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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판관 포청천'은 어디에
입력 : 2020-11-10 오전 6:00:00
요즘 동남 아시아에서는 우리 드라마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1993년 대한민국에서는 네모난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했던 ‘판관 포청천’이 단연코 대세였다. 포청천은 죄를 지은 사람이 황족이든 평민이든 상관하지 않고 공명정대한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특히 고관 대작들의 부정부패를 단죄하는 능력이 매우 탁월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 독재를 오래도록 경험하면서 불공정이 일상이었던 우리 국민들로서는 한 여름의 소나기처럼 시원한 포청천의 명판결과 진실 찾기 노력이 그렇게 가슴에 와 닿을 수가 없었다. 
 
특히 고위 공직자들의 사리사욕과 부정부패로 사건의 진실이 감춰져 있다가 포청천이 엄청난 기지와 혜안으로 진범을 찾아내고 고관대작들을 향해 '작두를 쳐라'를 외치기 시작하면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듯 시원하고 엔돌핀이 온 몸을 휘감으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라는 말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 권력이나 힘에 굴하지 않고 오로지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포청천의 활약은 그만큼 '공정'과 '정의'라는 진리에 목말라 했던 많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은 '힘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진실은 제대로 가려져야 하고, 잘못한 사람은 제대로 처벌 받아야 하며, 억울한 사람은 누명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명제가 상식으로 자리 잡기를 바랐던 대한민국 국민들의 염원이 만들어냈던 문화적 현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이 한참인 요즘, 2020년 대한민국에는 판관 포청천 같은 정의의 사도가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고관대작이나 공직자들처럼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이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하는, 누구에게도 좌고우면하거나 위선 떨지 않는 그런 수사관과 그런 법관이 존재한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수사관과 그런 법관이 존재하고, 그들의 사건 처리가 당연히 공정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공수처를 설치해야 한다면서 여야가 대치하고, 후보로 추천한다고 하면 너도 나도 손 사래를 치는 그런 진풍경이 벌어졌을까.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가족 비리를 수사한다면서 압수 수색을 80몇 차례나 하고, 지속적으로 언론에 관련 수사 내용이 유출되어 하루에도 수백 건씩 관련 기사가 쏟아지게 만들었던 검찰총장이 정작 자신의 가족 비리는 제대로 수사하지 않아, 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에서 이를 다시 수사하게 만드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현직 검찰 총장의 부인과 장모 관련 사건의 진실이 은폐되고 왜곡되었다는 비난이 쌓이고 쌓여 곪아 터지기 직전 드디어 공소시효 만료 얼마 전에서야 마지못해 수사가 시작되고, '아빠 찬스'로 만들어진 스펙을 입시에 활용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기염을 토하던 전직 국회의원은 정작 자신의 아들 딸과 관련된 '엄마 찬스' 의혹에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시민단체에서 13차례나 고발이 이루어졌지만 아직까지 피고발인 조사를 받았다는 소식은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다. 
 
수천억원대의 공사 수주 관련 이해충돌 우려가 그렇게 큰데도 해당 국회의원은 몇 년이나 아무 방해없이 관련 위원회에서 주는 꿀물같은 혜택을 다 누렸다고 하고, 진즉에 공수처가 필요했던 것 아니냐고 외쳐보지만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  
 
더욱 황망한 것은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가 9일 1차 공수처장 후보 추천을 마무리하고 후보들을 심사하기까지 '이 사람이다' 싶은 후보를 제대로 추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할만한 인재들은 너도 나도 절대 못한다고 고사를 하고, 어찌 어찌하여 승낙한 후보들은 공수처장으로서 능력과 자격을 갖췄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현재 공수처장 후보 관련 키워드가 '50대 비검사'라는 얘기가 돌고 있는 것 역시 문제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들의 비리와 범죄 혐의를 수사해야 하는 곳이고 그곳의 수장은 당연히 수사능력이 매우 뛰어나야만 한다. 왜냐하면 공수처의 수사대상이 대한민국에서 날고 기는 실력자이자 권세가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비리를 철저히 수사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판관 포청천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슬프지만, 판관 포청천이 존재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아직도 오지 않았다는 것은 더욱 큰 문제이다. 정말 제대로 된 공수처장 후보자가 추천되고 선출되기를 바라본다. 
 
노영희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
 
최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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