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마블은 상상을 현실로 끌어 낸 시네마틱 매직의 상징이다. 각각의 히어로들이 하나의 세계관에서 존재한단 영화적 상상을 일궈냈다. 그리고 그 세계관 속에서 세대를 나눴다. 이른바 ‘페이즈’를 설계했다. 20년이 넘은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 최초 아시아 히어로 ‘샹치’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은 무엇을 설명하고 또 상상한다고 해도 답은 하나다. ‘마블’일 뿐. 이건 다시 말하면 어떤 결과물을 내놓더라도 마블은 마블이란 상징성이 부족함을 덮어 버리고 차고 넘침을 더 크게 확장시킨단 얘기다. ‘샹치’가 마블의 이런 ‘보이지 않는 힘’을 고스란히 뿜어내는 첫 번째 솔로 무비가 될 가능성은 크다. 그럼에도 북미의 쏟아진 찬사는 국내 관객들로선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어 보인다. ‘샹치와 텐링즈의 전설’은 아이언맨 세계관에서 등장한 바 있다. 2008년 개봉한 ‘아이언맨1’ 그리고 2013년 개봉한 ‘아이언맨3’에서다. ‘샹치’에선 그 두 편에 등장한 ‘텐링즈’ 실체가 공개된다.
‘텐링즈’는 열 개의 팔찌다. 이 팔찌는 상상을 초월한 힘을 지니고 있다. 팔찌 소유자 ‘웬우’(양조위)는 1000년 전부터 살아온 불사의 존재. 팔찌의 힘 덕분이다. 그 힘을 이용해 역사의 중요한 모멘텀에 항상 존재하고 관여해 왔다. 그가 만든 비밀조직 ‘텐링즈’는 그렇게 고대부터 중세 그리고 근대와 현대의 굴곡을 함께 겪었다. 그 중심에 웬우가 있다. ‘아이언맨3’에 등장한 ‘만다린’도 사실 그런 웬우의 전설을 이용한 가공의 인물이었다. 웬우 역시 그것을 알고 있다. 웬우는 시간을 지배하는 힘을 지닌 채 어둠의 세계에서 절대적 존재로 군림 중이다.
그런 웬우에게 아들이 있다. 샹치(시무 리우). 6세부터 아버지로부터 암살자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15세 때 받은 첫 임무에서 샹치는 아버지 품을 탈출한다. 비밀 조직 암살자가 아닌 평범한 삶을 원했다. 그는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한 호텔 주차 요원으로 근무 중이다. 그의 곁에는 유쾌한 성격의 케이티(아콰피나)가 함께 있다. 샹치는 ‘션’이란 이름으로 이곳에 존재한다.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케이티와 함께 출근하던 샹치. 두 사람이 탄 버스에서 의문의 남성들에게 습격을 당한다. 그들은 샹치의 목에 걸린 팬던트를 노린다. 죽은 샹치 어머니가 남겨 준 유품이다. 그들은 샹치에게 팬던트를 빼앗는다. 그리고 샹치 여동생 샤링까지 노린다. 샤링에게도 똑같은 팬던트가 있다. 이들은 ‘텐링즈’ 조직원들. 샹치와 샤링을 노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들 아버지 웬우다. 웬우는 자신의 곁을 떠났던 아들 샹치 그리고 딸 샤링을 찾지 못했던 게 아니다. 그들을 찾아야 할 시기를 조율 중이었다. 죽은 아내를 살리기 위해서다. 웬우는 아내 고향인 전설 속 마을 ‘탈루’로 들어가는 방법을 연구 중이었다. 이제 그 방법을 알게 됐다. 그 열쇠는 바로 샹치와 샤링의 팬던트다.
웬우와 샹치 그리고 샤링. 그들은 탈루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샹치와 샤링은 엄마의 언니이자 자신들에겐 이모인 난(양자경)을 만나 웬우가 노리는 것의 실체를 알게 된다. 이제 샹치와 샤링은 아버지 웬우의 공격 그리고 웬우가 노리는 ‘그것’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샹치와 텐링즈의 전설’은 마블코믹스 원작 속 ‘샹치’가 주인공이다. 샹치는 태생적으로 ‘브루스 리’(이소룡)를 모티브로 탄생시킨 캐릭터란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초인적인 쿵푸실력과 함께 전투 능력은 ‘탈 인간급’. 하지만 그 외에 히어로적 측면의 능력치는 사실상 전무하다. ‘샹치’에선 이를 위해 원작 속 빌런 ‘만다린’이 소유했던 열 개의 반지를 열 개의 팔찌로 변환시켜 무한 에너지를 지닌 무기로 둔갑시켰다. 이 무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웬우는 불사의 생명까지 얻게 됐다. 이점은 ‘샹치’의 정체성을 크게 몇 갈래로 확실하게 구분해 규정짓는다. 서양의 시선에서 동양을 상징하는 오리엔탈리즘, 오리엔탈리즘을 상징하는 초자연적 존재, 초자연적 존재를 섬기고 따르며 보호하는 신비의 존재들. 그리고 히어로 무비의 가장 원천적인 의미인 선악 구분.
