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박근혜정부 당시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명단 대상자를 문화예술 지원 사업에서 배제한 행위는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23일 특정 문화예술인 지원 사업 배제 행위 등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선고했다.
앞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은 지난 2013년 9월부터 2014년 5월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정부와 견해를 달리하는 문화예술인과 단체 명단인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문화관광체육부에 하달했고, 이후 문체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의 지원을 결정하는 과정에 개입해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윤한솔 연출가와 정희성 작가, 이윤택 예술감독과 연희단거리패, 서울연극협회, 서울프린지네트워크, 그린피그, 시네마달 등은 박근혜 전 대통령, 김기춘 전 실장, 조윤선 전 정무수석,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등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표현의 자유,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2017년 4월19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 등이 정부에 비판적 활동을 한 문화예술인이나 단체를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 사업에서 배제하기 위해 윤 연출가와 정 작가의 정치적 견해에 관한 정보를 수집·보유·이용한 행위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기관 소속 직원들이 서울연극협회 등을 지원 사업에서 배제하도록 한 일련의 지시 행위 모두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정보수집 등 행위에 대해 "정부가 문화예술 지원 사업에서 배제할 목적으로 문화예술인들의 정치적 견해에 관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수권하는 법령상 근거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 사건 정보수집 등 행위는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또 "나아가 이 사건 정보수집 등 행위는 청구인들의 정치적 견해를 확인해 야당 후보자를 지지한 이력이 있거나 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 의사를 표현한 자에 대한 문화예술 지원을 차단하는 위헌적인 지시를 실행하기 위한 것으로, 그 목적의 정당성도 인정할 여지가 없어 헌법상 허용될 수 없는 공권력 행사"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지원 배제 지시에 대해서도 "집권 세력의 정책 등에 대해 정치적인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자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며, 화자의 특정 견해, 이념, 관점에 근거한 제한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고 해로운 제한"이라면서 "그런데 이 사건 지원 배제 지시는 법적 근거가 없으며, 그 목적 또한 정부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가진 청구인들을 제재하기 위한 것으로 헌법의 근본원리인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므로 청구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지원 배제 지시는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표현한 청구인들을 그러한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지 않은 다른 신청자들과 구분해 정부 지원 사업에서 배제해 차별적으로 취급한 것"이라며 "헌법상 문화국가 원리에 따라 정부는 문화의 다양성, 자율성, 창조성이 조화롭게 실현될 수 있도록 중립성을 지키면서 문화를 육성해야 함에도 청구인들의 정치적 견해를 기준으로 이들을 문화예술계 지원 사업에서 배제되도록 한 것은 자의적인 차별 행위로서 청구인들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강조했다.
유남석(가운데) 헌법재판소 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사건 선고를 위해 자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