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국가가 올바르지 않은 대의를 추구하다 보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리고 대의를 앞세워 개인에게 얼마나 잔혹한 짓을 할 수 있는지 역사에서 여러 차례 목격해왔다. 대의를 앞세워 개인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 법을 세우고 그 법을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집단에게 공동의 적이 생기면 적에 대한 분노로 인해 법이 무너지고 대의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더구나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인물에게 펼쳐졌다. 영화 ‘모리타니안’은 20세기 대의를 앞세운 국가의 무자비함 속에 희생 당한 인물, 그리고 개인의 신념과 양심이 만들어낸 기적을 다뤘다.
변호사 낸시(조디 포스터 분)는 모두가 변호를 꺼리는 한 남자의 변호를 맡게 된다. 낸시가 변호를 맡은 슬라히(타하르 라힘 분)는 9.11 테러의 핵심 용의자로 지목돼 기소, 재판 없이 6년 동안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인물이다. 군검찰관 카우치(베네딕트 컴버배치 분)는 슬라히를 기소하라는 국가의 명령을 받아 증거들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낸시와 동료 테리(쉐일린 우들리 분)는 카우치를 변호하기 위해 정보 공개를 요구하지만 번번히 좌절하게 된다. 두 사람은 슬라히의 증언을 토대로 변호를 준비한다.
독일 유학을 다녀와 동네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는 슬라히는 경찰이 동행해줄 것을 요청하자 이에 따라 나선다. 이후 한 남자가 슬라히의 변호를 낸시에게 부탁을 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는 현재의 이야기와 과거 슬라히가 겪은 이야기를 교차 편집해서 관객에게 보여준다. 현재와 과거가 혼란스럽지 않게 화면의 비율에 차이를 뒀다. 더구나 슬라히의 과거 이야기를 보여주는 화면은 오래된 영상과 같은 느낌을 줘 더욱 몰입도를 높였다.
영화가 이야기를, 그리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의뭉스럽고 계획적인 느낌이다. 슬라히는 첫 등장부터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경찰이 동향을 요청하자 옷을 갈아 입는다는 핑계로 핸드폰의 주소록을 모두 삭제해 버린다. 그리고 과거 심문을 받는 장면에서 슬라히가 알카에다 훈련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다. 더구나 낸시와 테리의 첫 만남에서 연락처를 적어 주면서 엄마에게 자신의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낸시는 그런 슬라히의 행동이 자신의 무죄를 믿게끔 하기 위한 계획처럼 이야기를 한다. 이러다 보니 관객은 슬라히가 과연 테러리스트인지 무고한 시민인지 헷갈리게 된다. 여기에 낸시는 슬라히의 무죄를 입증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 당한 것이 잘못된다고 이야기를 한다.
더구나 모든 범행 사실을 자백한 문서까지 등장을 하면서 관객은 슬라히가 테러리스트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영화는 슬라히가 테러리스트일지 모른다는 작은 의심의 씨앗을 심어 놓고 관객이 스스로 이를 키우게 만든다. 하지만 그 뒤 슬라히가 자백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등장하면서 충격을 받게 한다. 그제야 슬라히를 범인이라 생각했던 일렬의 상황들이 다르게 해석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관객은 잘못된 의심이 어떤 참혹한 결말을 맺게 되는지 깨닫게 된다.
영화 속 등장하는 미국 국민들의 모습도 관객과 다르지 않다. 낸시가 슬라히를 변호한다는 사실만으로 미국 국민들은 슬라히를 테러리스트 변호사라고 비난한다. 9.11 테러로 인해 격양된 감정이 만들어낸 결과다. 기소도, 재판도 없이 800명의 사람들이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혔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기소 이유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유일하게 관심을 갖는 이가 낸시였을 뿐이다.
모리타니안. 사진/퍼스트런
개인이 집단과 맞서는 일은 쉽지 않다. 더구나 대의를 위해서라는 명목을 내세운다면 흔히 말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낸시는 슬라히를 변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보 공개를 요청하지만 모든 정보가 가려진 문서만을 받게 된다. 심지어 카우치조차 슬라히와 관련된 원본 서류에 접근하지 못한다. 카우치가 진실에 접근하려는 순간 집단은 그를 반역자로 매도해 버린다.
이렇게 국가가 개인과 부딪히게 된 순간 잃은 건 개인이다. 슬라히는 2002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14년간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됐다가 석방 이후 고향인 모리타니 공화국으로 돌아갔다. 더구나 미국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더 섬뜩한 건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 점이다. 2015년 출간과 동시에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관타나모 다이어리’를 원작으로 한다. 책은 쿠바 미군 기지에 있는 관타나모 수용소의 실태를 고발한 최초의 수용자 증언록이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건 대의를 앞세운 국가가 개인의 인권을 묵살하는 것이 흔하다는 점이다. 멀리 내다볼 필요도 없이 우리의 현대사만 보더라도 수많은 인권 유린의 증언들이 쏟아져 나온다. 법치 국가인 미국에서도 법을 묵살한 채 인권을 유린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렇기에 낸시와 같은 신념과 카우치와 같은 양심으로 대의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모리타니안과 같은 이들이 어디서든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
모리타니안. 사진/퍼스트런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