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성남 기자] 1973년 설립해 올해로 만으로 48년이 된 한국상장회사협의회(상장협)가 지난 9월 굵직한 변화의 신호탄을 쐈다. 상장협이 출시된 해 태어난 40대 기수를 임원으로 발탁했기 때문이다. 평균 연령이 높은 상장협에선 40대 기수는 젊은 피로 통한다. 그 주인공은 법학박사로서 상법과 자본시장법에 능통한 이재혁 정책2본부장(사진.상무)이다. 50년 가까이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의 의견을 대변하고, 정책당국과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상장협의 변화를 이끌 키맨이 된 이재혁 상무를 만나 앞으로 상장협의 계획과 지난 공과에 대한 이야기를 <뉴스토마토>가 들어봤다.
이재혁 상장회사협의회 정책2본부장
먼저 최연소 임원의 자리에 오르신 걸 축하드린다. 최연소 팀장에 이어 최연소 상무 타이틀을 단 걸로 확인된다. 초고속 승진의 비결이 따로 있나.
하하하(웃음), 과찬의 말씀이시다. 특별한 비결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상대적으로 정적인 조직인 상장협에서 나름 젊은 세대와 소통을 강조하고, 조직 발전을 인생의 가장 앞선 비전으로 생각하면서 조직내에서 주어진 바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 결과물로 생각한다. 그리고 승진만 했지 진행하는 업무는 기존과 동일하다.
상장협 조직은 일반에게는 생소한 조직이다. 상장협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1973년 100개의 상장회사 돌파를 기념해 상장협이 설립됐고, 2020년 기준 유가증권시장 782개사가 모두 정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연간 153건의 정책건의를 하고, 187회의 각종 유관기관 회의 참석을 통해 상장회사 관련 법규의 제정, 개정 시에 상장회사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제가 중점을 두는 부분은 회원사를 대상으로 한 상담과 컨설팅 서비스의 제공에 초점을 맞추면서 회원사와 가까운 곳에서 실무 수행을 지원 중이다. 특히 기업에서 필요한 법률이나 회계 등의 컨설팅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상장협은 회원사가 되면 무료로 관련 서비스를 지원한다. 회비는 자본금 기준이기 때문에 많은 유가증권시장 상장회사가 저렴한 비용에 관련 서비스를 이용 중이라고 보면 된다.
상장협의 서비스에 대한 회원사의 만족도가 높다고 들었다. 비용 대비 소위 말하는 '가성비'가 훌륭하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가성비 좋은 서비스 제공의 이유는 무엇인가.
해당 서비스가 가능한 이유는 수십년 간의 실무 데이터(DB)가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상장협의 리서치 인력은 약 20명 정도인데, 이 정도 인력이 1년에 1만5000건 정도의 기업 공시와 법률, 회계, 세무 상담 등을 수행하고 있다. 조직의 업력이 오래된 만큼 누적된 데이터도 상당하다. 이를 기반으로 한 퀄리티 있는 서비스 제공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상장협이 보유한 실무 데이터를 실제로 외부 회계법인이나 법률 자문을 원하는 법무법인 등에서 따로 자료 요청을 할 정도로 DB 구축이 잘돼 있다고 보면 된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준비 중에 회사를 직접 찾아가서 교육도 한다고 들었다. 지방과 수도권 가리지 않고 가는 것인가.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회사나 상장한지 얼마되지 않은 회사에 가서 직접 교육을 한다. 비상장회사와 상장회사는 다른 만큼 그에 맞는 법률, 회계, 공시 등 다양한 방면에 대한 교육을 진행한다. 상장 초기의 회사는 기업 공시 방법이나 임직원들의 주식 거래에 관련된 사항을 잘 알지 못한다. 때문에 해당 기업에 기업 공시 일반 개요와 불공정거래 규제에 대해 맞춤형 교육을 한다. 요청이 들어오면 지방이나 수도권을 가리지 않고 간다.
