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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정의감과 질투심의 경계에서
입력 : 2021-02-01 오전 6:00:00
필자는 직업이 변호사다 보니 의뢰인을 위해 수사기관이나 판사를 설득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설득의 도구는 ‘말’이 될 수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글’이다. 그래서 칼럼이나 책을 자주 접하려고 노력하고, 잘 쓴 글은 여러 번 읽는다. 처음에는 흩리듯이 지나치지만, 다시 읽을 때는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어떤 점에서 눈길이 갔는지를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 흩리듯이 읽는 게 독자로서의 입장이었다면, 두 번째로 읽을 때는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이 된다. 
 
잘 쓴 글을 보면 주제나 소재, 그리고 이를 풀어쓴 스토리, 식견에 감탄하게 되는데, 때로는 감탄에 그치지 않고 약간 욕심이 나기도 한다. ‘나도 이런 생각 했었는데’와 같이 왠지 아쉽고, 기회를 놓친 것 같은 마음인데, 어쩌면 질투와 같은 마음일 거다. 얼마 전 읽은 중앙일보 권석천 기자의 <‘문재인 보유국’시대, 합리적 유권자는 존재하는가>라는 칼럼이 대표적이다. 
 
최근에 기자 출신 장강명 작가의 <책 한번 써봅시다>을 읽다가 내가 평소 숨겨왔던 그 마음을 들켜버렸다. 작가는 “이런 책, 나도 쓰겠다”며 서점에서 분노하는 이들의 심정을 이야기한다. 이들은 “겨우 이런 글을 인쇄하자고 나무를 베어냈어?”라고 나무의 소중함을 운운하며 함부로 책을 만들어 내는 것에 분노를 느끼곤 하는데, 작가는 이런 감정은 “정의감을 닮았지만 실제로는 질투심”이라고 한다. 작가도 그랬다고 한다. 그리고 그 “흉한 감정”은 작가가 책을 내면서 사라지게 된다. 
 
“정의감을 닮았지만 실제로는 질투심”이라는 지적에 뜨끔해 할 사람이 많지 않을까? 나 역시 그랬다. 다른 사람이 생각해 낸 스토리와 식견을 두고는 어렵지 않은 것이라고, 나도 생각할 수 있었다고 여기지만 과연 그럴까? 내가 달성하지 못한, 이루지 못한 것의 질투는 다른 사람의 성취에 대한 박한 평가나 분노가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비단 이런 감정이 글쓰기에서만 발견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때로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 이를테면 정치인에 대해, 연예인과 같은 유명인에 대해 쉽게 그들을 평가하고 깎아내린다. 
 
장강명 작가는 “인간에게는 ‘지금 내가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감각이 필요하다”고 한다. 글쓰기만이 아니다. 꼭 책 한 권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글쓰기이든 무엇이든 상관없다. 매일 같이 산을 오르는 사람은 등산가가, 달리는 사람은 러너가 된다. 우리는 목수가 될 수도 있고, 요리사가 될 수도 있다. 할 수 있는 것, 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많다. 여기서 기준은 내가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나 사회의 시각이 기준이 될 필요는 없다. 
 
페이스북을 자주 접한다. 거의 매주 한번 정도 내 생각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 생각이나 일상을 들여다 보곤 한다. 내가 전체 공개로 올리는 글의 대부분은 사법제도나 특정 정치인 등을 비판하는 글이다. 칭찬하는 글은 거의 없다. 때로는 누군가를 내가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어차피 바뀌는 것도 없는데 라는 회의감도 든다. 나의 작은 목소리로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 열심히 떠들었지만 어느 누군가는 이러한 비판과 목소리를 순수하게 보지 않을 수도 있고, 나 또한 오롯이 정의만을 위해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를 반성할 때가 있다. 그러나 거의 매일 신문을 빠짐 없이 읽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것이 나에게는 의미있는 일이다. 누가 이런 자격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감시견’ 역할을 하자고 결정한 것이다. 그냥 정치인을 욕하는 것은 정의감이 아니라 질투심이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들어, 차라리 공개적으로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있다. 아마도 올 한해도 글을 쓰고 말을 할 것이다. 
 
새해에는 무엇이 되었든 “지금 내가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감각”을 떠올려 보고 실천하기를 권한다. 아마도 하루 하루가 그 이전과 다를 것임을 확신하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최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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