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이와이 슌지는 한국에서 사랑을 받는 일본 영화 감독이다. 영화 ‘러브레터’ ‘4월 이야기’ ‘하나의 앨리스’ 등 이와이 슌지 감독의 섬세한 감성을 담아낸 영화들은 ‘이와이 세계관’이라고 불릴 정도다. 이와이 슌지 감독이 새롭게 선보인 ‘라스트 레터’는 이와이 세계관의 특성을 담아냈을 뿐 아니라 한층 더 깊어진 감성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유리(마츠 타카코 분)의 언니이자 아유미(히로세 스즈 분)의 엄마인 미사키의 장례식. 장례식을 마친 뒤 유리의 딸 소요카(모리 나나 분)는 아유미와 함께 외가에 남겠다고 한다. 유리는 아들만을 데리고 집으로 가기 직전 아유미에게 언니 미사키의 동창회 소식을 전해 듣는다. 유리는 언니의 부고 소식을 전하기 위해 동창회를 찾았다가 자신을 언니로 착각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언니의 소식을 전하지 못한 채 미사키인 척 인사를 나누고 돌아왔다. 그리고 유리는 그곳에서 고교 시절 자신의 첫사랑이자 언니를 좋아했던 쿄시로(후쿠야마 마사하루 분)에게조차 언니 미사키인 척 한다.
‘라스트 레터’는 영화 ‘러브레터’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옛 향수와 함께 ‘러브레터’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할 만큼 닮아 있다. 이야기를 시작을 알리는 장면부터 비슷하다. 후지이 이츠키의 2주년 추모식을 찾은 히로코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러브레터’. ‘라스트 레터’는 미사키의 장례식에서 이야기가 출발한다. 세상을 떠난 이의 추억이 남은 장소에서 우연히 발견, 혹은 다가온 흔적이 마치 앨범을 펼쳐 보듯 과거의 이야기가 하나씩 등장하게 한다. 두 영화 모두 착각에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도 비슷하다.
라스트 레터 후쿠야마 마사하루. 사진/스튜디오 산타클로스
이와이 감독의 또 다른 감성은 학창 시절, 그리고 첫사랑 코드다. 누구에게나 학창 시절은 있고 누구에게나 가슴 아린 첫사랑의 추억 하나쯤을 마음에 품고 산다. ‘라스트 레터’는 ‘러브레터’와 마찬가지로 유리, 그리고 쿄시로, 미사키의 고교 시절의 추억을 꺼내놓는다. 풋풋했고 설레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기에 아련하고 애틋한 추억. 이러한 옛 기억이 주는 감성이 아름다운 음악과 어우러져 각자의 향수를 자극한다.
등장 인물들은 과거의 기억을 편지라는 매개체로 서로 공유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쿄시로가 미사키의 집으로 보낸 편지를 받게 된 아유미와 소요카가 미사키인 척 쿄시로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점이다. 이를 계기로 아유미와 소요카는 편지의 매력에 빠진 모습을 보인다. 답장이 오기를 기대하며 우편배달부가 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린다. 이제는 편지조차 잘 쓰지 않는 시대다. 과거 편지를 써본 이들이라면 아유미와 소요카가 느끼는 감정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느리지만 손편지가 주는 따뜻한 정서. 기다림의 재미, 답장을 받았을 때의 흥분과 기대감.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중년인 유리와 쿄시로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 아닌 SNS가 익숙한 세대라 할 수 있는 10대인 아유미와 쇼요카를 통해 보여줬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라스트 레터 마츠 타카코. 사진/스튜디오 산타클로스
이와이 슌지 감독 팬이라면 ‘4월 이야기’ 이후 오랜만에 호흡을 맞춘 마츠 타카코를 만나는 것도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다. ‘4월 이야기’에서 막 대학교에 입학한 풋풋함에서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중년의 모습을 연기하는 마츠 타카코의 모습이 반갑다. 또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보여주는 섬세한 감정 연기가 미사키와 유리, 쿄시로의 어긋난 운명을 더욱 절절하게 만든다.
‘러브레터’가 1995년 개봉을 했다. 그로부터 26년 만에 ‘라스트 레터’를 내놓은 이와이 슌지 감독이다. 20대였던 이와이 슌지 감독은 어느덧 6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그렇기 때문일까. ‘라스트 레터’는 ‘러브레터’와 비슷한 부분이 많지만 더 깊은 감성을 담고 있다. 특히 중년이 된 이와이 감독은 ‘러브레터’와는 또 다른 감성으로 학창시절을 바라봤다. ‘러브레터’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반짝였던 추억으로 그렸다.
하지만 ‘라스트 레터’는 이제는 빛 바랜 추억에 가깝다. 이를 대변하는 장소가 이전 결정으로 폐교가 된 옛 학교 터다. 과거 자신들의 추억이 남겨 있던 장소. 모두가 꿈을 키우고 자신의 가능성을 무한하다 여진 곳이지만 현재는 폐허가 되어 버린 곳이다. 여전히 자신의 추억이 남겨 있지만 시간이 흘려 낡고 버려진 장소처럼 과거의 꿈과 희망과 달리 현실이 녹록치 않다. 단 한 권의 책 밖에 쓰지 못한 소설가 쿄시로, 고교 학생 회장까지 하면 가장 찬란했던 미사키는 자살을 택했다. 그렇기에 이들의 모습이 마치 버려진 폐교와 겹쳐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미사키가 졸업식에서 낭독한 송사가 유독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리고 미사키가 유서로 졸업식 송사를 아유미에게 어떤 마음으로 남긴 건지 이해하게 된다.
‘괴로운 일을 겪게 될 때 살아가는 일이 고통이 될 때 분명 우리들은 몇 번이고 이 장소를 떠올릴 것입니다. 자신의 꿈과 가능성이 무한하게 여겨졌던 이 장소를. 모두가 한결같이, 소중하게 빛나고 있었던 이 장소를. 오는 24일 개봉.
라스트 레터. 사진/스튜디오 산타클로스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