‘샹치’는 기존 마블 히어로 영화와는 결 자체가 많이 다르다. ‘샹치’의 액션 소재인 쿵푸 그리고 쿵푸의 본산 홍콩 무협영화를 ‘마블’ 뒤섞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등장하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전투 장면은 마블이 생각하는 ‘아시아’를 대변한 명확한 기준점이다.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이런 기준점은 ‘샹치’ 전체를 덧칠한 감독 시선이고 마블 시선이다. 실제 동양권 문화에서 바라본 ‘샹치’의 비주얼과 아우라는 지극히 서양화된 동양의 신비감이다. 절대 불멸의 힘을 지닌 팔찌가 등장한다. 전설 속 존재들이 사는 신비한 마을이 등장한다. 그들을 수호하는 신비한 일족이 등장한다. 운명처럼 정해진 숙명이 등장한다. 선과 악의 대결 그리고 그 대결 주체가 되는 동양 신비의 정수는 너무 낯설지만 또 익숙한 존재다. 그리고 그 중심에 웬우가 있고 그를 막아 선 난과 샹치가 있다. 선악 구분이다. 현대 서양 문화권에선 납득하기 힘든 과거 동양의 남존여비 문화 사상까지 일정 부분 투여 묘사된 지점은 과욕처럼 여겨진다.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샹치’는 마블이기에 ‘마블’스러운 기본적 목표에는 올라설 것이 확실해 보인다. 문제는 마블의 충성도가 극성스러운 동양 시선이다. ‘샹치’가 그리는 ‘샹치’ 세계관은 ‘신비한 동양의 힘’이 모든 걸 해결해 버리는 무소불위 세상이다. 동양은 신비한 문화다. 신비한 문화 속 믿을 수 없는 무엇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뭔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엄청날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접근해 버렸다. 다소 무리한 전개의 인과는 앞서 설명한 맥락으로 모조리 채워져 버렸다. 그럼에도 ‘샹치’가 ‘마블’스러운 아우라를 풍겨 낼 수 있다면 오롯이 양조위와 양자경의 존재감 때문이다.
양조위는 눈빛 하나로, 대사 하나로, 몸짓 하나로 표정 하나로 ‘샹치’의 뚫린 구멍을 모조리 매워 버린다. 양자경은 어떤 역을 맡더라도 이미 중국과 홍콩은 물론 할리우드에서도 존재감과 연기력을 인정 받은 대배우다.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마블 경영진이 어떤 결정을 할지 모르지만 ‘샹치’ 최대 약점은 주인공 ‘샹치’를 연기한 시무 리우다. 미드 ‘김씨네 편의점’을 통해 얼굴을 알린 중국계 캐나다 이민자 출신이다. 하지만 그의 매력은 대척점에 선 양조위가 문제였다. 너무 뛰어난 양조위와 너무 빈약한 시무 리우다.
‘샹치와 텐링즈의 전설’은 마블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 ‘페이즈4’를 여는 첫 번째 영화다. 그 이상 그 이하의 존재감도 아닌 딱 그 선에 걸친 의미로서만 주목하면 될 듯하다. 개봉은 9월 1일.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P.S-1 쿠키는 두 개다. 하나는 본편 끝난 뒤 곧바로, 하나는 엔딩 크레딧 이후다. 두 개 다 페이즈4에 대한 힌트다. 하지만 그리 놀랄만한 내용도 아니다.
P.S-2 예고편에 등장한 괴생명체는 어보미네이션(인크레더블 헐크 빌런)이 맞다. 그의 상대는 예상 밖이면서도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인물이다. 어보미네이션과 이 인물의 특별한 관계가 눈에 띈다. 페이즈4에서 그려질 관계가 궁금해진다.
P.S-3 앞선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에 등장한 ‘텐링즈’ 관련 인물 중 예상 못한 인물이 등장해 웃음을 자아낸다. 홍콩영화마니아라면 ‘탈루’ 거주 일족 가운데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홍콩영화계 전설 같은 존재다. 참고로 ‘샹치’의 실제 롤모델 ‘이소룡’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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