정작 자기 문제는 회피하는 수단이며 상대를 채무자 위치로 격하시키며 우위를 확보한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들이기 전에 상황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그들의 도움에 특혜라고 할 만한 부분은 거절해야 한다.


 심리게임은 이렇게 진행된다. 상대의 약점을 건드리는 떡밥을 던진다. 아이가 숙제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숙제를 다 했냐고 물어보는 식이다. 약점을 찔린 사람은 말을 더듬거나 눈물을 흘리고 변명을 하게 되는 식의 자동반응을 보인다. 떡밥을 던진 이와 떡밥을 문 이가 세 역할 중 하나를 골라 진짜 문제는 제쳐 놓고 싸움을 시작한다. 싸움이 끝난 후에는 분노, 슬픔, 죄의식 등 불쾌한 감정을 느끼며 고통 받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심리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주로 피해자 역할을 맡았다면 자신이 사람 심리를 조종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넋두리 대신 구체적인 요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박해자였다면 남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내가 나에게 금지했던 것들을 떠올리고 그 금지들을 풀어 주어야 평온하게 살 수 있다. 구원자라면 대등한 입장에서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상대를 내 아래로 보고 측은해 하기 보다는 동일한 눈높이에서 공감해야 한다.


 진정으로 친밀한 관계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애정 관계의 잠재적 위험을 어려서부터 배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간섭이 심하거나 파괴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아프고 힘들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배웠다. 그래서 인간관계의 거리를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오랜 세월 심리 게임으로 인간관계를 지속한 사람들은 평온하고 원만한 관계를 재미없고 밋밋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실한 관계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게 된다면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며 누군가에게 당당히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니가 좋아, 니가 보고 싶어, 니가 필요해.” 난 언제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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