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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중소기업 R&D 지원, 시장지향적 혁신이 필요하다
입력 : 2021-11-22 오전 6:02:56
기술력은 중소기업 경쟁력의 알파와 오메가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중소기업이 우대받느냐 박대받느냐는 기술력에 달려 있다. 기술력이 우수한 중소기업은 안정적 판로와 높은 마진을 보장받는 반면, 기술 수준이 미흡한 중소기업은 단가인하와 적자에 시달리다 도태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경쟁자보다 기술적으로 앞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연구개발(R&D)에는 막대한 투자가 선행되지만, 개발된 기술을 이용한 사업의 성과는 불확실하다. 검증되지 않았고 사업화가 불투명한 혁신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은 자원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도전적 모험이다. 소재·부품·장비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찾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고비용 고위험의 R&D 투자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에 가장 필요하며 효과적인 정책이다. 문재인정부는 '중소기업이 주도하는 경제'를 목표로 해 중소기업의 기술혁신을 중요한 정책 어젠다로 설정했다. 100대 국정과제에 중소기업 R&D 지원을 2개나 포함해 R&D 지원 예산을 2배 확대하고 수요자 중심으로 R&D지원 체계를 개선하고자 했다. 
 
이런 국정 과제 목표에 따라 중소기업 전용 R&D 지원 규모는 문재인정부 출범 당시 2017년 1조1670억원에서 2020년 2조3069억원으로 증액됐다. 중소기업 R&D 지원도 수요자 중심으로 재설계해 100% 자유공모제를 도입하고 상시 모집체제를 운영하며 지원규모와 기간을 확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D 지원성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정부에서 R&D 지원을 받은 수혜기업들의 2019년 평균 매출액(85억원)은 비수혜기업(82억원)에 비해 약간 높은 정도다. 수혜기업이 고용을 더 많이 하지만 노동생산성은 비수혜기업보다 낮은 편이다.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강화하는 R&D 지원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데도 그 성과가 크지 않은 이유는 수요자를 '시장'이 아니라 '중소기업'으로 보기 때문이다. R&D 지원의 직접적 수요자는 '중소기업'이지만 R&D를 통해 개발한 기술의 궁극적 수요자는 '시장'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중소기업도 기술을 개발할 때 '시장'이 아니라 '정부'를 고객으로 생각해 접근한다. 그래서 요건에 맞춰 개발만 할 뿐 상용화에 필요한 검증을 소홀하게 한다. 정부지원을 받는 신기술의 경우 일단 시험작동만 되면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R&D 자금을 지원하는 입장에서도 가능하면 성공률을 높이고 싶어한다.
 
선정과정을 통해 지원한 기술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갈 경우에 사업관리를 부실하게 했다는 책임 논란에 휩쓸린다. 개발과제의 선정과 평가 및 사후관리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비판받는다. 특히, 막대한 예산이 지원된 개발 프로젝트가 실패로 평가될 경우 국회와 감사원에서 국고 낭비로 지적받고 감사에 시달려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실행되는 R&D지원 과제의 성공률은 높게 나온다. 그러나 개발된 기술의 완성도가 미흡해 사업화 비율은 낮게 나타난다. 정부 지원을 받아 개발된 기술의 시장성이 부족해 사업화되지 않고 사장된다는 것이 R&D 지원정책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기술혁신과 산업혁명 추세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기술의 개발에 집단적으로 쏠리는 경향을 보인다. 한때 뜨겁게 각광받은 기술로는 줄기세포, 나노기술, 그래핀 섬유, 인공광합성 등이 있다. 이런 첨단 기술의 개발에 많은 지원이 이뤄졌지만, 시장에서 사업화돼 큰 성과를 거뒀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이와 같이 R&D 지원에 의해 개발된 수많은 기술이 시장에서 활용되지 않고 사장되는 예는 비일비재하다.바로 중소기업 입장에서 '시장'이 아니라 '정부'를 고객으로 한정해 개발하기 때문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에서 온 기술전문가가 한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한국 중소기업의 기술은 우수하나 5%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첨단 기술의 개발에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지만 수많은 사용자의 다양한 상황에 맞도록 기술을 보완하고 개선하는 노력은 소홀하다고 지적한다. 구글, 아마존, 애플 등의 테크 기업이 많은 개발자를 고용하고 있는 이유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보다 기존 기술을 고객이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개선하고 업데이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즉, 신기술의 개발보다 기존 기술의 활용과 사업화에 많은 자원과 인력을 투입하는 것이다.  
 
R&D 지원의 수요자를 중소기업으로만 한정할 경우 지원 자금을 오용하거나 악용할 소지가 크다. 중소기업이 R&D 자금을 운영자금으로 사용하거나 또는 기존에 개발한 기술을 신기술 R&D로 신청하는 사례가 간간이 발생한다.  
 
R&D 지원자금은 보조금이다. 융자와 달리 상환의 의무가 없고 투자처럼 외부의 감시를 받지 않는다. R&D 자금의 용처를 정부가 일일이 관여하고 감독할 수도 없다. 자칫하면 중소기업 입장에서 R&D 지원자금을 '쉬운 돈(easy money)'으로 생각할 수 있다. R&D 지원을 신청할 때는 사업성이 높은 혁신기술을 개발한다고 했다가 일단 선정돼 지원금을 받으면 상용화 노력을 게을리하게 된다.    
 
R&D 지원에 정부가 많은 예산을 투입할수록 기업은 자금원을 시장이 아니라 정부로 생각해 시장 고객의 사용상황과 괴리된 기술이 개발되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R&D의 직접적 수요자는 '중소기업'이지만, 그보다 더 큰 수요자는 '시장'으로 설정하고 지원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중소기업 R&D 지원의 성공 여부를 단순히 개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장에서 수용되고 활용되는 성과와 연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중소기업이 R&D 계획을 수립하고 신청하며 사후에 과제를 수행할 때 '정부'가 아니라 '시장'을 보고 접근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시장지향적 변화가 있어야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기술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R&D 정책이 작동하게 될 것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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