이재혁 상장회사협의회 정책2본부장
너무 업무 이야기만 했다. 상사로서 젊은 직원들이 생각하는 '꼰대' 이미지를 탈피했던 에피소드가 있다고 들었다. 이것이 최연소 승진의 이유라고도 하던데.
저는 실무자의 공을 늘 인정해줬다. 대부분 조직의 팀장은 결제를 위한 상사 미팅 자리에 실무자 없이 혼자 간다. 그런데 저는 신입 사원이라도 실무를 담당한 사람과 같이 결제 미팅을 진행했다. 그래야 윗선에서도 일이 무엇인지 잘 이해할 수 있고, 실무자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실제로 관련 실무는 보고하는 사람보다 업무를 직접 수행한 실무진들이 잘 안다고 믿고 있다. 관리자는 실무자들에게 의사소통의 장을 열어주고, 실무자가 업무에 미스가 났을때 방향을 제시하고, 추후에 혹여 문제가 발생했을 땐 관리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 번은 젊은 직원이 부회장님께 올릴 기고문 관련 문서를 작성했던 일이 있었다. 관련 글이 제가 보기엔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글이라고 하는 것이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판단이 가능할 것이란 생각에 직접 저의 기고문과 직원의 기고문을 동시에 들고 직원을 대동해 부회장님에게 직접 보고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부회장님은 젊은 직원이 쓴 보고서를 선택했고, 표현 방식이 더 낫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때 깨달은 것이라면 "내가 지식은 더 많을 수 있어도 표현 방법은 다양하기 때문에 내가 생각한 것이 다 맞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지금도 상장협내의 다른 부서에도 위계질서를 강조한 조직 문화 보다는 쌍방 소통을 강조하는 조직 문화 만들기에 동참을 늘 이야기하고 있다.
덧붙여 상장협은 첫 직장이기에 애정이 많다. 늘 조직을 생각하고, 우리 조직이 발간하는 보고서가 외부에서 인정받길 원한다. 그래서 실제로 과장 시절에는 회사 내부에 스터디를 조직해 함께 공부한 적이 있다. 내가 가진 지식을 스터디원들과 나눴고 부족한 부분은 스터디를 통해 채울 수 있었다.
정책 당국에 요청해 회원사의 기업 활동에 도움을 준 대표적인 성과를 꼽자면.
여러가지 업무를 수행하며 정책당국과 유관기관과 업무 협의를 진행해왔는데, 기억에 나는건 섀도우 보팅 폐지 유예를 꼽을 수 있겠다. 실제로 회사의 주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주주총회에 나오지 않는다. 그럼 기업들이 주주총회를 못한다. 그래서 그걸 도와주는 게 섀도우 보팅이다. 그런데 섀도우 보팅이 2014년말에 없어질 예정이었다. 당시에 많은 언론에서 주총 대란을 언급하는 기사를 비롯해 저 역시 국회 등을 찾아가 섀도우 보팅 폐지를 연장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던 적이 있다. 법안 통과를 위해 열심히 다녔던 기억이 난다. 법이 통과된 날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 앉아서 직접 직관도 했다.
*섀도우 보팅 제도는 주주가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투표한 것으로 간주해 다른 주주들의 투표 비율을 의안 결의에 그대로 적용하는 의결권 대리 행사 제도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 상장협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과제는 무엇인지.
일반 대중, 국민이 생각하는 것 처럼 기업은 부패하지 않다. 때문에 상장협 활동을 통해 기업이 준법 경영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현장에 있어보면 기업의 준법경영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일부 일탈한 재벌이나 오너들 때문에 반(反)재벌 정서가 생긴 것 같지만, 일부 기업의 일을 전체적인 기업의 일로 몰아가서 반기업정서가 생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이런 인식을 바꿔야 기업에 대한 규제가 제대로 해소될 것이고, 대중이 기업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기업의 진짜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기업을 살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때문에 앞으로도 상장회사에 특화된 규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하는데 도움을 주고, 당국과 기업간의 가교 역할, 기업관련 정책과 제도개선을 위한 메신저로서 열심히 발로 뛸 생각이다.
최성남 기자 drks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